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 오지에 있는 먼 사찰에 가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 길을 떠나면서도 나는 그 사찰이 고향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이미 떠난 지 오래인 고향. 그래서 아무도 아는 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길을 따라 이어지는 숲은 짙은 녹음을 드리우며 여름으로 가고 있었다. 익어 가는 것이다. 앳된 시간을 버리고 스스로 익어가는 길가의 숲을 바라보며 내 생의 시간은 얼마나 익었는지 가늠해 보았다. 시간상으로 내 생의 시간은 가을이 오기 바로 직전의 여름이었다. 그러나 존재상으로 나는 그 시간의 깊이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수확의 계절을 마주하기에는 아직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내 존재의 자리를 돌아 볼 때마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다는 헛헛함이 다가선다. 시간은 흘러 이만큼 왔는데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자취가 없다. 존재의 공허로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길게 그림자를 끌고 다가와 내게 한숨짓게 한다.
차가 고향에 가까이 다가서자 낯익은 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남루한 집들과 이제는 많이 쓸쓸해진 거리와의 재회 앞에서 나는 그만 내 스스로 고향을 느끼고야 말았다. 어쩌면 고향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몸은 떠나도 마음은 남아 떠나지 못하는 곳. 잊었다고 생각했던 고향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이토록 커다란 울림으로 살아 있었던 것을 나는 미처 몰랐던 것이다.
추억이 서린 역사 앞에서 차를 멈추고 서서 역사의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사의 내부는 이미 내 기억 속의 풍경은 아니었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서울에 가기 위해 도착했던 눈 내리던 새벽 역사. 갈탄 난로가 타고 있고 드르륵 소리가 나던 나무문이 내 기억 속에는 유난히 선명하지만 역사는 그 모습을 더 이상 간직하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눈이 내리고 그 눈발을 헤치고 달려오던 그 날 기차의 불빛과 기적소리는 여전히 내 귓가에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나는 문득 어머니가 그리웠다. 먼 시간이 흘러도 추억 속의 기적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나는 역사에서 다시 만난 것이다.
마조 도일이 큰스님이 되어 고향을 찾았을 때 일이다. 고향 사람들은 마조를 큰스님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마조를 마씨 집안의 아들로 대했을 뿐이다. 그 후로 마조는 다시는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고 한다. 큰스님이 아무개 집안의 아들로 대접 받은 고향을 마조가 다시 찾지 않았다는 사실이 내게는 여전히 의문이다. 고향을 찾을 때의 마음과 고향을 다시는 찾지 않은 그 마음의 차이를 나는 아직 알 수가 없다.
내가 어쩌다 큰스님이 된다고 하더라도 나는 고향에 가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마조처럼 소리 나게 가지는 않겠다. 살짝살짝 가겠다. 가서 혼자 이렇게 느끼다 오고만 싶다.
차를 타고 다시 떠나는 길 누군가 우산을 쓰고 걸어온다. 마치 어머니의 모습인 것만 같아 가슴이 저렸다. 고향은 어쩌면 모든 것이 어머니로 다가서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는 고향을 몰래 찾는 나그네로 남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