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상사 도량에 노란 산수유꽃이 피었다. 매화도 겨우내 북받치던 붉은 울음을 쏟기 목전이다. 그래서인지 바람은 더 차갑게 뺨을 스친다. 꽃 피고 지는 것, 무상하다는 걸 바람은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꽃은 바람이 이름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꽃님아~”
흰 개가 재연 스님의 뒤를 따른다. 스님은 큰절에 있는 화엄학림 강의를 마치고 점심공양 뒤에 숙소인 화림원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공양을 위해 매일 세 번씩은 오가야 하는 길. 바람이 흙길의 섶을 맴돌다 스님의 두루마기자락을펄럭이는데스님은걸음멈춰솜털벗는버들강아지들을손으로매만진다.
“이것은 스무 살쯤 됐고, 이것은 더 벗겨졌으니 서른 살쯤 되았을라나….”
스님은 버들강아지와 통하는 사이인가 보다. 그 길 위의 새들과도 나무둥치와도 길의 매무새와도 친밀해 보인다. 과수원 앞을 지나며 스님은 곧 사과꽃이 필 거라며 무상을 이야기한다. 그러다가는 사과밭을 둘러친 그물을 들추며 인드라망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이렇게 연결되어 서로를 비추고 있어요. 다른 것들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완전히 독립된 그물코 하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전체 속에 내가 있고, 또 나 없이 전체를 얘기할 수 없지요. 인드라망입니다.”
앞장서 가던 꽃님이가 멈춰 섰다. 스님을기다렸다가다시걸음을옮기는꽃님이와스님은인드라망안에서 보이지않는 고리를 매달고 함께 걸어간다.
스님이 오가는 길, 저기 입산하는 바람도 걸음을 잡는 돌부리도 묵언 중인 소나무도 가부좌 틀고 좌선하는 햇살도 부처님이었다. 처처불상處處佛像이요 사사불공事事佛供이라 하였으니, 그 말을 깨달을 수 있는 풍경이 내 눈앞에 있었다.
세 평 남짓한 흙방. 창호지문에는 햇살이 말갛게 발을 내리고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소박한 방 안에 살림이라곤 대부분이 인도어로 된 책뿐이다. 지리산 실상사 화엄학림에서 학장으로 지내는 스님의 가르침이 단번에 엿보인다. 초발심자경문을늘머릿속에펴두고지내시는구나싶다.
햇살 바른 오후, 스님 처소엔 인도 음악이 흐르고 있다. 노랫말 없는 음악을 들으며 스님은 갠지스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고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한다. 스님이 인도에 머문 것은 85년부터 98년까지, 14년의 세월이다. 불교의 근본을 알기 위해 태국을 거쳐 인도에 머물며 뿌나 대학 산스크리트 & 프라크리트 과에서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어릴때부터한자로된경전을보면서초기경전은어떨까하는궁금증이일었어요.”
불교가 중국을 통해 우리나라로 건너오며 우리는 한역 경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스님은 그 시대 중국 환경과사람들의요구에맞춰해석된대승경전을보며중국냄새를품게된것은아닐까하는생각이들었다. 출가한지얼마되지않아은사스님을따라내소사에갔다가옆에있던스님이읽던금강경을따라읽었다. 멋도 모르고 외웠다. 그런데후에그내용을공부하다보니말이너무도어려웠다. 그때 생각했다. 인도에 가서 초기 경전을 봐야겠다고. 인도에가서초기경전을읽기위해중기인도어인빨리어부터배웠다. 그래서 알게 된 것이, 지금 우리 불교가 한국 불교라고 할 수 없다는 것. 중국이라는 중간 다리를 거치면서 경전이 심하게 분칠 되어지고 장신구도 주렁주렁 달게 되었다는 것. 아무런 비판 없이 한역 경전을 최고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불교 학문, 수행, 실천의 바탕은 경전이에요. 부처님의 원음을 가장 가깝게 보존하고 있는 것이 빨리어 경전입니다. 거기엔부처님의목소리가고스란히담겨있더군요. 부처님의 깨끗한 얼굴을 대하는 것 같았어요.”
