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古人들이 한 줄 글귀를 음미하여 언행이 바르고 눈빛이 빛났다는 이야기나 정성을 다해 스승을 섬긴 이야기를 들으면 며칠씩 음식의 맛을 모르겠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공경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사랑하여 돈독한 신信과 넉넉한 품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으면 또 며칠씩 목이 메입니다. 한 정신의 세계에 눈을 뜨면 세속적인 것을 초탈하여 일단사一簞食 일표음一瓢飮으로 누항陋巷에 처해도 삶의 의미를 바꾸지 않았던 모습들을 보면 아픈 듯 미열이 납니다. 내면에 몰두할 수 있는 정열과, 사물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냉정한 관찰력, 그리고 하나가 되는 적극적인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어눌한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입니다.
깨진 도자기 바루 한 벌/남창에 볕 좋고 동창에 샛별 있어/대나무 밭 너머 밤기운 서늘하면/자연이 그대로 내 방인 것. 비싼 것 좋은 것들이 다 무어란 말인가, 과분한 살림을 돌아보다가 ‘없는 대로 살라’는 판각을 뜨고 싶은 욕심에 실소합니다. 그저 없으면 그만이지 판각에 대한 소유욕은 또 무엇인지.
사람 사는 곳에서 화목하게 어우러지면서도 정도를 잃지 말아야 하련만 자신의 부덕不德으로 인해 웃음과 말을 잃은 지 여러 날 되었습니다. 하필 소임 중이라 여러 사람이 불편하리라 여겨지지만 마음의 병이 깊어 도무지 힘이 나지 않습니다. 척박한 땅에 뿌리 내린 야생초와 같이 끈질기지만, 부족한 천식淺識과 괴팍스러움, 강하고 촌스러움이 마치 흰 종이에 떨어진 먹물처럼 드러나 자신을 비감하게 만듭니다. 왜 이렇게 사람과 일에 대해 너그럽지 못한지, 있는 대로 보아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련만 어느새 분별의 잣대는 예리해지고 맙니다. 그래도 한 마음 바꾸어 다시 시작하는 일에 익숙해지기도 하였으나 이번만큼은 이지러진 관계를 회복하기도, 작심한 마음을 돌이키기도 왜 이다지 어려운지요. 온 세상을 관자재觀自在하다가도 바늘 끝도 안 들어가는 이눔의 마음은 속수무책입니다. 부끄런 속내를 부처님께만 살짝 말씀드리는 뜻은 잘못인 줄 알면 드러내고,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다짐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해 하며 죽을 수 있을까마는 일생에 오점을 남기는 치명적인 실수는 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남을 밟고 서서 제 잘난 꼴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부끄러움인 줄 알겠습니다. 오늘을 통해 내일 당당할 수 있고, 역지사지易地思之로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다면 사는 것 그대로 공부 아님이 없겠지요.
그저 흐르는 듯한 구름도 구름의 길이 있고 바람은 바람의 길이 있습니다. 풀꽃 향기 가득한 오늘 아침 이쯤에서 서성이며 이렇듯 아프게 토로吐露합니다. 누구든 자기 업력이 만든 자신의 길을 갈 수밖에 없지만 날아가는 시위 같은 인생살이, 하루아침에 삶의 방향을 바꾸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왕의 삶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선을 지향하고 덕을 쌓고 시작이 있으면 끝을 맺고 조금은 철두철미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