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바바는 상대의 이름을 빼앗아 지배하는 마녀지. 항상 센으로 행동하고 네 진짜 이름은 소중히 간직해 둬.”『센(千)의 본래 이름은 치히로(千尋)다. 부모와 함께 이사 가던 치히로는 길을 잘못 들어 낯선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맛있는 냄새를 따라간 식당,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치우던 치히로의 부모는 마침내 돼지로 돌변해버린다.
어둠이 깔리자 귀신들이 출몰하기 시작하고, 치히로의 몸은 점차 투명하게 사라져간다. 이때, 하쿠가 준 마법의 알약을 받아먹고 정상을 되찾은 치히로는 마침내 그 세계를 지배하는 마녀 유바바를 만나게 된다.
유바바는 치히로의 이름을 센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고, 목욕탕에서 일하게 한다. ‘얼빵하게’ 생긴 말라깽이 소녀 센은 부모를 구하기 위해 용감해진다. 더럽고 냄새나기 짝이 없는 오물의 신神을 목욕시키면서, 자전거를 비롯한 숱한 폐기물을 꺼집어내자, 어느덧 오물신은 본래의 모습이던 강의 신으로 변해 날아가게 되고, 고마움의 표시로 센에게 경단을 건네 준다.
한편 센에게 반해 목욕탕으로 들어오게 된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 그는 사금덩어리를 흩뿌리며 자신에게 접근하는 자들을 낼름낼름 집어삼킨다. 먹어도 먹어도 만족할 줄 모르고, 계속 음식을 집어삼키며 덩치가 커져가는 가오나시는 센에게 금더미를 주고자 하지만, 센은 거절한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주면 될 것인지 물어보지만 센은 단호하게 대답한다.
“내가 원하는 건 당신은 절대로 만들 수 없어요.”
센은 위기에 빠진 하쿠를 구하기 위해 유바바의 언니인 제니바가 있는 곳으로 떠나게 된다. 바다 위에 환상적으로 난 철길을 따라 기차를 타고 제니바를 만난 센은 의외의 환대를 받게 되고, 마침내 사랑의 힘으로 되살아난 하쿠(용)의 등에 업혀 되돌아오게 된다. 이때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하쿠의 진짜 이름을 말해주게 되고, 그 이름을 듣는 순간 하쿠는 마법에 걸린 용의 모습에서 본래의 소년 모습을 되찾게 된다.
약속대로 유바바는 마지막 시험을 거쳐 센의 부모를 본래 모습으로 돌려주고, 센은 부모와 함께 터널을 빠져나오게 된다. 본래 이름이었던 치히로로 돌아온 것이다.』
센이 하쿠를 살리기 위해 타고 간 기차의 이름은 ‘중도中道’호이다. 새마을호나 무궁화호가 아닌 중도호라고 이름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이쪽 가장자리에도 머물지 않고 저쪽 가장자리에도 머물지 않으며 오직 물길흐름을 따라 나아가는 것이 중도다. 중도라야 험난한 세상을 거쳐나가 마침내 본래 이름을 찾을 수 있다는 암시가 아닐까?
석존의 최초 가르침도 중도였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이 있는데, 수행자는 그 어느 쪽에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 하나는 육체의 욕구대로 자신을 내맡겨버리는 쾌락의 길이다. 이것은 천하고 속된 범부의 일로서 수행자들에게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육체를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이것은 육체만을 괴롭힐 뿐, 수행의 참다운 목적을 위해서는 큰 이익이 없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모두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 여래如來는 이 중도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다.”
치히로도 결국 중도의 열차를 타고 사랑하는 하쿠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부모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관문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것은 많은 돼지들 가운데서 자신의 부모를 골라내는 것이다. 그 답은 ‘없다(無)’였다.
‘무無’야말로 자신의 본래 이름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관문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무심의 경지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닐까?
센의 본래 이름은 치히로였다. 그렇다면 치히로의 본래 이름은 무엇일까?□
달마, 이 영화를 말한다.
“생겨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항상 하지도 않고 단절된 것도 아니다.
동일하지도 않고 다르지도 않으며,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다.”
(不生亦不滅 不常亦不斷 不一亦不異 不來亦不出)
- 《중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