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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념무상절일체 無念無想 絶一切 - 건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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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종현 2006년 01월 287호
출가를 한 지 10년이 넘다보니 많은 부분 변화가 온다. 그것 중 하나는 건망증이다.
물론 나이를 먹은 탓도 있지만 굳이 변명을 하자면 몸도 마음도 모두 내려놓으라는
부처님 가르침도 한몫 한다. 거기다 책도 안 보고 일어나는 생각도 지워야 하는 출가생활에 젖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건망증에 물들고 있는 것이다.
요즘 편집실 통장관리 때문에 은행을 일주일에 한번은 간다.
그때마다 거의 두어 번은 차로 왕복을 한다. 도장을 안 가지고 와서 한 번, 비밀번호 몰라서 한 번…….
돈과 관련된 은행일이 이럴진대 다른 부분은 오죽하랴. 지혜종자가 많이도 말살된 모양이다.

한 5년 전 해인강원 때 지금은 제주도의 어느 큰절에서 주지소임을 보고 있는 강원스님 얘기다.
해인사는 행사 관계로 많은 신도들이 오가고 이때를 맞춰 스님들은 기금 마련을 위해
연경당 옆에서 다라니를 판다. 다라니를 많이 팔아야 넉넉한 강원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스님들은 매우 적극적이다. 이야기하려고 하는 이 스님은 몸이 알래스카 곰같이 스님들 중에
초거구로서 보기만 해도 위압적인 모습이다. 웬만해선 스님들도 말을 잘 안 건다.
그런데 이 스님에게 한 가냘픈 여학생이 반가운 듯이 인사를 하는 것이다.
“스님, 안녕하세요!”
함께 합장하며
“예, … 저를 아시나 보네 … 가만보니 얼굴이 많이 익은 것 같기도 하고….” 잘 기억이 안 나는 눈치다.
순간 기억을 잘 못하는 스님 때문에 학생은 당황하는 모습이다.
스님이 물었다. “이름이 어떻게 돼요?”
“저기… 저 박 미영 인데…….”
“박미영? 나도 박씨인데…… 미영? 음… 조카 중에 미영이가 있는데… 아!”
이제야 스님은 속가의 조카인 줄 알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출가한 지 5년째 되는 해의 얘기다.

스님들은 모르는 것이 미덕이 될 때가 많다.
연예인, 최신가요, 정치, 경제 등등 시사문제와 사회현상에 대해 알아도 모른 척하는 것이 미덕이다.
안다고 또박또박 아는 척한다면 공부엔 영 관심없는 스님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이, 무관심한 것이 스님들에겐 공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지금 절마당을 지나가면 마주치는 여러 신도분들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어디선가 만난 듯한 느낌의 신도들은 이야기도 걸고 안부도 묻곤 한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늘 웃는 표정을 지으며 나도 안다는 듯한 표정으로 신도들을 맞는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념무상절일체無念無想 絶一切.
오늘도 공부 잘 된다는 자족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