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살찌우는 해남 미황사 공양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가운데서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을
읽으며 음식이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뭔가를 함께 먹다 보면 누구에게나 찾아드는 외로움도,
회한과 무력감도 슬며시 놓일 것 같습니다.
한 해의 끝자락 12월, 일 년 동안 애쓴 그대들에게
땅끝 마을 미황사의 순한 공양 한 끼를 권하고 싶습니다.
추운 날 목도리같이 따뜻한 수진화(修眞華) 박인숙,
관음행(觀音行) 장영희 보살님이 언 마음을 녹여줄 것입니다.
자글자글 들끓던 백팔번뇌가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오후 5시가 저녁 공양 시간이라 했다. 334km를 달리고 달려 부처님을 뵙는 둥 마는 둥 3배만 하고 내처 공양하는 방으로 향했다. 가지런히 놓아둔 반찬들이 정갈하다. 조린 듯 무친 듯 심심한 배추속대 요리, 감자조림, 장떡 닮은 야채 부침, 갓김치 볶음, 샐러드를 접시에 담고 사과도 한쪽 챙긴다. ‘이 음식이 내 앞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모든 이들의 공덕을 생각하며 감사히 먹겠습니다.’ 나직하게 공양 게송을 하고 수저를 들었다. 사람을 뭉클하게 만드는 어떤 힘이 있는 음식들을 꼭꼭 씹으며 생각했다. 사람은 먹어야 살 수 있으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일 아닐까 하고. 이 소중한 일, 미황사 대중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두 여인 수진화(修眞華) 박인숙, 관음행(觀音行) 장영희 보살과 마주 앉았다. 수진화의 이야기부터 들어보자.
“제가 절 아래 서정마을 태생이에요. 어릴 적에는 공양물 이고 가시는 할머니 따라 왔고, 초등학교 때는 6년 내내 봄가을 소풍 장소가 미황사였어요. 결혼하고도 같은 동네에 살았고 2005년부터 미황사와 인연이 시작되어 오늘까지입니다. 매일 새벽 5시 30분 출근해서 잠시 올려다보는 새벽하늘이 저를 살게 합니다. 이불 속에서 조금 만 더 있고 싶어 뭉개다가도 새벽 별과 달빛이 주는 청량함에 하루를 씩씩하게 시작하지요.”
하루를 살면 그 하루가 새로운 날을 살게 한다 했던가? 관음행 보살도 미황사 공양간에서 올해로 10년째다.
“처음 수진화 보살님의 같이 일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많이 망설였어요. 결정할 수가 없어 가족들에게 떠넘겼더니 숙고 끝에 하고 싶으면 한 번 해보라 하더군요. 사실은 친정엄마의 오랜 소망이 인생살이 웬만큼 정리되면 공양주 보살 하는 거였어요. 저를 많이 부러워하십니다. 게다가 미황사는 서는 자리마다, 눈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사찰이거든요. 이른 봄 설중매와 서러운 노래를 지닌 동백꽃, 운무 가득한 달마산, 만세루의 저녁노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지요.”
공양간 3년이면 성불한다는 말이 있다. 수행의 시작은 나를 아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데 공양간은 절집 가운데서도 자신의 모습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런데도 10년 세월을 배려하고 도와가며 두 사람이 함께하고 있으니 이들의 궁합은 가히 환상적이다. 예를 들어 수진화가 국수를 삶으며 불 조절을 하는 사이 관음행은 어느새 커다란 소쿠리를 들고 와 양동이 가득 찬물을 받아 국수 헹굴 준비를 한다. 관음행이 옥수수를 삶는 동안 수진화는 담을 접시를 챙긴다. 상대에게 섬세하고 선량한 힘과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늘 상대방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지켜보며 파악하니 손발이 척척 맞아요. 무슨 찬을 만들까 하는 것도 미리 정하지 않아요. 식단을 만들어 봤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더라고요. 보시 들어오면 우선 그것으로 찬을 만들어야 하고 먼저 사둔 재료를 소진해야 하니까요.”
우리가 인생에서 행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내가 당신이 되고 당신이 내가 되는 것일진대 공양간에서 이 두 사람의 행함이 지극하다. 1박 2일 미황사에 머무는 동안 저녁, 아침, 점심 세끼를 먹었다. 채 썬 사과 들어간 세발나물 샐러드는 오래 기억될 맛이었고 메밀 짜장면은 특별했으며 배추속대 요리에 내 맘까지 순해졌다면 과장일까. 일 년에 500포기 김장을 하는 큰살림 미황사의 베스트 요리가 궁금하다.
