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키워준 성지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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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4년 07월 269호
아마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루하루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일상을 잠시 벗어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도 아닌 일주일 정도의 일정은 떠나기 전의 시간을 더 분주하게 만든다. 매일 생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그 빈 시간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것은 마음에 부담이 앞서는 일이다. 매일 그 시간에 스튜디오에 앉아 청취자를 만나는 듯이 자리를 비우는 시간만큼 녹음을 하지만 왠지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청취자보다 내가 먼저일 것이다.
5박 6일 일정으로 중국 구화산 성지순례에 지도법사로 동행해야 한다고 통보를 받은 것은 3개월 전이다. 무심히 잊고 지내다가 날짜가 다가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스탭들과 미리 녹음 스케줄을 잡고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한다. 말로만 듣던 그 유명한 중국의 명산이자 불교의 성지인 구화산을 순례한다는 설렘 반, 안전사고 없이 건강하고 유쾌하게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야 한다는 걱정 반, 그렇게 생각이 교차하면서 떠나기 전날까지 녹음을 다 해 마쳤다.
시간이 길든 짧든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이렇게 분주하게 챙기고 또 챙겨도 떠나고 보면 빠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른 아침 공항에서 인원 점검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면 바빴던 어제를 생각할 여지도 없이 밀려오는 졸음에 고단함을 맡긴다. 어느새 상해 포동공항, 의자에 고개를 묻고 더 졸고 싶은 아쉬움을 접고 내려서 버스를 타고 국내선을 갈아타기 위해 홍교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한 시간 남짓 국내선을 타고 둔계에 도착한 시간은 현지시간 오후 2시가 넘어서였다. 이른 아침부터 종종걸음쳐서 멀리까지 온 셈이다. 옛날 같으면 생각이나 했겠는가. 기계문명은 세상의 거리는 많이 좁혀 놓았지만 상대적으로 사람 마음의 거리는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늦은 점심 공양을 마치고 오후 일정으로 잡혀 있는 먹공장이 문을 닫은 관계로 작은 박물관을 관람했다. 찾아오는 관람객이 없는지 관리를 하지 않아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고, 그림과 조각품이 어설프게 전시된 박물관 안에는 곰팡이 냄새가 닫혀있는 공간임을 대변하고 있었고 삐그덕거리며 열리는 문에 걸려 있는 거미줄은 멀지 않아 그 영화를 뒤로 할 것 같은 예감을 주었다. 대충 둘러보고 찾은 곳은 노가, 그러니까 옛날 청대 거리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옛날 거리였다. 우리 나라 서울 인사동쯤으로 이해하면 좋을까? 그러나 서울 인사동은 이미 변화의 바람이 휩쓸고 있어 전통 문화의 거리라고 말하기 민망스러운 거리가 되었지만 중국 안휘성 둔계시 청대 거리는 그 바람이 조금 더디게 불고 있는 듯했다. 유명 커피점은 없지만 변화의 바람이 서서히 스며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그나마 아직 흔적으로 남은 화려한 조각으로 장식하고 있는 낡은 대문이 옛날 번성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여장을 꾸려 72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등황산천하무산登黃山天下無山” 이라는 말이 있어 아름답기 그지없다는 황산으로 향했다. 황산은 삼기사절三奇四絶의 산이라고도 하는데 삼기三奇라고 하면 기송奇松, 기암奇岩, 운해雲海를 말하고 사절四絶은 삼기三奇에 온천溫泉을 더하여 사절이라고 부른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며 만난 황산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황산의 세 개의 주봉 중에 두 번째로 높은 봉우리로 일출과 운해를 바라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하는 광명정을 눈에 담았다. 홀로 선 돌기둥이 붓처럼 생겼고 바위 끝에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어 마치 한 송이 꽃이 피어난 것과 닮았다고 해서 “몽필생화”라고 하는 바위를 보고, 해발 1640미터 지점의 사자봉 중턱의 청량대, 이곳이 황산이 아름답다고 믿는 마음이 시작된다는 “시신봉始信峯”을 조망하기에 알맞은 곳이란다. 사자봉은 일몰을 조망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는 원숭이가 먼 곳을 바라보는 것 같은 기이한 바위인 후자관해가 있다. 나도 원숭이처럼 먼 곳을 조망해 보려고 하는데 이곳에서 밀려 올라오는 산안개를 만났다. 안개에 담긴 물기가 금방 빗방울이 될 것 같이 안개를 한 움큼 쥐면 물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개가 짙어지고 마치 황산의 신선이 된 기분.
