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품으로 남겨진 행전行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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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이야기 - 관암 / 불광사주지
2005년 07월 281호
출가 수행자든 일반인이든 나이 들어 홀로 독신으로 살면서 삶이 아름답고 내면의 향기가 넉넉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내가 출가 초기 지리산 토굴에서 홀로 수행할 때 일이다. 화두가 제대로 들리지 않으니 온갖 망상이 치성했다. 내가 예전부터 잘 알아 가끔 찾아뵙는 노스님이 계셨다. 맑은 향기와 함께 홀로 사는 자유로움과 즐거움이 넉넉하게 배어 있는 분이시다. 스님은 자연과 벗 삼아도, 중생과 벗 삼아도 언제나 여유와 넉넉함을 잃지 않으셨다. 토굴에 스님의 밥상 앞에는 오관게를 변형한 듯한 게송이 있었다.
“이 자리는 어디서 왔는가? / 내 덕행으로 앉기가 부끄럽네 / 마음을 닦고 비우는 복밭으로 알아 / 도업을 이루고자 이 자리에 앉노라.”
스님을 찾아뵙고 오는 날이면 나의 서글프고 초라한 상념은 속된 가치관에서 생겨났음을 알고는 부처님전에 참회하곤 하였다. 그런데 2년 전 마지막으로 노스님을 찾아뵙던 날 스님은 나에게 보따리를 하나 주시면서 이미 인연이 다 되어 떠나갔지만 자신의 상좌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노스님에게 하나뿐인 상좌스님은 오래 전부터 외국으로 건너가 포교하며 외국어를 공부하는,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스님이었다. 그런데 보따리를 받아와서는 이런저런 일로 외국에 나갈 일이 없어 전해주지 못했는데 뒤늦게 나는 노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른 토굴로 가보았지만 토굴에는 노스님은 물론 토굴도 흔적조차 없고 집터를 정리하여 나무만 몇 그루 심어져 있었다. 이 토굴 터는 국립공원 안인데 노스님이 먼저 와서 수행하고 있었기에 그 동안 뜯지 못하고 지금까지 편리를 봐준 것이라 열반하시니 즉각 원상 복구한 것이었다. 나는 바로 노스님이 주셨던 보따리가 생각났다. 얼른 절로 돌아와 보따리를 풀어 보았다. 보따리 안에는 가사와 장삼 그리고 행전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노스님은 그때 이미 열반하실 것을 예견하시고 상좌에게 줄 수 있는 유품 세 가지를 전해준 것이었다.
행전을 보는 순간 나는 노스님을 처음 만났던 20년 전 이야기가 생각났다. 노스님이 유품 3개 중 행전을 챙긴 것에는 노스님이 나에게 들려주신 가사만큼이나 중요한 사연이 있었다. 노스님이 여기 흙집 같은 그야말로 토굴에 처음 와서 수행할 때였다. 이야기는 이러하다.
