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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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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이진명 / 경기도 부천시 2006년 01월 287호
병술년, 그 불안한 삶의 초입에서
한 성자가 있었다. 그는 아무 가진 것 없이 홀로 숲 속에서 살고 있었지만 아무런 부족함도 느끼지 않았다. 어느 날 절친한 친구가 찾아와 귀한 책을 한 권 주고 갔다. 그는 그 책에 매료되어 날마다 그 책을 읽었다. 그런데 어느 날 쥐가 그 책을 쏠아버린 것을 발견했다. 귀한 책을 지키기 위해 고양이를 한 마리 기르기로 했다. 그러자 고양이에게 먹일 우유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는 다시 젖소를 한 마리 구해왔다. 이렇게 되자 그는 이 짐승들을 혼자서 다 돌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젖소를 돌보아 줄 여자를 한 사람 구했다. 이렇게 숲 속에서 몇 해가 흘러가는 동안 그는 아내와 두 아이와 집과 고양이 떼와 젖소들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제 그 성자는 책을 읽을 시간도 명상할 여유도 가질 수가 없었다. 대신 하루 종일 아내와 자식들과 젖소들과 고양이 떼, 그리고 그 밖의 잡다한 일들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시도 근심이 떠나지를 않았다.(법정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에서 발췌)

아침에 머리를 빗다가 혹은 화장실에 들렀을 때 문득 거울 속에서 낯선 누군가와 마주친 적은 없는지요? 말없이 나를 응시하고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면서 ‘아, 저것이 나로구나. 내가 어느새 저런 모습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으신지요? 요즘 거울 속의 내 모습은 귀 옆으로 흰 머리카락이 보이고 눈가에 잔주름이 잡히고 대부분 좀 피곤한 모습입니다.
그러고 보니, 병술년丙戌年 개띠해를 맞으면서 오팔년 개띠로 태어난 저도 어느새 마흔아홉이 되었습니다.
오십이 가까워지면 삶이 불안해집니다. 지금까지 먹고살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왔습니다. 두 손에 빵을 가지려면 아직도 한참을 더 뛰어야 하는데, 알게 모르게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늙은 개 취급을 당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아직도 위세를 과시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많은 분들은 한해 한해, 아니 하루하루를 시한부인생처럼 가슴 졸이며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기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는데 선수교체의 휘슬이 울리고 힘에 넘치는 젊은 교체 선수가 내 포지션으로 달려들어올 것 같습니다.
인도에서는 쉰 살의 나이를 ‘바나 플러스’라고 하는데 이는 ‘산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때’라는 뜻입니다. 오십 년의 인생을 살면서 사회적인 의무를 다했으면 이제 산으로 떠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이 쉰 살이 되면 세속적인 짐을 훨훨 다 벗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십대에 일을 시작해서 오십까지 일하고 나면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너스로 자기자신을 찾아 떠나는 인생일주 여행권을 줄 만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는 보너스가 ‘준비없는 이별(퇴직)’이고 앞에 남겨진 것은 ‘노후불안’, 기댈 곳이라곤 너무나 가벼운 국민연금 정도뿐이라면 어떻겠습니까? 인생 육십도 아닌 인생 팔십이 되어버린 요즘, 겨울 밤처럼 기나긴 여생을 살아갈 일이 장난이 아닙니다. 더구나 아직 학업도 다 마치지 못한 아이들이 힘빠진 어깨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상황에서는 참 갑갑하지요. 아무리 ‘무소유’를 실천한다고 해도 마음 홀가분하게 산으로 떠날 준비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십이 가까워지면 내 빈 손이 더욱 처량해 보이고 내가 짊어지고 갈 배낭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병술년, 그 불안한 삶의 초입에 내가 서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솔개는 70세까지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40세가 되었을 때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한다. 솔개는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잘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힘들게 된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게 된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 년에 걸친 고통스런 갱생의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산 정상으로 날아올라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져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게 된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빠진 발톱이 새로 돋아나면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반년 정도가 지나면 새 깃털이 돋아나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어떤 영화에 한 남자 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분필로 그린 원 안에 갇혀서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억지로 그 원 안에 들어간 소년은 악마의 손으로 들어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공포에 싸인 채 원 밖으로 나올 생각을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원을 지운 후에야 비로소 소년은 원 밖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은 믿음 체계입니다. 외부로부터의 주입, 자신의 경험과 판단을 바탕으로 우리는 원을 그리고 스스로를 그 원 안에 가두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원 안의 일들은 가능하지만 원 밖의 일들은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이처럼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단순하고도 명확합니다. 발을 들고 선을 뛰어넘는 것입니다(放下著). 그순간 우리가 그려 놓은 원은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관념의 감옥에서 빠져 나와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잘못 설정된 한계를 부정하려는 의지와 단호한 실천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원안의 생활에 길들여진 몸과 마음은 그 단순한 해답을 쉽게 수용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그 해답을 알고 있지만 기존의 내가 송두리째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일부러 그 문제로부터 눈길을 돌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오십이 가까워지면 더 늦기 전에 마음의 출가를 해야 합니다. 출가란 잘못된 가치로부터 떠나는 것입니다. 잘못된 가치에 기반을 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설정하고 안주해왔던 선을 뛰어넘는 인생의 새 출발입니다.
병술년, 그 새로운 출발의 초입에 내가 서 있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굽이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랑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 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 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이정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