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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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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손정애 2006년 04월 290호
삼보일배 달마다 둘째 주 토요일에는 해인사에 간다. 해인사 수련동문회 법회가 있기 때문이다. 절 가까운 곳에 사시는 신심이 도타우신 분이나 오래오래 다니신 분들이 들으시면 한 십 년 다닌 듯 생각하시겠지만 올해 섣달까지 다녀야 꼭 삼 년이 된다.
가야산의 사계절이 무상함을 보며 자연이 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듣기위해 무던히 애쓰지만 있는 그대로 일체가 되려면 아직도 멀어서 감감 하기만 할 뿐이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이지만 (가끔 두어 번 다녀갈 때도 있지만) 해인사에 가면 밋밋하고 정체되었던 마음이 생기로워지고 밝아진다.
특히 침묵의 계절 겨울이 가고 산과 들의 생명이 경쾌한 교향곡을 연 주하는 봄에는 홍류동에 들어서는 순간, 맑고 푸른 설렘으로 마음은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듯 촉촉하게 살아나고 도시에서 시름시름하던 봄앓이는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버스를 타고 오다가 해인사 입구에 내려서서 고개를 들어 새파란 하늘을 보며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난 후, 성큼성큼 걸어 일주문까지 여유롭게 가면서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에, 꽃이 피어나는 자리에 고요함을 느끼면 내 삶 속에 봄도 새롭게 살아난다. 봄은 봄(觀)이라 했듯이 내 자신을 새롭게 보고 자연도 새롭게 봄으로써 대자연이 소박하고 맑은 도반임을 깨닫게 된다.
일주문의‘가야산 해인사’현판을 보고 합장 반배를 하면 참으로 감사하다. ‘해인’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때와 알게 되었을 때에 해인사에 다니는 내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모든 절 이름은 부처님과 불법을 상징하지만 해인사는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해인’은 삼라만상을 있는 그대로의 진실된 세계로 나타내는 커다란 인장, 즉 우리들의 한량없는 마음의 바다에서 일고 있는 가지가지 물결 또한 무명의 망령된 바람 때문인데 이 무명업식에서 훤출히 벗어나 전도된 번뇌의 물결이 쉬면 자연 맑고도 청정한 본래의 성품이 드러나 모두 부처님의 깨달음의 세계에 옴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해인사는 이러 한 세계, 즉 부처님의 근본정신을 가르치려는 숭고한 이상을 가진 도
량이며 또한 팔만대장경을 모시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불법이야 시방세계에 아니 계신 곳 없다지만 나는 이래서 해인사를 더 좋아한다.
법복으로 갈아입고 대적광전과 법보전에 참배를 하러 간다. 시간이 되면 108배도 하고 탑돌이 하듯 공손히 합장을 하고 수다라장을 한 바퀴 돌기도 한다. 티베트 사람들은 진언이 새겨져 있거나 경전이 들어 있는 마니차(경통)를 한 번 돌리면 그 경전을 한 번 읽은 효과와 같다고 하는데 수다라장을 한 바퀴 돌면 그렇게까지는 아니어도 경전을 수지 독송하는 수행공덕이 여여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내려와서 동문회 법우들과 인사를 하고 그간의 안부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공양을 하고 예불을 드린다. 강원의 학인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모시면 힘찬 활기에 신명이 나서 신심이 증폭된다. 천수경까지 독송하고는 동문회 법회의 일정이 따로 있어서 대적광전을 내려온다. 법당 앞에서 잠시 어둠이 살포시 내린 경내를 둘러보면 산사를 찾은 평화를 담뿍 느낄 수 있다. 감색 하늘에 초롱초롱한 무수 한 별빛들을 바라보고 산 속의 싸하고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 그대로 자연과 하나가되는 것 같다.
다 모여서 수련동문회 법회 입재식을 하고 스님의 법문을 청해듣거나 계획되어진 기도를 같이한다. 그리고는 육법공양으로 올렸던 공양물을 내려서 법우들과 함께 다과회를 하며 동문회원간에 소식도 전하고 해인사의 소식도 전해 듣는다.