스님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뿌나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고 나서 여러 스님들이 차례차례 들어왔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제법 긴 세월을 인도 땅에서 보냈던 것은, 부처님의 원 가르침에 더 근접하고 싶어서였다.
“죽도록 사랑한다고 해서 진짜 죽습니까? 겁나게 좋아한다는 뜻이잖아요. 마찬가지로 대승경전의 화장한 얼굴에만 매달리면 안돼요. 저안쪽에 보이지 않는 것 들을 꿰뚫어봐야죠.”
정말 중요한 것은 행간에 있으니, 그 의미를 찾아내 그것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실천되고 구현되어야 할 것 인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공부들은 글자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한문 뜻 새기는 데 시간만 보내고 있으니, 그것은 공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스님은경전이한문과딱딱한용어로쓰여질필요가없음을말한다. 그렇다고해서 부처님말씀이 경건하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우리가당장의고통에서벗어날수있기위해서는쉬운말로풀어야한다는것이다.
“우리 법당에 가 봐요. 부처님이 다 황금색이에요. 부처님의 삼십이상 가운데 하나인‘수완나’는 황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좋은 색깔, 아름다운 빛깔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그게 황금색으로 굳어진 게 아닐까 싶어요. 부처님의 거룩함, 혹은 조촐하고 단아함이 황금이라는 물건과는 왠지 어울릴 것 같지않잖아요? 이런것들이실은우리의사고와실천이문자와언어에사로잡혀있다는예들이지요.”
그렇기에화엄학림에서의공부방식은이미우리말로번역된경전과전적들을주교재로하고, 가능한한한 문으로 번역되기 이전의 전적들을 참조하여 간과하기 쉬운 행간의 의미를 파악한다. 그러한 가르침이 어떻게 실천될 것인가 하는 쪽에 중점을 둔다. 따라서, 간단하게나마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 특강을 통해 중요한 용어들의 애당초 의미와 역사적 변천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게 한다. 그리고 모든 과목의 진행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니라 발표하고 토론하게 한다. 화엄학림은4년간의 기본교육 과정을 마친 스님들이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곳. 그렇다보니 일주일에 세 번 있는 강의라 해도 그 강도가 수월치 않다. 그런데 스님은 학인스님들의 ‘틀’을지워내는 것이 가장 큰 숙업이라 한다.
“절집에들면 이미 있는 틀도 없애야 하는 것 인데, 공부하면서되레불교라는특정틀에갇히는경우가허다해요. 더 단단하고 작은 틀에 갇히게 되는 거죠. 이미 있는 틀을 지워내는 노력이 수행인데 말입니다. 우리 경전공부가그틀을지우는것이되어야하지않겠습니까.”
그러기위해서는빨리어경전을현대우리말로쉽게옮기는일이무엇보다도시급하다한다. 우리가 진정한 한국 불교를 위해서는 한문 경전을 붙잡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도 물론 여러 스님들이 개인 작업을 통해 번역해 놓은 우리말 경전들이 있다. 그러나 여러 스님들을 비롯해 학자들이 모여 대대적으로 공동 작업을 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다.
“길가던 동네 초등학생도 읽어보고, 부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구나 알아야 해요. 학자도 못 알아보는 경전은 경전이 아니지요.”
부처님은 우리 가까이에서 쉬운 말로 가르침을 주셨다. 높은 곳에 앉아 권위적으로 어려운 말을 통해 설법하신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누구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 부처님의 말씀, 즉 경전이라는 것이다.