“특별한 건 없어요. 그저 정성을 다할 뿐이죠. 봄에는 두릅, 오가피를 비롯한 봄나물이 지천입니다. 그러니 미황사에 오시려면 봄에 오세요. 여름에는 머위대들깨찜이 먹을 만하구요. 가을에는 늙은호박조림과 무조림을 자주 상에 올려요. 요즘은 갓시래기국이 제철이죠. 아! 수진화표 간장떡볶이는 미황사 특식입니다. 제사가 있으니 절편이 자주 생기거든요. 남은 떡을 이용하지요.”
많은 불자들이 땅끝 아름다운 절 미황사에 가고 싶어 하고 이미 여러 사람이 발자국을 남겼다. 수많은 인연 가운데 특별한 사람도 있으리라. 두 사람이 입을 모은다.
“아! 완도 보살님. 주 5일 공양간으로 출근하셔요. 보살님은 우리의 대변인에다 손놀림도 재발라서 공양간 일이 많이 수월합니다. 너무 고마운 분이죠. 보살님 따라 거사님도 불교에 귀의하셨어요. 미황사에는 상처를 안고 오는 인연도 많습니다. 기도하고 울고 밥 먹고 산책하고 가끔 설거지 거들고 그러는 동안 가벼워져서 돌아간 사람들이 많아요. 그분들께 사시마지 공양을 올리라 권유하면 처음엔 저어하다가도 공양을 올린 후에는 무척 행복해하셨어요. 우리는 매양 하는 일이지만 그분들께는 특별한 일이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그저 따신 밥 지어 드리는 거지요.”
세상에는 줄 것이 하나도 없는 가난한 사람도 없고 더는 받을 것이 없을 만큼 풍족한 사람 또한 없다는 말이 새삼스럽다. 공양간 옆에 게으름 방이라 부르는 구들장 황토방은 두 사람의 쉼터다. 이 조그만 명품 방에서 재봉틀을 돌려 목도리를 만들고 차를 마시고 뻣뻣해진 허리도 편다. 잠시 누워보니 온몸이 녹진녹진 4시간 넘게 운전한 피로가 살살 풀린다. 두 사람을 배려한 주지 스님의 마음자리가 눈에 선하다. 손님 많고 행사 끊이지 않는 미황사. 스님이 건네주시는 초콜릿 한 알과 ‘고생했어!’ 말씀 한마디에 수진화, 관음행의 고단함은 진도 앞바다로 날아가 버린다. 오랜 세월 보왕삼매론을 새기다 보니 바라는 마음이 없어지고 평온해졌다는 관음행은 미황사와 특별한 인연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시부모님이 장수하시다 차례로 세상을 떠나셨는데 미황사 스님들 모두 오셔서 염불해주셨습니다. 세상 누가 그런 복락을 누리겠어요. 지성으로 축원했으니 아마 극락왕생하셨을 거예요.”
수진화의 삶은 미황사와 많이도 겹쳐져 있다. 세 아이 어릴 적에는 도량이 놀이터였단다.
“저는 법당에 들어갈 짬이 없어도 애들에게는 부처님께 3배부터 하라 시켰어요. 뭘 잘못해서 혼낼 일이 있어도 30분 참선이나 108배, 반야심경 10독이 체벌이었지요. 군대 간 큰아이는 휴가 오면 미황사 부처님께 꼭 인사드려요. 그리고 뭣보다 가정생활이 원만해졌어요. 제가 시골 살림과 남편에게 불만이 많았거든요. 공양간에서 일하는 동안 누구 탓하지 않고 스스로 바뀌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죠.”
지난해 가을 해인사 정대불사 때 경판을 머리에 이고 도량을 돌 적에 울컥해진 마음을 가누기 힘들었다는 관음행. 남도에서 해인사까지 초행길을 열 시간에 걸쳐 도착한 수진화는 새벽예불의 감동이 여전하단다.“큰절이란 이런 거구나 싶었어요. 가야산을 울리는 법고 소리는 제 가슴을 쳤고 범종 소리에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동백나무 숲길 따라 걸어 올라가면 병풍처럼 둘러싼 달마산 자락에 아름다운 절집 미황사가 있다. 한 번도 싫은 적이 없다는 그곳에 수진화, 관음행 두 불자는 오늘도 부처님께 올리듯 공양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