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온 조간신문에서 노란 꽃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끈다.
거뭇거뭇 한 나뭇가지들 사이로 오롯이 고개를 내민 노란 꽃들… 지난해 식목일에 난 큰산불로 천년 고찰이 잿더미가 돼버린 강원도 양양 낙산사 경내에 핀 복수초들이다.
지난해 여름휴가 때 가족과 함께 낙산사를 찾았을 때 시커먼 땅위로 솟아오른 초록빛 풀과 그을린 나뭇가지에서 움튼 소나무 잎들이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새삼 일깨우더니 이 봄에는 복수초가 이렇게 희망을 전해준다.
한두 송이가 아니라 무더기로 핀 꽃들이 희망의 봄노래를 합창하는듯하다.
사전을 찾아보니 복수초福壽草는 한자 뜻 그대로 행복과 장수를 상징 하는 꽃이다.
미나리아재비과의 여러해살이 풀로서 학명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소년 아도니스 (Adonis amurensis)에서 따온 이름 이다.
서양의 꽃말은‘슬픈 추억’인 데 이보다는 동양의 꽃말‘영원한 행복’이 훨씬 밝고 정답다.
이른 봄 눈밭 위로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인데‘슬픈 추억’이 웬 말인가. 기나긴 겨울을 딛고 일어서는 봄꽃은 삶과 생명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희망이다.
여름이나 가을, 겨울을 기다린다는 사람은 드물어도 봄을 다들 기다리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봄꽃은 대개 3월에 시작되지만 전 성기는4월이다.
그중에서 도고즈넉 한 사찰에 피는 꽃은 고요함 위에다 밝음을 더하며 보는 이를 기쁘게 한
다.
미당의 시로 더욱 유명해진 고창 선운사의 동백이며 화개장터에서부터 쌍계사 입구까지 10리에 이른다는 쌍계사 벚꽃길, 일주문에서 절에 이르는 길에 은은한 사과꽃 향기를 뿌리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영주 부석사, 산벚꽃이 수려한 경치를 만들어내는 공주 마곡사, 벚꽃과 목련,모란, 앵두, 철쭉, 영산홍 등의 갖은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는 승주 선암사, 해인사 진입로에 두 줄로 도열한 벚꽃의 파노라마와 홍류동 10리 계곡의 봄꽃잔치… 4월엔 어느 산, 어느절에 가도봄꽃의 전성기다.
그 온갖 꽃들 가운데서도 나는 진달래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진달래가 피는 4월이면 집에서 가까운 관악산을 오른다.
관음사를 지나 능선을 타고 연주암으로 가는 길은 온통 진달래 천지다.
등산로 주변은 물론 등산로에서 벗어난 한적한 숲속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벼랑 끝에도 연분홍 진달래가 봄 햇살 속에 때론 수줍은 듯 오롯이, 때론 잔치를 벌이듯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진달래가 한창일 때쯤 오래 도록 배어 있어도 좋을, 봄 향기를
온 몸에 묻히러 가야겠다’던 어느 시인의 말처럼 봄 향기에 흠뻑 젖어
산을 오르는 기꺼움이란… 살며시 손을 내밀어 진달래꽃을 따 꽃술을
털어내고 꽃잎을 입에 넣어본다. 싱그럽고 상큼한 향기가 입 속에 번지
면서 봄이 몸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연주암에서 밥 한 그릇 비벼 먹고 다시 진달래를 벗 삼아 하산하노라
면 대학 시절 많이 불렀던‘비공식’적인 4·19의 노래가 절로 흘러 나
온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스러져 간, 젊음 같은 꽃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
엔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이영도 시인의‘진달래’를 노랫말 삼아 곡 을 붙인 것인데 곡조의 애잔함도 그러려니와 가사의 비장함이 결국 눈
시울을 적시고 만다.