좀더 친분이 있는 법우들과 그간의 여행기나 수행기를 듣는 시간이다. 법우들 중에 생활수행을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분들이 많다. 자정이 되면 잘 사람은 자고 기도를 할 사람은 철야를 하러 모인다. 해병대 훈련을 능가하는 해인사수련회 출신 들이다 보니 법회 일정도 다소 빡빡하게 마련하는데 법우들도 해인사에서의 1박 2일의 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하는 기도는 대중의 원력이 모아져서 혼자 하는 것보다
수월하다. 수마의 고약한 태클만 없으면 힘들이지 않고 기도 할수 있다. 새벽 3시가 되면 다시 세수를 하고 새벽예불을 위해 대적광전에 올라간다. 새벽예불은 장엄하고 위엄이 있다. 발원문을 독송하실 때 더 숙연해지고 과연 나는 얼마나 간절한가 되돌아보게 된다. 보경당으로 내려와서 다함께 108예참과 금강경 독송을 한다. 새벽에 영하의 날씨만 아니면 암자를 순례하거나 성철 큰 스님 사리탑으로 가서 참선을 하는 일정이 있다. 새벽의 푸르스름한 여명 속에 깨어 있기가 평소에는 어려워 절이 아니고는 경험하기 힘들다.
아침공양을 하고 지부별 모임을 하고 회향식을 한다. 산회가를 부를 때마다‘마음은 언제라도 변하지 마세’라고 하는데 집에 와서 며칠만 지나고 나면 해인사에서 깨어 있던 그 마음은 어디로 숨바꼭질하러 가고 없다. 사천왕문을 지날때가 다듬듯이 마음이 두 개라서 꼭 바꿔치기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4월에는 해인사에 두번 가야 한다(홍류동 벚꽃을 보려면 한 번 더 가야겠지만). 그 한 번은 법보종찰 해인사의 연중 최대의 행사인 4월 정대불사가 있기 때문이다. 가장 웅장하고 신심이 저절로 나는 우리나라 최대의 불교 신앙행사이다. 경판을 머리에 이고 구광루 앞 마당에 그려진 법계도를 따라 법성게를 독송하며 한 바퀴 돌아 만다라를 완성한다. 경판을 햇볕에 쬐여 습기를 막고 곰팡이와 벌레를 퇴치하고 뒤틀림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단순한 기능적 의미보다 진리를 사랑하는 마음과 법보를 수호 하는 정신, 즉 지혜를 바탕으로 한 수행과, 자비를 바탕으로 한 교화를 상징한 행사라고 하셨다. 불사 때 보면 노보살님들이 구부정한 허리를 하시고도 극진한 정성으로 경판을 이고 간절하게 법성게를 독송하시는 모습을 뵈면 참으로 감동적이다. 인간으로서 재앙을 없애고 만복을 기원하는 가장 처음 일어나는 발원을 하시겠지만 그 정성이 법계에 가닿아 법계를 움직일 것이다. 불자
들은 절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사 에 참여하다 보면 타성에 젖기도 하고 이모저모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을 내기도 하는데 항상 처음 세워진 뜻을 잃지 말아야 한다. 고려대장경 불사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고려의 국운과 백성을 지키기 위해 부처님의 가피력에 힘입어 이겨내었던 것을 되새긴다면 정대불사에 참여하는 우리의 서원도 물질적 풍요 속에 정신적 빈곤이 극심해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드높여야한다.
수행은 무아를 체득하는 것이다. 유정무정의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천년의 세월을 지나온 장경각 법보전에서 절을 하는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것이다.
지금 해인사에도 싱그러운 봄이왔다. 봄기운으로 활기가 가득한 해인성지에 가면 맑고 향기로운 꽃 한 송이가내 속에 피어난다.


첩첩 쌓인 푸른 산은
부처님의 도량이요
맑은 하늘 흰구름은
부처님의 발자취며
뭇 생명의 노래는
부처님의 설법이고
대자연의 고요함은
부처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