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교수, 인간복제와 불교교리, 윤리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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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5년 07월 281호
생명윤리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총무원장 법장 스님이 황우석 교수의 연구실을 방문, 격려한 일이 언론의 주요 기사로 보도됐다. 종단기관지인 불교신문은 ‘총무원장스님 황우석 교수 격려’라는 제목으로 다루었다.
기사에 따르면, 총무원장 법장 스님은 6월 20일 총무부장 현고 스님, 사서실장 심경 스님, 사회부장 정념 스님 등과 함께 황 교수를 방문, “난치병 환자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는 것은 인류 모두의 기쁨입니다. 전 세계 난치병 환자들에게 치료의 길을 열어준 황 박사와 연구팀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라며 황 교수를 격려했다. 법장 스님은 또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해 찬반논란이 있지만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볼 때 황 교수의 연구가 생명을 살리는데 많은 공헌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며 “자비정신을 바탕으로 생명을 살린다는 것을 잊지 말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줄 것”을 당부했다.
황 교수는 인간에게 장기를 이식해줄 무균돼지 및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20여 분간 브리핑했으며, “배아세포를 연구하면서 원숭이 이상의 영장류에는 착상하지 않음을 확인했다”며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복제인간 탄생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과학기술을 적용해 난치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를 돕는 것은 과학적 자비의 한 길”이라며 “부처님이 말씀하신 깊은 뜻을 받들고 어긋나는 일 없이 연구에 최선을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
법장 스님이 황 교수를 격려 방문하기에 앞서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대주교는 황 교수 연구 성과에 대해 “복제된 배아라 할지라도 이는 분명 인간 생명이며, 따라서 인간 배아에 대한 실험이나 조작 파괴는 인간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짓밟는 행위이다. 가톨릭교회는 이에 명백히 반대하며 연구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다”고 사제들에게 배포한 강론 원고를 통해 밝혔다. 황 교수와 정진석 대주교가 만나 대화를 나눴지만, 입장 차이만 확인했다.
다시, 불교에서 보는 생명공학과 윤리의 문제라는 중요한 논점이 제기된 것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불교의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의료계에선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14일이 지나야 인간의 생명이라고 보는데 비해 불교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잉태된 순간부터라고 본다.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생명은 잉태된 순간부터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되어야 한다. 불교의 중음신이 이러한 관점을 대변한다. 중음신은 죽은 사람의 오온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태어남의 주체적 요소이다. 인간의 탄생은 부모의 현실적 조건과 태아(중음신)의 의지적 조건이 결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불교적 시각이다”(최정규, 불교평론 2000년 가을호, 81쪽)
황 교수가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만들어진 수정란을 인간의 생명으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황 교수 연구팀의 일원인 안규리 서울대병원 내과 교수는 “체세포와 난자를 이용해 수정란을 만든 것은 정자와 난자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것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다”며 “이번 연구 성과에서 나온 배아줄기세포는 생명으로 보기보다는 세포 치료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체세포 핵이식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킨다면 인간복제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생명을 실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관념이라고 본다. 전남대 이중표 교수는 ‘불교적 입장에서 본 생명공학의 윤리문제’라는 논문에서 “붓다는 생명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이 아니라 상호의존적인 관계에서 나타나는 과정이라고 가르친다. 불교의 수행은 생명의 구조를 깨닫고 그 구조에 따라 충실히 살아가는 길이다. 따라서 생명의 가치는 생명체가 소유한 육체나 영혼 또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다”고 불교의 생명관을 정리하고 있다.(위 책, 43, 46쪽)
인간 복제가 불교의 교리와 어긋나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최정규 박사는 ‘인간 복제와 불교교리는 모순되는가’라는 글에서 윤회설과 인간복제 기술의 관계를 설명한다. “아뢰야식의 종자와 DNA의 유전자 정보가 유사한 것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아뢰야식의 외연이 유전자 정보의 외연보다 더 넓다고 하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며 유전자 조작 또한 윤회에 포섭된다고 본다. “모든 조작과 분별적 행위는 윤회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며, 과학기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늘 그러한 것처럼 과학기술을 현실에 적용하는 인간의 판단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고 강조한다.(위 책, 89~90쪽) 인간 복제가 불교의 윤회설과 어긋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호진 스님은 윤회설이 생명공학의 도전에 직면했다고 본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의 운명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을 때 가장 심각하게 타격을 받게 될 것은 업이론일 것”이라며 “업이론이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윤회설은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 것이며, 불교의 윤리문제는 그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라고 묻는다.
호진 스님은 또 수행의 의미가 없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수행이 잘 된 사람의 세포를 구해 자신의 DNA를 재구성함으로써 수행의 극적인 결과를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자은행에서 좋은 정자를 공급받듯이 역시 ‘상점’에서 원하는 업業을 구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멀지 않아 유전자의 조작으로 인간의 공격성·분노심·나태심·탐욕심·어리석음과 같은 나쁜 경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수행의 의미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 어쩌면 수행의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말지도 모른다”(위 책, 72~73쪽)
황 교수의 연구 성과에 대해 천주교와 개신교, 유교가 반대의 입장, 나아가 연구의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불교는 총무원장 법장 스님의 황 교수 격려 방문에서 보여지듯 찬성을 넘어 지지하는 분위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황 교수의 연구에 대해 교리적으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의는 없는 실정이며, 불교의 입장 또한 정리된 것이 없다.
황 교수가 불자이기 때문에 불교에서 지지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들린다. 따라서 종교간에 미묘한 갈등도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침묵함으로써 미묘함은 커져가고 불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어서 불교의 입장이 정리되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