대학 때 4·19 집회가 열리면 늘상 이 노래를 부르던 여학생의 절절한 목소리에 눈시울을 적셨고 주먹을 불끈 쥐곤 했는데 그 뒤로도 이 노래를 떠올릴 때
마다 감회에 젖곤 한다.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는 진달래가 퍽이나 많았다. 그땐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했는데 배고픈 춘궁기를 보내던 시절, 먹을 수 있는 꽃이었기에 그렇게 불렀다. 진달래와 생김새는 비슷해도 먹으면 안 되는 철쭉은‘개꽃’이라 했다. 그에 비하면 진달래는 그냥 먹어도 좋고 화전을 부쳐도 예쁘고 술을 담가도 그 향이 일품이니 참으로 좋은 꽃, 그래서 참꽃이라고 부르지 않았을까. 꽃을 보듯 사람을 보고 꽃을 만지듯 사람을 대하고 꽃에 감탄하듯 사람에 감탄하고 싶다던 어느 책의 구절처럼 여린듯 하면서도 강하고(진달래는 산성토양에서도, 메마르고 거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모든 것을 내어주는 진달래의 덕성은 인정 많은 우
리네 민초들의 심성을 닮았고 보살행을 강조하는 절집의 가르침과도
닮았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진달래 축제의 현장마다 사찰이 있는 것은 이런 인연 때문일까. 4월 중하순이면 정상에서 조화봉 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 전체가 진달래로 뒤덮이 는 비슬산의 주봉인 대견봉 밑에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된 고찰인 유가사가 있다.
4월이면 진달래로 온 산 이 붉게 타오르고 진달래 축제가 열리는 여수의 영취산에는 기도도량인 도솔암과 흥국사가 자리 잡고 있다.
강화도 고려산도 진달래 군락지로 유명한데 정상 북쪽의 백련사, 동쪽의 청련사, 서쪽 낙조봉 아래의 적석사가 있고, 천안 은석사는 진달래축제를 직접 마련한다. 서울의 화계사와 서울 인근의 청계사, 봉선사도 진달래가 곱다.
‘속세나 청산이 어찌 다름이 있으리요(世與靑山何者是) 봄빛이 있는 곳에 꽃안피는 곳이 있겠는가(春城無處不開花)’라고 했던 경허 스님의 말씀에 비춰보면 많은 꽃들 중에 유
독 진달래를 좋아함이 애착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진달래가 피는 곳에 다른 꽃은 피지 않던가. 다른 풀은 솟지 않던가. 그러나 기억은 경험의 산물이라, 적어도 내게는 진달래가 그런 존재다. 어린 시절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주먹 움켜쥐던 학창 시절의 혈기를 눈물로 바꿔 놓았던 그런 꽃이다.
벚꽃이 만발한 해인사 진입로를 달리면서도 길 양편의 벚꽃보다는 그 너머 산에 듬성듬성 핀 진달래가 먼저 눈에 띄었으니 이 편애를 어찌할까. 바야흐로 봄이다.
엊그제 들른 서울 봉은사에는 산수유가 대웅전 뒤로, 종각 옆으로 두루두루 피었다.
산수유가 지고 나면 꽃망울을 터뜨릴 작정인지 목련도 한껏 물을 머금고 있다. 어디 봄꽃들뿐이랴. 쑥은 새끼손가락만 하게 자랐고 일찌감치 머리를 내밀었다가 꽃샘추위에 놀랐던 풀들도 다시금 살랑대는 봄바람에 화답이라도 하듯 키를 높이고 있다.
적잖게 추웠던 지난겨울, 봄이 언제 오나 기다릴 땐 지루하기도 했지만 봄은 이미 눈 앞에와있다.
진달래도 좋고 산수유도 좋다. 목련도 좋고 벚꽃, 개나리, 동백도 좋
다. 4월에는 대자연이 장엄하는 아름다운 봄꽃 세상을 찾아 산사로 떠나야겠다. 진달래를 만나면 더 좋고 다른 꽃이면 또 어떠랴. 작으면 작은대로, 크면 큰 대로, 색깔과 모양이 다르면 다른 대로 너나없이 어울려 사는 그네들의 삶이 그대로 법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