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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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신은주
2006년 04월 290호
어느새 귓가에 스치는 바람마저 속삭임을 전하는3월의 어느날. ‘가야산의 봄은 어떤 것인가?’를 묻는 사람을 만났다. 한껏 멋을 부린 어휘에 온갖 미사려구를 사용하고 싶었지만 짧은 글재주에 단지 2005년 3월 느지막히 맞은 봄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야산은 다른 지역보다 3월말에도 겨울의 시샘이 계속되기에 봄의 훈풍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봄이 더디 오는 곳이라 남녘의 꽃내음이 모두 흐르고 난 뒤에야 분홍의 꽃망울들이 속살을 드러내고 찾아오는 이들을 반겨주는 것이다.
홍류동 깊은 계곡을 굽이굽이 돌아들어오는 길에서, 남산제일봉을 힘겨이 올라가는 그 고즈넉한 길에서 햇살이 내리쬐는 그 사이사이를 어린 새순들은 기지개를 켜고 봄은 발가스레 볼을 붉힌 새색시처럼 수줍게 입술을 내민다.
하나 둘 움츠린 새싹들의 고갯짓들이 활기를 더하는 여러 날이 하릴없이 지나가던 어느날, 가야산일대에 일순변화가 찾아왔다. 꽃잎하나 하나의 수줍음은 간데없이 보름달같이 피어올라 산 전체가 커다란 한송이 꽃나무로 탈바꿈한 것이다. 보고 또 보아도 하룻밤새 피어난 달맞이 꽃인양 붉고 희게 피어나‘고향의 꽃대궐이 이곳인가?’라는 환상을 보여주었다.
산 너머 살던 그녀였는데 조심스레 아장아장 다가오더니 어느새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고, 여신의 날개처럼 한없이 넓고 포근한 손길을 내리우다가 그 붉디붉은 치마폭으로 가야산을 감싸버리는 환상… 봄이 왔음을 다시금 알려 주었던 것이다.
춘분에 피어나는 해인사 장경판 전의 연꽃에조차 향기가 묻어나고, 묵묵히 법당에 자리하신 부처님 전에도 볕이 내리어 그 낙낙하신 품이 더없이 푸근하니, 그곳에 나고 자란이들 뿐만 아니라 찾아오는 이들까지 봄의 흥취에 절로 웃음이 묻어났던 따사로운 한때였었다.
해마다 봄은 또 오고가고 있건만 지금 이순간만이 새로운 봄인 것처럼 새록새록 또 다른 만남에의 설렘과 기쁨을 전해주는 봄의 향연은 언제나 모든 것을 새로워 보이게 한다.
가을녘의 낙엽 쌓인 길을 따라 거닐며 되짚어 보았던 고뇌 어린 기억들도, 봄볕 아래 그 길을 걷노라면 모두가 지나간 이야기일 뿐 추억으로 빛바래고, 매번 듣는 새들의 소리 또한 어찌 봄볕 아래에서는 이리 흥겨운 노랫소리 같기만 한지….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 걸음에도 들썩임이 묻어나고, 겨우내 추위에 지친 어깨도 마냥 으쓱으쓱 솟아오르고, 두둑한 살집이 붙은 허리춤도 흥에 겨운 듯 달싹달싹 움찔대고, 전화수화기 너머 친우의 목소리에도 봄은 묻어와 반가움이 그지없고, 너나없이 하하호호 웃음소리 또한 즐거우니… 봄은 어디 한 군데 빠지는데 없는 미인인지라 보고 또 봐도 한없이 기쁘고 이쁘기만 하다.
봄이라 춘삼월. 아지랑이 흔들리고, 다시금 달큰한 봄내음이 남으로부터 바람결에 섞여오면 훈풍에 몸을 맡기고 노래하는 새들….
봄을 기다리며 마음 설레는 어린 소녀처럼 매년 찾아오는 객들과의 새로운 만남에 언제나 또 다른 기대에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가진 이들이 가야산 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