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보통 한 해를 보내면서 몇 번의 정리와 출발의 시간을 갖는다. 절에서는 하안거와 동안거의 결제와 해제를 하면서 스님과 불자들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뒤돌아 보고 회사원은 결산과 새로운 회기를 시작하면서 그 해의 목표를 정한다. 또한 학생들은 졸업과 입학시기를 통해서 한 단계 높은 성숙을 꾀하며 인생의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나도 그랬었지만 한국에서는 3월이 출발의 시기이다. 3월에 입학을 하고 회사 회기가 시작하고 그리고 봄이 시작된다. 한국인의 의식 속에는 아마 3월, 꽃피는 봄이 출발의 계절일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4월이 시작의 시간이다. 4월에 벚꽃이 피고 회사가 시작하고 새 학기가 시작한다. 일본에서의 3월은 나에게는 늘 지루한 시간이었으며 자투리 시간이었다.
미국에 오니 9월이 새로 시작하는 시간이다. 6월이 되면 모두 학교가 졸업이나 방학을 하고 긴 여름 휴가를 거친다. 긴 여름을 지나고 9월이 와야 어디를 가던지 활기가 넘친다.
이곳에서는 6월 한 달 내내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졸업식이 한창이었다. 더운 여름이지만 모두들 드레스와 양복으로 한껏 멋을 내고 각종 파티에 참석한다고 요란했었다. 어쨌든 하나의 마감은 또다른 시작이기에 미국의 6월은 온통 축제 분위기임에 틀림 없는 것 같다. 이번에는 작고 소박하지만 미국의 초등학교 졸업식 풍경을 전해보고 싶다.
미국은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학년, 학제는 같지만 교육구에 따라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나누어지는 학제가 조금씩 다르다. 지역에 따라서 6학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곳도 있고 5학년에 졸업하는 곳도 있다. LA 교육구는 5학년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년 중학교 과정에 4년 고등학교 과정을 다닌다. 그런 탓에 아직 어린 우리 아이가 어제 초등학교 졸업식을 했다. 일찍 학교를 갔기에 아직 또래에 비해 작아서 맨 앞줄에 앉았지만 의젓하기는 다른 아이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일본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학교 2학년까지 마치고 미국에 와서 한 번의 전학을 거치면서 잘 적응할지 걱정이 많았으나 그런대로 티 안 나게 무사히 졸업을 하게 되었다.
선생님이 이름을 부르면서 졸업장을 줄 때 많은 친구들이 우리 아이 이름을 부르면서 박수를 쳐주는 것을 보고 너무나 기뻤다.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영어 잘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던 ABC도 모르던 녀석이 오늘 보니 새삼스럽게 부쩍 커 버린 것 같다.
처음 맞는 졸업식인지라 식구들과 함께 일찌감치 학교를 찾았다. 이미 많은 부모들이 와 있었다. 식장 앞에는 빈 의자가 마련되어 있을 뿐 어디에도 졸업생의 모습과 선생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에 한 명 한 명이 자기 이름을 소개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식이 시작 되었는데도 선생님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모든 스케줄을 졸업생인 5학년이 이끌어 갔다. 흔히 졸업식에서 볼 수 있는 내외빈의 인사말도 없고 누가 누구에게 주는 상장도 없고 심지어 우등상이며 개근상의 상장 수여식도 없었다. 대신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나와서 자기나라의 언어로 졸업식에 온 걸 환영하는 인사말이 있었다. 그리고 졸업생들이 서로를 소개하면서 무용을 하는 아이는 무용 발표를 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피리를 불고 합창을 한다. 한편으로는 그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부모와의 추억이나 선생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면서 졸업을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각 클래스의 담임 선생님이 나와서 자기 반의 아이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한 명 한 명 불러서 졸업장을 주면서 악수를 나눈다. 약 2시간 동안 진행된 식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습을 한 듯 아이들은 한치의 틀림도 없이 모두들 잘 진행해 주었다. 식이 끝나니 뒤편에 다과가 준비되어 있어 모두들 환담을 나누면서 사진도 같이 찍고 즐거워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같은 행사는 늘 딱딱하고 주인공들이 뒷전이라는 고정 관념이 있었던 우리에게는 이날 행사는 신선했다. 우선 식이 진행되는 동안 교장을 비롯해 학교 선생들도 보이지 않고 어디에도 화환 하나 없었다. 그야말로 소박한 행사이지만 내용에서만은 모든 졸업생이 주인공으로 누가 가장 우수한 성적을 받았는가, 누가 더 학교생활을 잘했는가를 표창하는 장도 아니었다.
방금 전에 친구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와 비슷하게 미국에 온 그 집 아이도 잘 적응하여 무사히 학교도 졸업하고 무엇보다도 친구들과 잘 지낸 것 같아서 기뻤다고 말씀하신다. 새로운 곳에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 같다. 언어와 문화 등 모든 것이 다른 곳에서도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가는 것 같다.
어제 졸업을 한 아이는 또다른 출발 선상에 와 있다. 미국의 중학교부터는 시스템이 한국의 대학 같아서 정해진 담임 선생님도 없고 수업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골라서 교실을 찾아 다니면서 듣는다. 그리고 성적이 좋으면 우등생 클래스로 가지만 성적이 떨어지면 바로 보통 클래스로 간다.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아이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지만 지금까지 해온 대로 밝게 그리고 주어진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면 중학교도 그렇게 어렵고 힘들기만 한 시간이 아닐 것이라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면서 길고 긴 여름방학 계획을 점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