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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요우(朋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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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한상린 2004년 07월 269호
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녘의 들길은 참으로 싱그럽다. 차에서 내리자 물씬 다가오는 풀 냄새 흙 냄새가 가슴 넉넉히 정겹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은 내 나라 남의 나라가 다르지 않은가 보다. 넓은 대륙의 나라 중국 땅에 업무상 둥지를 마련하고 오간 지 오륙년. 오십년 가까이 나를 이루고 있던 생각들 중에, 지난 오륙년 사이 함께한 이웃나라 친구들로 인해 변한 것들을 짚어본다.
앞서 길을 안내하는 아가씨의 경쾌한 걸음걸이와 가뿐한 몸짓이 마냥 자유롭고 순박하다. 잠시를 뒤로 하고 넓은 대지를 떠받치듯 치솟아 오르는 태양은 소스라칠 만큼 정말 위대하다. 햇살을 받아 드문드문 피어 오르는 안개 사이로 부지런한 농부들의 서두르는 발길이 잦아진다. 좁은 길로 들어설 즈음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바지자락으로 튀어 오른다. 일찍 잠에서 깬 작은 풀벌레들이 갑작스러운 침입자를 피해 이리저리 달아났다.
문득 길가 풀섶에 큰아이 몸뚱어리만한 예닐곱 개의 항아리들이 길을 막아 선다. 뚜껑이 열린 채 나뒹굴고 있는 두세 개의 항아리 속에서 놀란 개구리가 뛰어나온다. 어정쩡하게 항아리를 비켜 걸으려는데 아가씨가 엎드려 무언가를 주섬주섬 주워 항아리에 담았다. 순간 죽은 자의 유골을 항아리에 담아두는 낯선 이국 풍습임을 눈치로 느꼈다. 그리고는 곧 그것이 사람의 유골임을 분명히 인식하고는 습관적으로 오싹해졌다. 그녀의 동작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움직였고 그 손놀림은 전혀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않았다. 그리 처음부터 그대로 있었던 것처럼, 그대로 해왔던 것인 양, 자연 속에 잘 분배된 바위며 들풀이며 한 그루 나무였다. 맑은 눈동자에선 전혀 두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당황해 하는 이방인을 향해 싱긋 웃어보이며 안심시키려는 듯 했다.

넓디넓은 대륙 남쪽 끝 한 자락에 머물며 대륙이 보듬고 있는 십수억의 사람들을 생각해본다.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사람 사람 사람.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듯 흘러갈 뿐 누구도 그것을 역류하거나 비켜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흐름 속에 몸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것은 아니다. 각자가 맡은 일과 각자의 자리를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하여 도도히 흐른다. 거대한 그 흐름을 결코 얕잡아 볼 생각은 아니었다. 다만 넓게 길게 흐르는 것이 무에 그리 대단할까 싶었다. 그런데 틀렸다. 깊이를 느끼기엔 두려울 만큼 크고 무겁다. 무섭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저녁 어스름이 작은 마을 어귀에서부터 어둑어둑한 산 그림자를 내릴 때쯤 앉은뱅이 대나무 의자에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그들에게서 살아 있는 자와 자연으로 돌아간 자의 구별은 없다. 한 세대를 같이 동행하는 노인과 아이는 가장 친밀한 친구로, 먼저 간 친구들을 가슴에 담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거리낌 없고 허물없는 대화에 섞여 간간이 들려오는 긴 웃음소리가 어둠을 더 깊게 끌어안는다. 가식이나 격식에 구애 받을 일이 없다. 교육과 철학으로 마무리하지 않는다. 내 탓이라고 소리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베풀어야만 한다는 틀에 박힌 고급언어를 구사하는 종교도 없다. 그들에겐 팔순의 노인도 세 살 난 아이도 잠시 머물다가는 이생의 동반자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어쩌면 찰나를 태어나면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자연으로 돌아간 자들조차도 찰나를 함께 한 서로의 친구로서 유골을 스스럼없이 대하는 게 아닐까?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만나더라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친구라는 말을 쓰는 것에 익숙지 못했던 어리석음을 다시 한 번 헤아려 본다. 누가 사레가 들려 헛기침을 해대거나 불편한 트림을 하면 어른이건 아이건 남자든 여자든 윗사람 아랫사람이라는 개념 없이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준다. 정겹기 이전에 그들에겐 오랜 생활 속에 이미 함께 하는 친구가 있었다. 정중하게 때론 가볍고 장난스럽게 꼬마친구, 젊은 친구, 나이 든 친구라 부르며 그들은 이렇게 팔십 평생이라는 삶을 한 단위로 묶어 삶과 죽음이 알맞게 용해된 곳에 머물고 있다.
누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선진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며 돈을 꺼내 흔들고 우쭐대며 문화가 없다고 함부로 했다. 희멀건 얼굴에 모양새를 갖추고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케니지의 연주를 듣는 것이 문화라고 생각하고, 지나치리 만큼 나이와 선후배를 따져야 하는 격식이 품위 있는 문화라고 규정짓는 그들에게 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는 격식과 틀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고통스럽게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왜 꼭 그렇게 격식을 갖추고 서열을 따져야만 했는지. 받침대에 정갈하게 올려진 찻잔의 문화가 편안할 수 있는 자유를 얼마나 구속했는지 우린 생각해 볼 필요조차 못 느끼고 살아왔다. 문제는 편협한 수양과 가식에 얽매여 스스로 헤아려 본 적이 없는 우리자신의 마음이다.

인골 조각을 너무나 태연하게 주워담는 단순함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불분명한 마음의 설정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어렵게 하며 주저하게 만드는 고정된 사고였다. 뼈 부스러기와 흙과 내가 그저 하나로 이생에 잠시 존재하는 것이라며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그녀는 말했다. 물론 읽고 배운 만큼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 만큼 실제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우린 모른 체하고 살아간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등과 어깨를 주물러 드릴 때 몸과 마음이 가까이 가본 적이 없다. 한번도 친구가 되어 본 적이 없어 늘 어렵고 거북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실 줄 알았던 당신께서 훌쩍 자연으로 돌아가신 날 곁에 앉아 있는 사십 중반을 넘긴 자식은 두려움과 거북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내 바보같이 치를 떨었다. 사실 당신의 차가워진 손을 가슴으로 뜨겁게 잡아드리지 못했다.
내가 내가 아니고 당신이 당신이 아님을 우린 서로 안다. 또한 내가 나를 알고 당신이 당신을 안다. 우리는 두려움이나 격식이 없는 눈을 서로를 보며 감싸 안았어야 하는 진정한 친구였어야만 했다.
더 건강하고 순수한 삶을 위해 진정한 친구로 당신의 분진이 담긴 부도탑을 뜨거운 가슴으로 틈틈이 보듬으며 아직도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는 대륙사람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