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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에서 보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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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최영규 2005년 07월 281호
평소 내가 예뻐하던 조카 방에서 “무상무념”이라는 문구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문구를 보면서 말하기는 쉽지만 실행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이런 나의 생각도 단순한 표현의 일부분일 뿐이라는 것임을 곧 깨달았다. ‘쉽다’고도 생각지 말고 ‘어렵다’고도 생각지 말라는 말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듣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단지 사물에 대한 판단일 뿐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러한 현상을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수행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한다.

해인사는 아름답다. 특히 일출 전의 어두운 이른 새벽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 고요함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인상 깊도록 아름답다. 그렇지만 나는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들-은은한 조명으로 잘 밝혀진 큰 법당 안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스님들, 조용히 종횡으로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는 몇몇 스님들, 아침기도를 알리는 힘찬 법고 소리, 그리고 별채로 향하는 몇 명의 평신도들-에 더욱더 매료되었다. 이러한 아침의 조용한 기운이 아름답다. 일반인으로서 새벽 세시 기도에 동참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경험함으로써 나는 무척이나 흥분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솔직히 난 내가 무엇을 기대했었는지도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어쨌든 해인사에서 나는 어떤 특정한 ‘생각’이 일지 않았다. 그것은 그러한 생각들이 일어날 만큼의 일들이 그곳에 없어서가 아니라 특별한 움직임을 간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어떠한 것도 그대로 멈춰져 있지 않고 모든 것들이 마냥 흘러가는 그대로 일어날 뿐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큰 법당-사실 내가 방문한 한국의 모든 사원 내의 큰 법당들-의 그 아름다운 자태를 사랑한다. 간혹 난 어떤 상황에서 내 스스로에게 장난 걸기를 좋아한다. “옆문을 이용 하세요”라는 문구가 있는 큰 법당 정문 앞으로 올라가 바로 설 때까지 나는 법당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금장을 한 부처님과의 첫 만남은 밖에서 법고를 치시는 스님을 보는 것과 같이 내 목 뒷덜미의 머리가 곤두설 만큼 날 긴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이 내가 한국에서 가장 보고 싶어했던 것들 중의 하나다. 법고의 머리 부분을 동서남북으로 번갈아가며 두드리다 간혹 나무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를 내는 북의 테두리 부분을 따라 혼신을 다해 두드리시는 스님은 너무나도 진지하고 생동감이 넘친다.

일단 나는 큰 법당 안으로 들어가 방석을 들고 자리에 앉으면서도 여전히 그 법고를 두드리시던 스님 생각에 흠뻑 취해 있었다. 예불의식은 그다지 길지는 않았지만 우리들 중 몇 명만이 남아 있었다. 한 스님은 아직 염불 중이셨고 나는 한가로이 머릿속에 스쳐가는 그 상념들을 떠올리면서 스님의 음률에 내 몸을 맡기며 앉아 있었다. 나는 앉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내가 게으른 탓이기도 하지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즉시 108배를 올렸다. 내가 원해서였다. 왜냐하면 난 ‘앉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졸음과 싸우려는 나만의 은밀한 의도가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어쨌든 앉아 있다는 것은 다소 규율이 엄격한 느낌이 드는 반면 절을 올린다는 것은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단순히 절을 올린다는 것’은 ‘단순히 앉아 있다는 것’보다는 나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왜 사람들은 간혹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지는 것에 대해 더 큰 매력을 느끼는지 모르겠다.

큰 법당 밖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눈에 띌 만큼 천천히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뒤에 있는 가야산이 드러나면서 몇 분 상간으로 동쪽으로는 어두운 곳에서 조금 더 밝은 그림자 빛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금 밖의 공기가 그다지 차지 않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이제 아침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또 다른 하나의 것을 놓아야만 한다. 큰 법당에서의 예불은 여전히 계속되고 그것은 마치 모차르트의 아다지오와 같은 대단한 것이었다. 내일이 되면 난 내가 여기에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해인사의 당우들을 오가면서 남몰래 즐겼던 발밑의 흙 소리도 이젠 들을 수 없을 것이고 그 새가 진짜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만큼 시계 소리 흉내를 잘 내는 뻐꾸기도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리고 그 특별한 아침을 함께 했던 멋있는 스님들도 이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난 서둘러 마음에 새겨둘 만한 문구를 하나 만들어 봤다. “해인사에서 보낸 아침은 너무나도 생동감이 넘쳐 마음에 내재되어 있던 무언가를 버릴 수 있도록 분별력을 갖게 해준다. 어떤 것을 버림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다는 말을 우린 흔히 듣는다. 그리고 난 그것에서 진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해인사를 떠나서의 나의 일상은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다. 나에게는 - 그다지 불쾌한 것이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 해야 할 과제와 원고 마감시간들 그리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다. 이러한 모든 상념들 속에 갇혀 있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제는 더 어렵게만 느껴진다. 너무나도 흥미롭지 않은가. 게다가 해인사에서 그 친절한 스님께서 거품을 내 만들어주신 그 맛난 차는 단순히 ‘스님이 만들어주신 맛있는 차’였다. 너무 웃기는 것은 내가 그 차와 똑같은 맛을 내려고 여러 번 시도해 만들어 보았지만 내 차 맛은 그때 스님께서 만들어주신 그 차 맛이 나질 않는다. 사실 묘하게도 그 스님께서 다른 상황에서 한번 지적하셨던 것처럼 “맛이 다릅니다”라는 말씀을 이제는 알 것 같다. 그래 그 맛은 결코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괜찮을 듯싶다.
차 마신 후에는 아내랑 같이 드라이브를 가야할 시간이다.□

※이 글을 나에게 생애 처음으로 불교계의 스승이신 돌아가신 부모님들께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