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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불교 복지의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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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종환 2016년 12월 418호
2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1990년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누구 못지않게 열정과 패기가 넘쳤고 못 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충만한 때였다. 그 시절 종단은 일꾼의 수도 적었고, 사업의 종류와 규모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중 사회복지와 관련해서는 종법과 제도가 미비했고 또 갖추어야 할 것도 많았다. 그렇다 보니 이웃 종교들이 사회복지 시설 운영과 다양한 복지사업으로 지역 단위의 종교 활동을 펼칠 때, 불교가 내세울 만한 것은 많지 않았다. 사찰의 담벼락은 그야말로 높아 보였다. ‘종단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한 역할은 무엇일까?’ 퇴근길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한 화두는 바로 이 질문이었다.

전통적인 수행 중심의 불교를 뛰어넘어 부처님의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원봉사와 복지를 통한 신행 혁신 운동이 필요했다. 그리고 산속에 고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불교가 아닌 세상 속에서, 대중들의 삶 속에서 생동하는 불교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천상의 도솔천에 계시던 부처님께서 고해의 중생계에 나투신 것은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종단과 사찰 그리고 스님들과 나누는 것이 필요했다. 때마침 정부는 80년대 중반 이후부터 사회복지관을 증설하는 추세였고, 90년대부터 추진한 보육시설 확충 계획과 맞물려 공공부문에서 건립한 사회복지관과 보육시설의 민간 위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위탁은 대부분 민간 사회복지법인을 통해서 진행되었다. 바로 이거다 싶었다. ‘종단의 사회복지 관련 업무를 총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사회복지재단을 만들자.’ 사회부 신입 직원의 커다란 포부가 담긴 꿈! 조계종단에서 불교계를 대표하는 사회복지재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산속, 사찰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뛰어넘어 지역 사회 곳곳의 복지기관에서 자비를 회향하는 스님들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자비심을 가진 불자들이 스님이 운영하는 사회복지 기관에서 자원봉사활동과 후원하는 모습을 그렸다. 그러던 중 ‘뜻이 있으면 길이 열린다.’ 처음으로
그 말을 내심 믿게 되는 순간이 왔다. 종단 개혁 당시 초보 직원의 기획안을 보시고 총무원장 스님께서 부르셨다.
“사회부가 중심이 되어 사회복지재단을 한번 만들어 보세요.” 2년 넘게 고민한 흔적이 결실을 맺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곧바로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기 위한 제반 준비에 들어갔고, 명칭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으로 결정했다. 종단 내 이견이 있는 분들과 논의·수렴하는 과정을 거치고 정부 부처와 협의하면서 법인 설립 신청서를 보건복지부에 제출하였으며, 마침내 1995년 2월 25일 ‘사회복지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설립되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조계종단의 대사회적 활동을 이행해야 했다. 설립한 당해 6월 재단 창립기념법회를 진행했고, 불교계 사회복지를 총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파악하기 위한 불교 사회복지 실태조사를 추진했다. 그리고 8월에는 불교계 곳곳에서 이타행을 펼치던 보살님들과 함께 ‘대한불교조계종 자원봉사단’을 발족했다. 개혁회의의 뒤를 이어 출범한 종단 집행부는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종단의 최우선 기조로 내세우면서 불교 사회복지는 탄력을 받아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물론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당시 외부에서 바라보는 불교는 여전히 수행하는 종교에 머무는 경향이 많았고 사회복지 참여나 실천은 낯설게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때론 타 종교에서 선점한 사회복지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나의 길이다’라고 느낀 것은 바로 스님들 덕분이다. 자비심 넘치는 우리 스님들이 복지사업을 하면 정말 잘하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교구본사 복지재단과 사찰 그리고 스님들의 원력으로 설립한 법인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은 1,000여 곳에 이르며,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산하 사회복지시설만 해도 전국적으로 192개에 달하고 있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교계 사회복지법인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에 속하며, 재단이 운영하는 복지시설들이 전국 사회복지기관 평가에서 최우수 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다. 조계종 자원봉사단은 직할로 소속된 자원봉사자만 2,500여 명, 2015년엔 대통령 표창까지 받으며 불교가 사회적 회향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누구도 불교가 사회복지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을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복지정책이 입안되거나 제도가 만들어지면 불교에서도 동참해봐야 하지 않느냐며 되묻고 적극 제안을 해온다.

스님들이 운영하는 사회복지시설에 갈 때면 느끼는 것이 있다. ‘부처님이 현시대에 태어나셨다면 바로 앞에 계신 스님의 모습이 아닐까’ 불교가 자비를 행해온 역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해석하고 실천해 온 노력의 역사적 총체라고 생각한다. 현대사회에서 자비와 이타행은 사회복지라는 제도를 통해서 구현될 수 있을 것이다.
고도화된 시장경제와 지나친 경쟁으로 인간성의 근간이 되는 관계는 상실되고 있다. 사회가 발달한 만큼 편해졌다고 하지만 양극화와 가치관의 혼란 그리고 갈등으로 우리들의 삶은 힘들어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더욱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며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본다.

부처님의 연기설에 따라 모든 생명이 인연으로 맺어져 있고 그로 인해 남이 아프면 곧 내가 아프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세상과 타인과 다른 생명과 그리고 환경과 함께 상생하는 삶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나 자신과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 그리고 모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이 곧 부처님이 만들고자 했던 세상일 것이며, 불교가 사회복지를 통해 추구하는 지향점일 것이다. 지금의 사회에서 복지를 행하는 것은 자비가 가득한 사회, 곧 정토로 가는 지름길이자 부처님이 지향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세상의 모든 중생을 다 건질 그 날까지, 그리하여 불국정토를 이루는 그 날까지 불교 사회복지의 길은 계속될 것이다.


*최종환 님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과 대한불교조계종 자원봉사단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면서 조계종단의 사회복지 기반 마련과 사회복지를 통한 불교의 사회적 역할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