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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 아홉 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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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4년 07월 269호
예로부터 가야산 수려한 경관을 사랑하여 멀리서 이곳에 와 복거卜居한 이가 더러 있었는데, 기호 지방의 학자였던 병계屛溪 윤봉구尹鳳九(1683~1768) 선생도 그 가운데 한 분이다.
병계는 가야산에 복거한 이래 구곡의 경치를 시로 지어볼 생각을 가졌으나 오래도록 이루지 못했다. 어느 날 강성서姜聖瑞가 주자朱子의 무이도가운武夷棹歌韻에 따라 가야구곡伽倻九曲을 읊고 화답을 청하자 이를 계기로 오래 전부터 지녔던 생각을 일으켜 구곡의 칭호와 차례의 착오를 바로잡고 서곡 <가야산伽倻山>으로부터 <관어대觀魚臺> <옥병계玉屛溪> <습운천濕雲泉> <석문담石門潭> <영화담暎花潭> <탁석천卓錫川> <와룡담臥龍潭> <고운벽孤雲壁> <옥량폭玉梁瀑>의 차례로 구곡시를 지었다. 이 구곡의 명칭 가운데 옥병계 석문담 와룡담은 일찍이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1658~1716)가 명명하고 손수 팔분체八分體로 써서 암석 표면에 새겨둔 일이 있었고, 나머지 육곡은 병계가 그 아우 석문石門 윤봉오尹鳳五(1688~1769)와 함께 옥계玉溪 아래 복거한 후에 명명한 것이다.

가야수기병삼령 伽倻秀氣炳三靈 가야산 수려한 기운 삼령처럼 빛나는데
일도암천구곡청 一道巖泉九曲淸 한 길 암천은 아홉 굽이 맑아라
귀호신가천재비 鬼護神呵千載秘 귀신이 보살펴 천 년 동안 감췄는데
종연화아슬금성 淙然和我膝琴聲 물소리 내 무릎 위 거문고 소리와 어울리네

이 시는 구곡시 가운데 서곡에 해당하는 <가야산>이다. 가야산 남쪽 제1곡 관어대로부터 북쪽 제9곡 옥량폭까지 10리 남짓한 구곡의 그윽한 경관을 차례로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전경을 읊은 것인데, 가야산 수려한 경관이 삼령三靈[해 달 별]처럼 빛나고 아홉 굽이 암천이 맑음을 노래하고 있다. 이곳은 일찍이 인적이 이르지 않아 천 년 세월 동안 그윽히 감춰진 곳이었는데, 병계가 이곳의 동주洞主가 된 후로 이 사이의 한 조각 돌 한 굽이 물, 아침 노을 저녁 구름이 모두 그의 차지가 되지 않음이 없었다. 그 무렵 가야산에 흐르는 맑은 물소리는 병계가 무릎 위에 올려 놓고 연주하는 거문고 소리와 어울려 주자의 무이산처럼 병계의 가야산도 역시 문득 그의 천석泉石이 되었다.
일찍이 죽천과 병계가 명명한 구곡 위치를 지금 찾을 수 있을지, 또한 죽천의 팔분체 석각石刻이 3백년 남짓한 세월의 풍우에 마멸되지 않고 여전히 남아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옛적 강성서의 시가 병계로 하여금 구곡시를 이루게 할 생각을 불러일으켰다면, 지금 병계의 시는 또한 후인으로 하여금 가야 구곡을 답사하고 싶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