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치가 아름다운 곳을 가게 되면 누구나 그 곳에서 살아보았으면 혹은 하룻밤쯤 묵어 보았으면 하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는 산수가 수려한 곳에는 마을이 들어서 있기도 하지만 사원이 있어 부처님의 자비를 산수와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고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곳마다 절이 있어 사람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교토와 그 근교는 계절마다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 곳이 많다. 그 곳에 가면 반드시 고찰古刹이 옛날 모습 그대로 자리하고 있어 무분별한 개발이나 환경 파괴와는 거리가 멀다.
교토 근교에 위치하고 있는 우지(宇治)는 차茶 생산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많은 문화유적지가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머물고 싶어하는 곳이다. 교토 시내에서 오사카 행의 게이한(京阪) 전철을 타고 쥬쇼지마(中書島) 역에서 내려 우지 가는 전철로 바꾸어 타고 종점까지 간다. 우지 전철역에서 내리면 바로 우지가와(宇治川) 강이 있고 다리를 건너면 강변에 바로 뵤도인(平等院) 절이 자리하고 있다. 다리에 서면 강의 상류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오른쪽으로는 뵤도인 절이, 그리고 왼쪽으로는 강가를 따라 찻집과 주택이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뵤도인 절은 11세기 초에 당시 유력한 가문으로 권세를 떨치던 후지하라(藤原) 귀족의 별장을 절로 바꾸었고, 특히 1053년에 낙성공양한 봉황당鳳凰堂은 당시의 번영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본존이 안치된 중당中堂은 높이 올려 2층으로 보이게 하고 중당 좌우와 뒤쪽으로는 날개와 꽁무니처럼 복도를 내어 전체 건물이 봉황의 자세처럼 만들어져 있다.
중당의 지붕 양끝에는 두 마리의 봉황이 서 있다. 봉황당 앞에는 우지가와 강물을 끌어와 인공으로 연못을 만들어서 경전에서 설하는 아미타정토의 보전지천寶殿池泉을 우지의 명승지와 조화를 이루면서 이 세상에 실제로 만들었던 것이다. 특히 건물 전체가 연못 속에 비추는 모습은 장관이다. 중당 내부는 문과 벽면에 구품왕생의 그림을 그렸고 기둥과 천정에는 보상화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작은 벽면에는 갖가지 모양의 악기와 자세를 취하고 있는 51구의 운중雲中 공양보살을 부조로 만들어 붙이고 있다. 천개天蓋, 대좌 그리고 수미단 등도 각가지 보석으로 장엄되어 있고 그 속에 중당의 본존인 아미타여래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뵤도인 절 봉황당의 아미타여래좌상(상 높이 283.9㎝, 木造漆箔)은 1053년에 조죠(定朝) 스님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기록에 의하면 조죠 스님은 1057년에 돌아가셨다고 하니 이 상은 거의 그의 만년의 작품이며 또한 제작 연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상이다. 연화대좌 위에 높은 광배를 지고 정인定印을 취하고 있다. 신체 각 부분의 비례는 완벽하며 옷은 신체의 기복에 따라서 부드럽게 흘러내리고 있다. 원만한 상호는 일본인이 가장 이상적으로 여기며 동경하던 부처님의 얼굴로 손꼽고 있다. 어떤 이는 갓 이발하고 나온 청년의 상큼한 이미지에다 비유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보름달과 같은 부드러움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 상이 만들어진 이후에 일본 각지에서는 이 상의 형식과 작풍을 모방하여 불상이 제작되었으며 그것은 약 100년 동안 계속되었다.
조죠 스님이 활약하던 헤이안(平安) 후기는 당시 견당사遣唐使의 폐지(907년)와 더불어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받아오던 대륙 문화를 지양하고 미술 전반에 걸쳐 일본적인 것을 추구하던 시기였다. 조각에 있어서는 10세기 전반기부터 온화한 작풍을 추구하기 시작하여 둥그런 얼굴에 초승달과 같은 눈에 옷주름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불상이 만들어졌다. 10세기 말부터 11세기 초는 조죠 스님의 아버지 고죠(康尙) 스님이 활동한 시기로 후지하라 가문의 권력과 번영을 기반으로 많은 사원과 불상이 조성되었다.
고죠 스님의 작품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으나 이 스님이 활약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모아서 살펴보면 그의 작풍을 추측할 수 있다. 우선 불상과 보살상의 얼굴은 청년과 소년의 중간쯤 되는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며 특히 눈이 작게 표현되어 알기 쉽다. 육신의 기복은 부드럽고 옷주름은 아직까지 목조 조각의 느낌이 남아 있으면서도 부드러움을 띄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교토의 변죠지(遍照寺) 절 십일면관음상과 도후쿠지(東福寺) 절 도슈인(同聚院) 당의 비사문천상毘沙門天像 등을 들 수 있다.
이후 조죠 스님 때에 이르러 그는 나라(奈良) 시대의 조각을 고전으로 삼아 두루 섭렵하면서 새로운 조각 경지를 개척하였다. 즉 동銅, 건칠乾漆, 소塑 등의 재료로 만든 것처럼 그 재료의 부드러운 표현을 목조에 접목시키면서 일본 조각에 있어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한 사람으로 보고 있다. 그의 조각에서 추구하던 전체적으로 조화된 신체와 원만한 이미지의 상호는 바로 뵤도인 봉황당의 아미타여래상에서 완성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절의 연못 건너편에는 절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되었을 만한 커다란 등나무가 있다. 5월 초가 되면 연보랏빛의 꽃이 피는데 이 보라색 역시 헤이안(平安) 귀족들이 최고로 고귀하게 여기던 색깔이었다.
강둑으로 나와서 때 이른 비로 인하여 수량이 높아진 강 위로 절과 그 건너편을 잇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니 물소리가 요란하다. 절의 반대쪽 언덕을 조금만 올라가면 우지카미진자(宇治上神社) 신사가 있다. 이 신사는 헤이안 시대의 건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될 만큼 작고 예쁜 건물인데도 모두들 모르고 그냥 지나친다. 다시 강가로 내려오니 강가에는 뵤도인과 우지가와 강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사는 집들이 눈에 띈다.
오늘은 도시락 대신에 절과 강이 훤히 내다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녹차라도 한 잔 하고 들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