극락전 법당에 가면 가운데엔 아미타부처님, 그리고 오른쪽 편엔 대자대비관세음보살님, 왼편엔 대희대사 대세지보살님이 앉아 계신다. 자비희사 慈悲喜捨, 이 네 가지를 갖춘 분이 아미타 부처님이다. 아미타바, 즉 무량광은한없는빛이라하였으니불교가제시하는완성형인간이다.
“부처님은 감히 접근치 못할 존재가 아니고, 오히려노력을통해다가서서우리도어떻게하면저리될까하는것이지요. 우리도 모두 부처님이 되자는 거잖아요?”
한자 빼곡한 경전 앞에서 헤맬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부드러운 말씀에 귀 기울일 일이다. 그리하여 한없는 빛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니…. 스님이 방문을 스륵 열자 환하디환한 햇살 아래 꽃님 이가 있다. 스님말씀 곁에서 바라보는 그 빛은 한없을 것만 같다. 꽃님이는 와선 중이다. 바람이 문턱을 넘어온다. 그렇게 보이지 않게 깨달음은 올 것인가. 행간의 의미를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말이다. 그렇게 부처님의 맨 얼굴 앞에 설 수 있다면 말이다. 그나마 마음의 우둔함을 바람이 조금쯤 덜어가 주니 꽃 지는 것, 올봄엔 덜 아프겠다. 모든 변화가 무상이라 하였으니, 그 변화를 인정하는 것이 행복이라 하였으니, 그러니 무상은 무상한 바람처럼 이토록 아름답다.
열아홉 살이 되던 정월, 스님은 동백꽃 흐득흐득 지는 선운사로 출가하였다. 그러니 꽃 피고 지는 때, 마음이 아련해질 것만 같은데 방 안엔 스님이 찍었다는 꽃 사진이 어여쁘게 놓여 있다. 그 꽃들의 표정이 모두 말갛다. 웃음도시름도없이헤헤거리며서로어울려피어있다. 맑은 물처럼 시원하고 진득한 시처럼 향긋하다.
재연 스님의 행자시절을 담은 책 <입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능가 스님이 물었다.“ 어치께 왔는디?”재연 스님은 답했다.“ 시인詩人될라고요.”능가 스님은 어이없다는 듯 그러셨다.“ 허기사 큰스님들 게송 따러올시가어디 있기나 허겄냐마는….”
스님은 어려서부터 문학이 좋아 글을 썼다. 그래서일까, 스님의 책 <입산> <방랑시작> <빼빼> 등을 보면, 그 글귀가 꽃들의 떨림 같고 구름 그림자 같고 가랑비에 젖어든 댓돌 같다. 글귀뿐 아니라 스님이 풀어내는 말씀들 또한 한편의 시처럼 흘러온다. 구도자이며작가인스님은결코어렵지않은말로말씀을풀어내지만, 곰곰 어려워지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하루 빨리 모든 경전들이 우리말로 읽혀질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거듭 강조했던 스님의 뜻을 알겠다.
스님 처소에서 나오니 눈발이 날린다. 말간 얼굴들처럼 쏟아져 내게로 오는 눈발들이 마치 경전의 글자들 같다. 지금은 눈에 보이지만 곧 녹아버릴. 그러나 그때, 눈발과눈발사이로보이는산수유꽃들이눈송이를받아 안는 자비를 엿보았다. 그러니 어깨에도 발등에도 머리 위에도 쌓이는 삼월의 차가운 눈발을 털어내지 못했다. 갸륵하게내리는눈처럼스님은사붓사붓마당을가로질렀다. 눈 온다고 냅다 몸 감춘 꽃님이를 힘껏 부르며…. 눈 내리는 산길을 걸어 내려오며 생각한다. 고통이 입 안에 가득 고였을 때 얼른 그 고통을 쏟게 해줄 것은 쉽게 다가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 경전일 것이라고. 스님의 바람은 결국 부처님의 가르침이 바로 지금이자리에드러난불국정토의실현인것이다. 스님의 바람이 머지않아 눈앞에 펼쳐지리라. 사바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