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이 마땅치 않을 때, 입맛을 잃었을 때 먹기 좋은 것이 ‘한 그릇 음식’이다. 우리 음식의 전통적인 차림을 보면 3첩이나 5첩, 주안상 외에 ‘면상’이라고 따로 두고 있는데, 주로 밀가루 음식을 주식으로 차린 상을 말한다. 물김치를 곁들인 떡국이나 소면처럼 후룩 한 번에 먹기 좋은 메뉴들. 주로 점심 때나 끼니 사이의 요기로 먹었던 상차림이 요즘같이 날 더운 여름에는 제격인 듯하다. 우선 여름이라 찬을 많이 늘어두는 것보다는 시원한 김치 한 가지나 냉국, 생채 정도만 준비하면 되니까 밥 짓는 이들에게 부담이 덜하고, 먹는 사람은 별식이라서 잘 먹는다. 이 가운데 만둣국도 빼놓을 수 없는 메뉴. 그저 두툼하게 반죽하여 속을 채운 투박한 맛도 좋고, 잘게 채 썬 호박을 야들야들한 밀가루 피에 올려 도르르 빚어 만든 편수도 단아하다. 호박 편수
애호박을 잘게 썰어 밀가루 반죽으로 싼 다음 익히고 감자나 대파, 양파와 같은 야채로 낸 국물에 두어 개씩 동동 띄워내면 채식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환영받을 메뉴다. 양념장을 곁들이기도 하는데, 애호박이 밀가루 피 사이로 파랗게 익어서 눈을 즐겁게 하고 입에 무겁지 않은 맛이라 한정식 코스를 준비할 때 전채 요리로 내어도 예쁘다. 생기를 잃은 오후에 아작하게 무친 무채를 곁들여 편수를 들다보면 입맛이 살아난다. 전통적인 요리법은 아니지만, 뜨거운 물에 한번 익혀서 건진 다음 얼음물에 헹군 편수를 새곰한 냉국에 동동 띄우고 김 가루랑 깨를 뿌려서 먹기도 한다. 산행을 했거나 과로 했을 때 피로를 풀어주는 상쾌함이 있다.
사실 만두를 빚다보면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이 바로 내 할아버지인데, 이북이 고향인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날까지 만두와 냉면을 즐기셨다. 물론 할아버지가 선호했던 맛은 투박하게 익힌 이북식 접시만두나 시원하게 양념하여 끓여낸 만둣국이었지만, 아무튼 내가 본 사람 중에 제일가는 ‘만두 마니아’이셨던 것은 분명하다. 실은, 요즘 들어 할아버지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자꾸만 생겨서 더더군다나 만두를 찾게 된다.
얼마 전 내가 연재하는 신문의 칼럼에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한바탕 썼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우연히 할아버지의 친구 분을 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 살아 계셨을 때 할아버지와 나, 그리고 친구 분까지 셋이서 프랑스 요리를 먹으러 고급 레스토랑에 간 일이 있는데 그때 이야기를 꺼내며 그립다고 하셨다. 집에 오면서 생각을 해보니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그를 위해 절을 한 일이 없었던 나였다.
이북에 여섯 형제를 두고 홀로 남으로 오신 할아버지 박기억 씨. 형 먼저 가면 우리도 금방 뒤따르겠노라는 동생들의 말만 믿고 몸을 피하신 것이 평생의 한으로 남았던 분이다. 그리고 생겨난 첫 손주가 바로 나인데, 나를 데리고 ‘이산가족 찾기’ 현장이며 ‘이북 5도 군민체육회’며 안 다니신 곳이 없었다. 내가 외국에서 공부했던 시절에는 나를 만나러 비행기를 타고 다녀가셨고, 언어학자의 꿈을 접고 요리사가 되겠노라 했을 때에도 부모보다 앞서서 나를 지지해주셨던 그분.
그분이 암으로 힘겹게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뒤 나는 이상한 경험을 한번 했었다. 바로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신 거였다. 11월에 눈을 감으신 후에 내 꿈에 나타나신 건 이듬해 2월이었다.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시며 당신이 계획했던 삶보다 일찍 가게 되어 너무 억울했었다고, 그래서 선뜻 떠나지 못하고 맴돌았었다고 꿈에서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제야 마음이 정리되었고, 그래서 내가 걱정하지 않도록 일러주러 온 거라고 말씀하셨다. 꿈을 깼을 때 나는 훌쩍거리며 울고 있었는데, 도저히 꿈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목소리와 눈빛이 또렷한 기억으로 아직까지 남는 경험이었다.
이런 할아버지를 나는 잊고 산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고 다닌다고 한 달에 한 번도 할아버지 생각을 안 하고 산다. 기껏해야 오늘처럼 그분이 좋아하시던 음식에 대한 글을 쓰거나 지난번처럼 그분의 지인을 만나서 추억하게 될 때만 잠시 잠깐 회상할까.
그래도 만두를 먹을 때만큼은 꼬박꼬박 떠올리게 되는 할아버지와 나만의 추억들이 있으니 무더위에 지친 입맛으로 올 여름에는 편수고 접시 만두고 더 찾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