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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혜원정사 주지 원허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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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정영(시인) 2016년 12월 418호
대학수학능력시험 날이라 범경에 기도 소리 가득하다.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청춘도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도 간절하고 애달프다. 그러니 어떤 생이라고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원허 스님은 그 터질 듯한 마음에 가만히 손을 얹는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정형화된 공부를 강요해요. 억압된 생활 속에서 자신의 역량이나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니 아이들이 방향을 못 찾고 헤매지요. 동그란 아이에게 네모난 틀에 들어가라니 생각이 유연해지겠습니까. 융통성이 없으니 제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게 해야지요.”

원허 스님이 힙합 가수 아웃사이더와 함께하는 ‘스쿨어택(School Attack)’을 후원하는 이유다. ‘스쿨어택’은 가수가 여러 학교에 찾아가 강연과 공연을 통해 아이들과 공감하는 프로그램인데 현재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똑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학교 선생님이 하면 강의가 되고 교장 선생님이 하면 설교가 되고 부모가 하면 잔소리가 되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가수가 하면 감동이 돼요.”

어느 학교에 가든 강당에 들어서면 늘 같은 풍경이란다. 무대 앞엔 줄이 쳐져 있고 그 앞엔 선도부가 지키고 서 있고 아이들은 강당에 열 맞춰 앉아 있다. 그러면 스님은 잠시 인사를 하곤 그 줄부터 걷는다. 오늘 하루만큼은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그러면 아이들은 주어진 자유 속에서 스스로 규율을 지킨다.

“불교 얘기를 하지는 않아요. 아이들을 억압하고 있는 줄을 거두어 주는 것, 그게 내가 하는 역할의 전부예요. 그 아이들 눈에 난 단지 승복을 입고 있을 뿐이죠.”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방황했던 청소년기부터 힘든 무명 시기를 이겨낸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아이들은 그 이야기에 감동하고 이어지는 그의 노래에 열광한다.

“내가 생각하는 포교는 눈높이 맞추기예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가가야지요.”

12월 10일엔 부산문화회관에서 ‘로얄비츠(Royal Beats)\' 페스티벌이 열린다. 랩 보컬 댄스에 자신 있는 청소년들이 경연을 하고, 힙합 가수인 아웃아시더, 타이미, 프리마테 등의 공연도 펼쳐진다. 원허 스님이 3년 전부터 기획한 것이다.

“열정을 가진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고 싶어요. 주최가 절이지만 힙합으로 다가가니 거부감이 없어요. 지속적으로 개최할 생각입니다.”

음악에 관심이 많으신지, 왜 그리도 아이들과 함께하시는지, 어찌 매해 끊이지 않고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주시는지 여쭙는다.

“난 음악은 전혀 몰라요. 그런데 인터넷에서 가수도 찾아보고 춤도 찾아봐요. 그래야 아이들과 소통이 되니까. 그렇게 이야기 나누다 보면 자꾸 저를 찾아오고 속마음도 이야기하고 법당에도 자연스레 앉아요.”

원허 스님은 93년도에 혜원정사에 와서 97년도부터 주지 소임을 맡았다. 도심사찰인 만큼 기존의 방식과는 차별화된 포교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 만든 게 ‘혜원정사 선재어린이집’ 그리고 ‘고산장학회’다.

“절에 노(老) 보살님들만 오다가 그분들이 떠나면 누가 남겠어요. 새로운 불자를 만들려면 청소년 포교를 해야지요.”

혜원정사엔 젊은 불자들이 많다. 어린이집을 운영하니 삼사십 대 학부모들도 있고 불교대학을 다니는 젊은 불자들을 비롯해서 중고등학생들까지.

“여름에 캠프를 하면 240명이 와요. 다른 절에선 지도법사가 없어서 못 한다던데, 우린 우리가 다 알아서 해요. 대학생들이 조교를 맡고 고등학생들은 부조교를 맡고 중학생은 보조를 맡아요. 그 애들이 지속적으로 한 단계씩 올라가면서 매해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초파일에도 아이들은 당연하다는 듯 제 손으로 등을 달고 손님을 맞고 설거지를 한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혜원정사가 ‘우리 절’이란 개념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원허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20년 넘게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포교는 한 자리에서 오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어린이집 애들은 늘 나한테 안겨요. 그러던 애들이 점점 자라서 스무 살이 되면 나와 관계가 어떻겠어요. 집안이 어떤지 부모가 어떤지 어떻게 자라왔는지를 다 아니까 모든 얘기를 내게 와서 해요. 힘들 때는 와서 실컷 울다가 가요. 제 역할은 여기 이 자리에 계속 있어 주는 거예요.”

