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여자로 태어나야지~.”『뉴질랜드의 아름다운 강을 굽어보며, 두 남자는 함께 로프도 매달지 않은 채 점프를 한다. 교각에서 까마득히 먼 강 아래로. 지극히 사랑스런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서….
두 사람은 담임선생님과 학생의 관계이다.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인우는 자신이 담임을 맡고 있는 반 학생인 현빈에게서 과거 애인이었던 태희의 모습을 발견한다. 태희는 17년 전 인우가 군에 입대하던 날, 마중을 나오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결국 인우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낳고 살게 되지만, 17세의 고등학교 남학생인 현빈에게서 여러모로 태희의 흔적을 발견하고,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어느덧 현빈에게 사랑을 느끼게 되고 만다.
현빈은 처음에는 담임선생님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선생님의 지나친 관심과 주위의 근심어린 눈길로 인하여 마침내는 반발하고 만다.
어느덧 동성애자라는 소문과 함께, 담임선생님은 학교를 떠나게 되고, 그제서야 현빈은 라이터에 그려진 자신의 전생모습을 보면서 점차 전생을 떠올리게 된다.
마침내, 전생에 인우가 기다리던 용산역으로 달려가는 현빈, 그는 이미 금생의 남학생인 현빈이 아니라, 전생의 여대생이었던 태희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해서, 17년 만의 재회가 이루어지고, 인우는 기억을 되찾은 현빈과 함께 전생에 지리산 꼭대기에서 약속했던 뉴질랜드로 떠나게 된다.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서.』
이 영화는 윤회전생의 모습을 심플하면서도 정확하게 묘사해주고 있다. 또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죽음은 단순한 끝이 아니라 또 하나의 시작임을 알려주고 있다.
육신의 삶과 죽음, 그것보다 더 질긴 것은 마음의 애착이다. 전생에 죽도록 사랑했으므로, 금생에는 몸을 바꿔 함께 동성 그것도 스승과 제자의 인연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이끌리는 감정을 억누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인연이란, 영화에서 밝힌 것처럼 이 지구상 어느 한곳에 조그만 바늘 하나를 꽂아놓고 하늘에서 겨자씨가 나풀나풀 떨어져서 그 바늘 위에 꽂힐 확률, 그 계산할 수도 없는 확률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정도의 애착이라면, 다음 생에 설혹 함께 여자의 몸을 받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착의 찌꺼기가 완전 연소될 때까지는 계속 태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극진한 사랑은 가슴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멋진 사랑에 빠지는 환상을 갖는다. 가슴앓이를 할지언정 진정한 사랑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어떤 걸까?
대부분의 사랑은 중도에 퇴색된다. 마음이 변하거나 상황이 변함으로써 결국 탈 만큼 타면 꺼지는 불씨처럼 다 타버리고 만다. 미적미적 타느냐, 급격히 타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서로의 마음이 한결같아서 가장 잘 된 경우가 이 영화의 케이스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영화의 사랑 또한 내생에서 또 내생에 이르도록 과연 영원할까?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근심 걱정 괴로움 없을 줄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하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무지에서 비롯한 인간의 속성일까, 아니면 주위에서 그렇게 분위기를 만들기 때문일까?
진정한 사랑과 애착은 구별되어야 한다. 애착이란 결국 윤회의 굴레 속에서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스스로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상대방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달마, 이 영화를 말한다.
‘온 세상이 오르락내리락 물 긷는 두레박,
기나긴 세월 동안 숱하게 왔다갔다했네.
이 몸뚱이 금생에 제도하지 않는다면
다시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할 것인가?’
三界猶如汲井輪 百千萬劫歷微塵
此身不向今生度 更待何生度此身
-《석문의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