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31일 오후 2시, 청화 큰스님을 모신 큰 법회는 두려움과 설렘 속에서 대중이 2500여 명이나 참여한 큰 법회가 되었다. 큰스님께서는‘이렇게 만나는 것도 인연법에 의함’이라고 말씀하시면서‘천지우주 두두물물이 부처 아님이 없고, 내 마음이 바로 부처’임을 누누이 일러주셨다.
그렇게나의스승이신청화큰스님과대면하면서첫법회를마치고난이후, 선우선방도반들은 환희 심에 찬 마음으로 더욱 정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청화 큰스님께서 법문하시는 법회가 있는 날이면 어디든지 달려가 참석하면서 수행정진에 마음을 모으고 있을 때 출가한 큰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떻게 하지요? 엄마가 큰애를 좀 맡아주셔야 하겠어요.”
아이들 돌봐주던 시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당분간만 길러 달라는 것이었다.
일이그렇게되다보니나의평생도반인대자월보살은선방에가지못하게되었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돌보는 사람을 들이고 나서 며칠 후부터 다시 선방에 나가게 되었지만, 어린아이를 어미와 떨어뜨려 놓은 것이 몹시 마음에 걸렸다.
그 해 4월쯤인가, 큰스님 법회가 성륜사에서 있다는 연락을 받고 선방 도반 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다. 해서 관광버스를 준비하고 승용차 몇 대를 더 이용하기로 하였다. 그때 나는 간절히 큰스님을 향해 기도를 드렸다.
‘스님, 이 아이가 무엇을 잘못 했으며,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이 아이가 어미 곁으로 하루 빨리 가겠습니까?’하고 외쳤다.
그때 마침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스님이 다가와 내 앞에 멈추셨고, 나는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서서 스님께 합장의 예를 올렸다. 스님께서는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애기가 참 예쁘구나!’ 하셨다.
‘아! 스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감사합니다.’
그렇게 손녀가 큰스님을 뵙고 난후 한두 달 지난 어느 날, 서울에 사는 사돈내외분(손녀의 할아버지 할머니)이 진주에 왔다. 그런데 어린 손녀는 엄마도, 할아버지 할머니도 알아보지 못했다. 얼마 전 내가 사돈의 생일이어서 갔던 것에 대한 방문이었을 뿐, 사돈 내외는 손녀를 데리고 갈 생각은 아니었다.
그날 오후에 큰딸과 사돈 내외를 배웅하러 공항에 나갔다. 단 몇 시간 동안 엄마를 알아차린 아이를 어떻게 달래며, 어미와 어린 딸이 우는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생각하니 눈시울이 뜨거워 왔다.
그런데 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있는 동안 손녀의 할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가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예기치 못했던 일이라 옷이며 장난감이며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었지만 갑자
기 모든 사람이 환한 얼굴이 되었다. 아이 어미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나의 스승 청화 큰스님은 그렇게 내 마음을 헤아려주시고 얽힌 것을 풀어주셨다. 그때도 그렇고 세상에 아니 계신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있다. 그러한 스승이 계심에 감사의 합장을 올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