“어느 초발심 보살이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우연히 친구가 토굴에서 수행하는 스님을 초청해서 공양과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환희심이 났어. 초발심 보살은 그때서야 친구가 토굴에 계신 스님을 1년에 한두 번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공양과 차를 대접하고 손수 옷과 약도 지어드리고, 그의 남편은 스님의 토굴도 고쳐주고 공부에 필요한 것을 뒷바라지하고 있음을 알았어. 신심이 한참 오를 때인 초발심 보살은 친구에게 자기도 열심히 공부하는 스님을 도울 테니 토굴에서 정진하는 스님 한 분을 소개해 달라고 했는데 그 스님이 바로 나였어. 인연도 묘하지. 이윽고 공양 대접하는 날 그 초발심 보살은 나를 모시러 산길을 힘들게 올라왔었지. 몸이 좀 약한 보살이라 육신은 힘이 들었지만 스님을 모신다는 생각에 마음은 가볍고 기뻤다고 이야기하더구먼. 올라오면서 다짐도 했었나봐. ‘나는 능력이 친구보다는 나은 편이니까 스님의 토굴도 공부하기에 편리하게 다시 지어주고, 좋은 옷과 약값도 드리고, 음식도 잘 대접해야지… 화끈하게….’ 토굴에 도착하여 나에게 삼배 하고 집으로 갈 것을 권했는데. 나는 그때 구도심만 강렬했지 내면의 수행은 없었거든. 사전에 온다고 언약도 있고 해서 나는 기다린듯 방에 들어가 걸망을 하나 챙겨 메고는 앞장서서 산길을 내려갔지. 무뚝뚝하고 겉만 당당한 수좌 가풍으로 말이야. 그런데 의젓하지 않고 촐랑거리며 내려가는 나의 모습에 그만 초발심 보살은 스님에 대한 믿음이 엷어져서 마음속의 약속을 다시 생각했나봐. ‘내가 뭐 신심이 대단한 것도 아니니 토굴까지 고쳐줄 필요가 있겠어! 옷과 약과 음식이나 잘 대접해도 저 촐랑이는 스님에게는 대단한 것 아니겠어!’보살은 자문자답하고는 나를 따라 산길을 내려오는데 나는 도회지 보살님 집으로 초청받는 것도 처음이고 또 이쁜 보살이고 하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서 내려오면서 발로 돌을 차는가 하면 야호라고 소리도 지르는 등 더욱 촐랑거리며 내려오다가 발이 바지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어. 산길에 행전을 차고 내려와야 하는데 그만 들뜬 마음에 축 늘어진 승복 바지를 입고 기분 좋아 촐랑거렸으니… 머리 안 다친 게 다행이었지. 억지로 일어나 절뚝거리며 가는데 이미 보살은 나의 이런 모습에서 신심 영 떨어져 산을 오를 때 마음과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나봐. ‘옷과 약도 필요 없지 않겠어! 이미 내가 오시라 하였으니 있는 공양이나 대접하고 얼른 보내야지.’ 이렇게 또 자문자답하였는데 나는 그날 초발심 보살님 집에 가지도 못하고 병원 신세를 지고 올라왔어. 병원에서 식은 밥 얻어먹고 말이야. 후에 나는 초발심 보살을 나에게 소개해준 보살님을 만났는데 ‘스님이 의젓하게 위의를 지키지 않은 바람에 토굴 공양이 식은 밥 공양으로 바뀌었다’고 핀잔 아닌 핀잔을 받았지. 그런데 말이야, 수좌가 그 말 듣고 한 문자 안 날리면 수좌가 아니지 않겠어. 나는 금강경 사구게를 인용하며 큰소리쳤지. ‘모양이나 음성 색깔로 스님을 찾는다면 마구니야 마구니!’ 이렇게 큰소리쳤지만 마음은 영 편하지 않았어. 굴러온 복을 차버린 것에 대한 번민이 아니고 말 한마디 잘못해서 생겨나는 윤회의 사슬 때문이었지. 나는 그 후로 위의威儀를 수행의 제일로 삼아 살 것을 발원했지. 행동거지를 바로잡는 방법으로 그 첫째가 바로 행전을 차는 것이었어. 다시 행자시절로 돌아가 평생 행자로 살고 싶은 심정이었거든.”
유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행전을 보니 평생 행전을 차고 계셨던 모습이 선했다. 올곧은 스님이었던 만큼 수행에서 흉내내는 위의는 진정한 위의가 아니라는 가르침도 잊지 않았다. 폼 잡고 흉내내어서는 상 많고 변덕스런 중생들은 현혹할 수 있을지언정 진리와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중국 선종의 남악회양 스님은 의젓하게 부처 흉내내며 좌선하는 제자 마조도일에게 기왓장을 갈며 채찍을 가해 깨달음의 길로 인도한 일화도 들려주었다. 노스님의 상좌에게 유품과 함께 행전이야기도 꼭 전해줘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