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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과 음담패설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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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오성_1 2003년 02월 252호
작년 여름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반과 나는 깊은 산골에 은거하고 계신 한 노스님을 찾았다. 동행했던 도반이 도심 한복판에 있는 절을 맡게 되었는데, 지금까지 선방과 경학만으로 수행했던 스님이라 포교 일선에 나선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걱정도 되었다. 그런 연유로 평소에 마음으로 존경하던 노스님을 찾아 뵙고 문안도 드리고 자문도 받을 생각이었다.
산사에 도착하니 노스님께서 설법을 하고 계셨다. “요즈음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순수’야. 순수한 마음을 잃어 버리면서부터 모든 문제들이 발생했단 말이야.” 하시면서 법문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노스님이 들려 주신 픽션 일화의 한 토막은 한 시간 내내 신도분들과 함께 재미와 감동을 느끼게 했다. 이 일은 훗날 도반이 포교하는 데 있어 병도 되고 약도 되었다. 법회 첫날 나는 긴장된 도반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았다. 그날 도반은 최고로 멋있고 자랑스러웠다.
반갑습니다. 옛날 산골에 농사짓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하루는 아들이 장에 소 팔러가서 늙은 시아버지와 며느리 둘이 밭에 가게 되었습니다. 한나절이 지나도록 일을 하는데 시아버지가 목이 말랐죠. 갖고 온 물이랑 막걸리도 다 떨어졌는데 해가 지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아 있었습니다. 침만 꿀꺽꿀꺽 삼키는 모습을 지켜 보던 며느리가 안타까운 마음에 “아버님, 이 젖이라도 잡수시겠어요?” 하였습니다. 몹시도 목이 탔던 참에 시아버지는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장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시아버지는 며늘아기 칭찬할 요량으로 낮에 있던 일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아들이 벌컥 화를 내며 “왜 우리 색시 젖을 드셨어요?” 하는 게 아니겠어요. 화가 난 아버지는 “니는 우리 색시 젖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데.” 하였답니다 …….
이 얘기는 노스님이 들려 주신 그 픽션 일화의 한 토막이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순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덧붙이고 나서 도반은 무사히 첫 법회를 마쳤다. 그런데 그날 저녁 절에 있는 전화기마다 불통이 날 정도로 신도들의 항의전화가 쇄도했다. 어떻게 스님이 돼서 그런 야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도반은 자신의 본래 뜻은 이러저러한 말이었다고 이해하시라는 답변을 밤새 되풀이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렇게 말을 했다.
“왜 노스님이 하실 때는 깔깔대며 웃기만 하더니, 내가 하니까 난리들이지?”
똑같은 욕이라도 큰스님이 하면 법문이 되고 똑같은 ‘야한 이야기’라도 젊은 스님이 하면 멀쩡한 법문도 음담패설이 되는 도리가 있는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