출발이 좋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신라 성덕왕의 아들로 태어난 왕자 김교각 스님이 오랫동안 초인적인 수행을 하시고 사후 등신불로 모셔진 육신보전이 있는 불교 4대명산 중의 하나인 구화산이었다. 성덕왕의 맏아들로서 왕세자로 책봉되기까지 했던 왕자가 출가해 구족계를 받고 중국 당나라로 건너간 때가 24세라고 한다. 구화산으로 들어가 수행한 지 75년, 세납 99세로 입적하셨다. 김교각 스님께서 구화산에서 수행하실 때의 이적은 이 지면에서 다 글로 설명할 수 없지만 스님께서 돌아가실 때 유언하신 대로 시신을 안좌시킨 석함을 3년 후에 개봉해 보니 생전의 모습처럼 법체가 썩지 않고 생생하여 문도들이 지장보살의 시현으로 모시고 육신탑, 그러니까 지장탑을 세워 등신불로 모시게 된 것이 구화산 지장도량의 시초라고 한다.
지장왕보살 김교각 스님에 대해서는 떠나기 전에 미리 사전 지식을 가지고 갔지만 안내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홀할 수 없이 새로웠다. 지장탑이 모셔진 육신보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육신보전 정면의 향을 사르는 곳으로 일행들과 줄을지어 나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노란 가사를 수하신 스님들이 높은 계단 아래에 도열하고 계셨다. 잠시 우리 일행을 마중하시는 것인가 하고 행복한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육신보전 정면에 있는 커다란 향로에서 소전을 하고 돌아서는데 마침 중국 국가 주석인 장쩌민 주석 일행이 우리와 같은 일정으로 구화산을 참배하던 중이라 장쩌민 주석 부인이 육신보전에 참배하러 올라오고 있었다. 잠재된 저력으로 하루가 다르게 부상하고 있는 큰 나라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신라왕자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을 참배하러 온 관계로 우리 스케줄에 약간의 차질이 있었지만 기분 좋게 참을 만했었다. 일행 중의 어떤 불자님은 중국 국가 주석이 우리 성지순례 일행을 마중하러 왔다고 기분 좋은 유머로 일행을 웃게 했다. 이어 모노레일을 타고 높은 곳에 있어 우러러 보이는 백세궁에 올랐다. 경호원들이 탐지기로 백세궁을 안전 점검하는 틈으로 우리는 여여하게 참배하고 긴 계단을 지장보살을 외며 그 리듬에 맞춰 유쾌하게 내려왔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뱃속이 출출해지는 시장끼가 점심공양 시간을 알렸다. 숙소에 준비된 점심공양을 하고 다시 케이블을 타고 높은 산에 위치한 천대사를 참배하러 갔다. 지장보살 김교각 스님의 발자국이 남아 있는 천대사에서 천여 개의 계단을 올라 내원궁에서 동참한 일행들의 안전한 순례를 기도하며 생미공양을 올리고 스님께서 수행하시던 지장동굴을 참배했다. 김교각 스님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된 구화산 개산사인 화성사를 창건하시기 전에는 구자암이나 연화봉 일대 동굴에서 스님은 수행하셨고 백토와 소량의 쌀로 연명을 하셨다고 한다.
지장왕보살 김교각 스님께서 수행하신 기운이 생생하게 서린 구화산 성지 순례길에 다시 느슨해진 수행의 끈을 조였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5박 6일간의 성지순례, 일상을 떠나기 위한 대가를 고단하게 지불했지만 지장왕보살 김교각 스님의 수행 여정은 다시 나에게 든든한 채찍이 되어 소중한 선물로 돌아왔다.
이어진 장가계 원가계 일정은 그야말로 풍경유람인 덤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 삶에도 예기치 않게 주어지는 덤이 있어 삶이 그렇게 야박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자연의 신비로 내 앞에 우뚝 선 장가계 원가계의 기암절벽의 풍경은 말을 잊게 했다. 연탄으로 터져나오는 놀라움과 환호성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대신하고 크게 부족한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