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과 맑은 물, 그 오염되지 않은 청정함은 이곳의 매력이다. 태백산과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산자락에 위치하여 높은 산이 많다. 태백산(1,567m)을 비롯해서 1,000m에 달하는 산들이 곳곳에 솟아 있고, 여기에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분수령으로 낙동강이 발원해 봉화군을 흐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봉화는 문명의 오염과 번잡함을 피해 고요한 시간을 찾는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휴식처가 될 수 있겠다.
게다가 봉화와 그 인근 지역은 이른바 ‘축복 받은 지역’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서 깊은 문화재와 사찰 그리고 훌륭하신 스님들이 많으시다. 평생을 수행을 위해 살아오신 축서사의 무여 큰스님, 각화사의 고우 큰스님, 부석사의 근일 큰스님 모두가 이 지역에 계시며 찾아오는 이들의 안식처가 되어 주신다. 봉화는 이렇게 많은 유형, 무형의 보석으로 그 청정함과 고귀함에 영롱한 빛을 더한다.
축서사鷲棲寺
풍기 IC나 영주 IC에 내려 이정표를 따라 봉화군 개단리를 향해 50여분을 달려야 해발 1,260M의 웅장한 문수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축서사를 만난다. 깊고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 절 바로 아래까지 차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속진에 묻혀 있던 심신心身은 이 청정도량을 만남과 동시에 ‘아!’하는 탄성 소리를 낸다. 맑은 공기, 청량한 감로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무수한 별, 탁 트인 전망과 황홀하기까지한 일몰, 포근히 감싸주는 보광전 등 축서사는 세상사를 한순간에 잊을 만큼 탈속한 바가 있다. ‘마음의 고향 축서사’라는 표현에 저절로 수긍이 간다. 우리의 근본자리, 우리가 갈 곳…….
이곳에 ‘눈 푸른’ 무여無如 큰스님께서 계신다. 현재 한국 선불교계의 최고봉을 이루는 스님들 중의 한 분으로, 종교와 수행 여부를 떠나 스님을 뵙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조용한 발걸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스님은 조용히 사시며 바깥 출입은 되도록 삼가시지만 만나 뵙고자 찾아오는 누구에게나 방문을 열어놓고 법문을 해 주신다. 그가 불자이고 아니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불교 수행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한 이야기와 문제에 대한 많은 질문에 큰스님은 맑고도 자비로운 얼굴과 나직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자상하게 답변하여 주신다. 답변을 듣는 이들의 마음에는 환희심이 일어난다.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수행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해야 되고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큰스님은 항상 강조하신다. 왜 해야 되는가? “우선 마음이 편안해져요. 평소에 일어나는 괴롭다 못살겠다 죽겠다 별별 생각이 다 없어지고 고요해져요.” “진정한 행복은 밖에서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 내면 속에서 느껴야 됩니다. 결국은 자신에게서 행복을 찾고, ‘성공이냐 실패냐’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청량한 법당에 앉아 나를 찾아보자. 지치고 울고 싶다면 그저 목놓아 울어도 좋다. 저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함과 잔잔한 기쁨이 솟아난다. 삶에 찌들어 주체할 수 없는 번민이 있거나 지친 육신을 회복하고 싶을 때 이곳에 와서 청량한 공기와 자연의 묘음妙音, 그리고 무여 큰스님의 법음法音을 느끼면 심신이 정화되고 재충전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많지 않다면 경내를 둘러보고 큰스님을 뵙고 떠날 수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이곳에서 푹 쉬거나 힘써 정진을 해 본다면 평생 잊지 못할 순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에 한가닥 실마리를 잡으며…….
청량산淸凉山
청량산은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준다. 기암괴석을 이룬 열두 봉우리의 절경과 초록빛이 아름다운 산림은 전혀 날카롭지 않다. 입구에서 청량사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있어 조금 가파르지만 잘 정비되어 있어 올라가는 여정이 어렵지만은 않다. 20 ~ 30분여를 올라가 숨이 가빠질 듯 하면 절 입구에 이르게 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계단 삼아 가지런히 깔아 놓은 침목이다. 바로 오른쪽 바닥에는 깔아 놓은 기왓장들이 보인다. 정갈하고 어여쁜 모습이다. 그 사이로 계곡의 물이 흐른다. 몇 보 걸어 올라가면 황토벽이 단아한 찻집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이 반겨 주고, 왼편 위쪽으로는 힘차게 서 있는 오층탑이 보인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이곳 주지스님이신 지현 스님의 섬세한 미적 안목과 배려가 위풍당당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자그마한 탄성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웅장한 암봉 아래 자리잡은 절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법당(유리보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왜 청량산으로, 또 청량사로 이름지어졌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정말 몸도 마음도 청량해진다. 여기서 약10여분 걷다보면 나한님들을 모신 응진전을 갈 수가 있다. 가는 도중 ‘바람이 머무는 곳’이라는 어풍대에서 청량사를 바라보면 다시 한번 탄성이 나온다. 연꽃잎에 살포시 쌓인 듯한 청량사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누가 찾아와도 편히 쉬었다 갈 수 있는 곳. 혼자 또는 여럿이 와도 며칠 편히 쉬어갈 수 있고 언제든지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방문객용 다실茶室도 있다. 삼베 바닥과 황토벽이 정갈하고 평안한 느낌을 준다. 주지스님실의 넓은 유리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탁월한 전망을 즐기며 나누는 지현 스님과의 차담은 또 하나의 소중한 기억이다.
이곳에서 해마다 가을에 한 차례씩 열리는 산사음악회가 정말 장관이다. 올해도 9월경에 열릴 예정이다. 이곳의 불타는 듯한 단풍도 장관인데 여기에 자연이 무대가 되어 사람과 음악 모두가 하나 되는 ‘야단법석’이 펼쳐진다.
떠나면서 벌써 그리운 곳… 여름에 찾으며 산사음악회에 꼭 다시 오리라 기약하고, 겨울이 되면 또다시 생각난다. ‘그곳 설경이 정말 장관이라던데’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