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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고 돌다리는 보지 못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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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조계종정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 2004년 07월 269호
조주석교본무성趙州石橋本無星하니
수급유어불이정水急游魚不易停이로다
교상지관려마적橋上只觀驢馬跡하니
수인감향어가행誰人敢向御街行고.
조주의 돌다리는 본래부터 디딤돌이 없어
물이 급해 노는 고기 멈추지 못한다
다리 위에는 말과 당나귀 발자취만 보이니
뉘라서 말을 타고 감히 건느려 하랴.

조주 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
“조주의 돌다리 소문은 오래 전에 들었습니다만 와서 보니 외나무다리만 보입니다.”
이에 선사가 말했습니다.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고 돌다리는 보지 못했구나.”
납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돌다리입니까?”
“말도 건너가게 하고 나귀도 건너가게 하는구나.”
“어떤 것이 외나무다리입니까?”
“사람을 하나하나 건너가게 하느니라.”

하북성河北省 조주趙州 땅에는 돌다리가 하나 있었는데
이는 이응李膺이라는 거사가 만든 것으로 조주 스님 당시에도 천하에 유명한 다리였습니다.
이 납자가 조주 땅에 들러 조주 종심 스님을 만난 차에 한마디 던졌습니다.
“조주 땅의 돌다리에 관한 소문을 들은 지는 오래인데 막상 와서 보니 외나무다리뿐입니다.”
그러자 천하의 조주 스님이 응대하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그대는 외나무다리만 보았을 뿐, 돌다리는 보질 못했군.”
그 납자가 던진 한마디를 가지고 조주 스님이 이를 낚아채니 그대로 낚시바늘에 걸려 든 격 입니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어떤 것이 돌다리냐’고 하니
‘나귀도 건너고 말도 건넌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한술 더 떠 ‘어떤 것이 외나무다리냐’고 또 물으니
‘사람이 하나하나 건넌다’고 한 것입니다.
제대로 된 안목이 없으니 질문이 갈수록 태산입니다.
하지만 우문愚問에도 현답賢答을 합니다.
만약 이런 경우 덕산 스님이었다면 몽둥이질을 삼십번은 하였을 것입니다.
만약 임제 스님이라면 고막이 찢어지도록 할喝을 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주 스님은 할喝이나 방棒이 아니라
말로써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이 거량들을 잘 살펴보면 일상생활 속에서 기봉機鋒을 서로 겨루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공안도 아닌 것입니다.

관계灌溪 선사와 황룡黃龍 선사 역시 이와 비슷한 문답이 전등록에 전해져 옵니다.

어떤 납자가 관계灌溪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물을 댈 만큼 큰 계곡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관계 스님의 소문을 들은 지는 오래인데
막상 와서 보니 마麻 정도나 축일 수 있을 정도인 작은 웅덩이에 불과하군요.”
“그대는 마를 축일 정도의 작은 웅덩이만 보았지, 관계는 보지를 못했네.”
“어떤 것이 관계입니까?”
“쏜살같은 급류이지.”

어떤 납자가 황룡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황룡 스님의 소문을 들은 지 오래인데 막상 와보니 능구렁이만 보이는군요.”
“그대는 능구렁이만 보았지, 황룡은 아직도 보질 못했군.”
“어떤 것이 황룡입니까?”
“굽이굽이 서려 있지.”
“갑자기 용을 잡아먹는 금시조를 만났을 때는 어떻습니까?”
“목숨을 보존하기 어렵겠지.”
“그렇다면 그 금시조를 만나면 먹히겠군요.”
“그대의 공양에 감사드리네.”

관계나 황룡이라는 이름자字를 가지고 평이하게 주고받는 선문답입니다.
하지만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지엽적인 말장난에 떨어지는 것은 지극히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만길 벼랑 위에 서서 불법의 기특한 영험을 나타내는 것이 비록 고고하고 높다고 하겠지만
조주 스님은 고고함을 내세우지 않아도 평상시 자연스럽고도 매끈하게 수행자들을 제접합니다.
위세를 부리지 않아도 저절로 위엄스러워지고 애써 높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높아지며 상대방과 주고받는 말 속에서 고고함이 우러나와 현묘함이 그대로 드러날 뿐입니다.
황룡 스님과 관계 스님의 경우는 공고한 경지를 세운 것이니 옳기는 옳다고 하겠지만
너무나 인위적인 조작을 쓴 것이므로 조주 스님의 법문보다는 격이 조금 떨어집니다.

조주 스님께서 하루는 수좌와 함께 돌다리를 구경하다가 물었습니다.
“누가 만들었는가?”
“이응李膺이라는 거사가 만들었습니다.”
“만들 때 어디부터 손을 댔는가?”
그러자 수좌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조주 스님이 말했습니다.
“평소에는 ‘돌다리 돌다리’ 하면서 잘도 말하더니 가장 먼저 손을 댄 곳을 물으니 모르는구나.”
맨날 사구死句만 붙들고 늘어질 뿐 진정 활구活句는 알지 못하니 말이 막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산승이 결제대중들에게 묻겠습니다.
조주 스님께 돌다리를 물으니 말도 건너가게 하고 나귀도 건너가게 한다고 하였고
외나무다리를 물으니 사람을 하나하나 건너가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주 선사는 돌다리를 두둔한 것입니까? 외나무다리를 두둔한 것입니까?
올여름 한 철 동안 잘 참구해 보시길 바랍니다.

장경이압랑두비長鯨已壓浪頭飛하고
파별교변상전니跛鱉橋邊尙轉泥로다.
도마도려수회득度馬度驢誰會得고
녹양영리노동서綠楊影裏路東西로다.
큰고래는 벌써 물결을 누르고서 날아가는데
절름발이 자라는 아직도 다리 곁에서 진흙탕 속을 헤맨다.
말도 건너고 나귀도 건너는 뜻 누가 알리오.
푸른 버들 그늘 밑엔 동서로 길이 트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