4년에 한 번씩 주지가 바뀌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긴 계획을 세워 공심을 갖고 꾸준히 해나가야 가능한 일이란다. 스님은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많은 것을 이루었다. 순례나 방생을 가던 버스가 처음엔 6대 남짓이었는데 이젠 20대가 넘는다. 청년회 활동을 하던 불자가 이젠 52살이 되었다. 거리에서 춤추며 방황하던 중학생 소녀는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국악인이 되었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생각한다.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은 아무래도 어린이집을 만든 것일 거라고.

“내가 장학금 준 애들이 대학에서 장학금 받았다며 내 용돈을 들고 와요. 그러면 정말 기쁘죠.”

원허 스님은 현재 부산시청소년단체협의회 이사이면서 사회복지법인 혜원, 영도구노인복지관, 부산영도시니어클럽을 이끌어가고 있다. 청소년 포교와 함께 노인 복지, 두 가지에 뜻을 두고 살기 때문이다.

“노인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죠. 그러나 국가가 못 하는 일은 종교가 끌어안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노인은 우리나라를 이만큼 살게 한 일꾼들이에요. 마지막을 편하게 보내시게 하는 게 우리의 임무가 아닐까요. 제가 청소년과 노인 복지에 힘을 기울이는 건, 삶과 죽음을 함께 하겠다는 거예요.”

복지관 직원들은 매일 아침 노인들에게 전화한다. 밤새 안녕을 묻고 말벗을 해드리기 위해서다. 매일 도시락 배달을 가고 필요한 게 없는지 살핀다. 그 노인들의 대부분은 서류상으로는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분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복지의 사각지대에 있는, 실제적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어디서도 지원받을 수가 없어 모두 혜원정사에서 지원한다. 그러니 원허 스님이 11년 동안 영도구노인복지관을 운영하는 동안 보건복지부상을 두 번 받은 것도, 지난해엔 조계종 포교대상 공로상을 받은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93년도부터 혜원정사에서 매해 경로잔치를 여는데 1,500명이 와요. 함께 점심 공양을 하는데 이젠 마을 잔치가 되었어요.”

스님은 지난 9월 인터넷 불교뉴스 ‘e붓다’를 만들었다. 부산 울산 경남권의 불교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인데, 단순히 소식을 전하는 것만이 아니라 불자들이 진정 원하는 글을 싣는 포교지로 자리매김할 생각이란다.

“불교신문이라면 스님들이 관심 있어 하는 글이 아닌 재가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걸 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신심이 나게 해야지요.”

그중에서 ‘원허 스님의 아름다운 세상’ 코너에는 스님의 나긋한 에세이가 연재되고 있다. 스님은 오래전부터 SNS에 글을 연재해 그 글들을 모아 《세상을 물들이는 멋진 아침》이란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글을 올리며 부처님 말씀이 서서히 사람들 마음에 물들기를, 그렇게 하루하루가 멋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래도록 도심에서 중생들과 이리도 가까이 살아왔으니 그 세월이 어떠했을까, 그 마음은 어떠했을까 여쭙는다.

“처음엔 큰스님을 원망했어요. 왜 공부하는 사람한테 주지를 시켰나 싶어서. 그런데 지금은 내가 여기서 주지를 안 했다면 이 즐거움을 몰랐겠구나 싶어요. 이젠 이 모든 게 큰스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원허 스님은 언제까지라도 포교하며 살 생각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꾸준히 걸음을 옮기며 갈 생각이다. 스님은 돌아서는 내게 말씀하셨다. 어둔 밤길을 걸으며 그 말씀 곰곰 되뇌어 본다.

“저 멀리서 누가 나를 발견했을 때 기쁘게 손 흔들며 달려올 만한,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