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간적으론 분명 낮이어야 하는데떠나야 할 때를 알고 있는 듯한
초라하게 버티고 있는 마지막 한 장의 달력을 바라보니
많은 생각들이 질서 없이 교차한다.
오로지 앞으로밖에 갈 줄 모르는 세월,
그 세월에 실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
아쉬움을 짊어진 채 돌아서가는 한 해의 허탈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여느 해와 다름없는 똑같은 회한과 미련으로 내 마음은 침잠되어 가고 있다.
뜬구름으로 왔다가는 허망한 인생 속에서
몸으로, 맘으로 병든 아픈 상처들을 난 얼마만큼의 사랑으로 다독이며 보살펴왔는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래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여 살았노라며
득의만면한 모습으로 가는 해를 의연하게 배웅하고 싶었건만…
뭔가 채워지지 않은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은
미처 쏟아내지 못한 사랑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하늘 어딘가가 새고 있는듯 온 종일 눈이 내린다.
하염없이, 정말 하염없이……
거칠게 난무하던 눈송이도 시간 사이로 스며들며
이젠 수줍은 여인과도 같이 고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창가에 편집된 겨울나무 가지 위로 그리운 이름 하나하나 살포시 내려앉는다.
녹아내린 눈물(?)방울들이 시린 가슴 속으로 스며들며
오랫동안 잊고 있던 정겨운 얼굴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가버린듯, 잊혀진듯 멀어져간 사람들. 사람들.
어느 사이, 하늘과 땅은 경계도 없이 뒤엉켜져 버렸고
대지를 온통 하얗게 덮어버린 거대한 흰색의 위력 앞에서
이미, 그 어느 색깔도 색으로서 존재하질 못하고 있다.
그저 저항할 수 없는 순종만이 있을 뿐.
숨 죽이며 감춰진 여인의 하얀 속살 같은 눈밭 속에서 문득문득 내밀한 격정이 치솟는다.
그 순백의 순결 앞에 반추되는,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흔적으로 얼룩진 내 모습.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또 얼마만큼의 비굴함으로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왔는지…
그로 인해 안에 있는 나와 겉에 있는 나는 얼마나 힘들게 싸워야만 했는지…
하지만, 나는 나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기에
가끔은 이렇게 지난 시간들을 되짚어보며
새로운 각오로 거듭나는 삶을 받아들이는 이런 시간들이 소중하고 고맙기만 하다.
누군가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고 했다.
인연으로 만나고 인연으로 엮이어서
서로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작은 사랑을 나누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하다 말해도 되지 않을까.
따듯함이 그립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겨울.
나는 운치있는 이 계절을 사랑하며
겨울을 상징하는 흰눈을 통해 겨울의 정서와 친근하게 교감하고 싶다.
하얀 눈밭 위에 서서 사랑하고픈 누군가의 이름을,
오랫동안 쓰지 않아 뽀얗게 먼지 앉은 그 이름을, 가만히 불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