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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을 깁던 도반의 모습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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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3년 02월 252호
오늘도 어김없는 시간에 방송국을 향했다. 매일 아침 9시 5분이면 한결같은 소리로 생방송을 시작해야 한다.
어느 여름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길을 나서는 나를 보며 주지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생각난다. “진명 스님도 참 업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저렇게 한결같이 나가야 하니….” 그렇다 나도 업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산중 생활을 벗어나 도심에서 포교라는 미명하에 일명 ‘방송정진’이라고 하면서 기운 빠지는 일도 많았지만 그래도 수행자의 여정에서 배운 것이 많은 편이다. 일년 삼백육십오일 어김없이 집을 나서야 하는 우리 나라 직장인들의 힘겨운 삶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고, 시주의 은혜가 ‘쌀 한 톨이 일곱 근의 무게’라는 어른 스님들의 말씀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기에 씀씀이가 진지해지기도 했다. 산문 밖으로 내다보던 세간 사람들의 삶보다 훨씬 더 깊이 세간 사람들의 힘든 삶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을 윤택하게 하는 재화를 창출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고 할까? 시간을 아껴서 이용하고 한 달 방송을 하고 주어지는 대가에 대해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자신이 땀흘려 돈을 벌어보지 않고서는 단돈 천원이라도 그 돈의 가치와 크기를 잘 알지 못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참 의미 있는 시간들이다. 쉽게 생각하는 밥 한 그릇의 의미와 옷 한 벌의 가치는 너무 큰 것이다.
요즘 같이 실내에 난방이 잘 되어 있는 도심에 살면서도 발이 시리다고 하면 사람들이 웃을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쩐 일인지 날씨가 조금만 추우면 발이 시려서 양말을 두꺼운 것과 얇은 것을 겹쳐서 신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다. 그래서 겨울이면 꼭 오래 전에 사제 스님이 꿰매 준 양말 뒤꿈치가 흐물흐물해도 버리지 못하고 즐겨 신는다.
몇 해 전에 외국에서 몇 년간 공부를 하고 들어온 도반 스님이 몇 철을 선원에서 안거를 보냈다. 그러면서 동안거 준비를 하는 모습을 봤다. 양말 두어 켤레를 내놓고 성한 양말 바닥을 깁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거 준비라는 사실을 잊고 왜 성한 양말 바닥을 깁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 도반 스님은 “글쎄 양말 한 켤레라도 시은을 덜 입는 것이 가만히 앉아 안거를 나면서 마음 가볍지 않을까 해서…” 라고 하면서 빙긋이 웃었다. 그러면서 “왜 내가 청승맞어…?”라고 반문했다. 그러는 모습을 보면서 그런 도반이 있다는 것이 괜히 기분이 좋았다.
요즘 같은 추운 겨울날 옛날 같으면 내의나 양말 한 켤레도 아껴 신고 발꿈치와 발가락 부분이 떨어져 기워서 신은 양말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어졌고 양말을 기워 신으면 오히려 청승맞다는 핀잔을 듣기도 한다. 물론 스님들이 입는 평상복인 승복도 마찬가지다. 내가 출가하던 당시만 해도 행자들은 당연히 스님들이 입다가 헐거나 작아져서 행자실로 퇴공한 옷가지들을 몸에 대충 맞춰서 입곤 했었다. 옷이 색깔이 맞지 않는 짝짝이라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적삼이 작아서 소매가 짧아 깡뚱해도 그저 회색옷을 입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고, 적삼에서 행건까지 다 색깔이 다르고 여기저기 기워서 입어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하던 시절이었다.
다른 계절보다 밤이 길고 밖에서 하는 운력이 적은 이런 겨울날 행자들은 시간만 나면 행자실에 옹기종기 머리 맞대고 모여 앉아 어쩌다 공양 받은 새 양말의 뒤꿈치에 다 떨어져서 버릴 양말의 성한 부분을 잘라서 바닥에 대고 가로세로로 깁는 풍경이 흔했다. 양말 바닥을 꺼내서 신기 전에 알뜰하게 기워 놓으면 빨리 떨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신을 수 있다는 기대와 또 강원에 공부하러 가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공양 받은 양말마다 부지런히 기워서 서너 켤레 장만을 해 놓으면 겨울에는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내의도 다리가 부딪치는 곳은 미리 떨어진 내의의 성한 부분을 잘라 맞대고 기워 놓으면 훨씬 오래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출가하는 행자가 귀해서인지 대중처소가 아닌 작은 사암에서는 어른들은 행자만 들어오면 옷부터 먼저 맞춘다. 물론 초심자의 마음을 붙들어 놓고 싶은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좀 반듯한 헌옷을 입어도 흉하지 않고 오히려 시은을 덜 입는다는 그 정신부터 심어 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어른 스님들과 함께 우리보다 나은 대만불교의 대사회적인 복지와 승가의 교육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온 일이 있었다. 물론 우리 한국 불교가 다 잘못되었고 대만 불교가 모든 것을 다 잘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른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장점은 배우는 것이 더 발전적인 사고가 아닌가 싶다.
며칠 동안 함께 다니면서 이동을 하는 중간 시간에 서로 느낀 점을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했는데, 그 때 내가 외람된 말을 어른 스님들께 했던 기억이 난다.
“어른 스님들 죄송합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곡해하진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우리 학인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학인이 노스님께서 옷을 맞춰 주셨는데 색깔이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이 아니라고 다른 도반에게 그 옷을 서슴없이 주더라는 겁니다. 물론 은사 스님이 선방 수좌 스님이었던 그 스님은 잘 얻어 입었다고 하지만, 그뿐만이 아닙니다. 요즘 초심자들에게 주어지는 물질이 너무 풍부하기도 하고 어렵게 만든 손상좌라서 그런지 한 철 용돈을 많이 줘서 너무 쉽게 돈을 쓴다는 겁니다. 그런 비구니 승가의 풍토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갑갑합니다. 발심해서 출가하는 사람들에게는 풍요로운 물질보다는 쉽게 변하지 않는 단단한 수행자적인 정신을 물려주는 것이 더 보배롭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질로 부자가 되는 것은 이제 세간 사람들도 다 허망하고 부질없음을 알고 물질이 아닌 불보살의 정신으로 살고 부처님 말씀을 실천하면서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넉넉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사는 법을 다 알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데 부처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는 지중한 인연을 짓고 온 수행자들에게 물질이 아니라도 충분히 넉넉하게 살 수 있는 불법을 먼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뭐 대충 이런 내용들이었다. 그 때 함께 했던 어른 스님들은 모두 다 공감하시면서 “그래 우리가 이번 대만불교를 견학하면서 우리들의 잘못되어가는 승가의 풍토를 반성해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참 의미가 있다고 생각 한다”라고 하시면서 좋은 의견들을 모으기도 했었다.
후배 수행자들이 다 시은을 가벼이 여긴다는 것은 아니다. 물질이 풍부한 이런 현실에서 출가하는 것이 복된 수행자의 삶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깨달음을 추구하는 간절한 정신을 빼앗길 수 있는 요인이 많아져서 수행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계율정신이 살아 있고 최소한의 것으로 넉넉한 수행생활을 할 줄 아는 수행자라면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나에게도 그런 도반이 있고, 그렇게 존경할 만한 어른 스님이 계신다는 것은 나에게 행운이다.
시간과 물질의 질서있는 씀씀이의 이런 습관들이 도반이나 지인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인색하게 보이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모든 수행자들이 풍요로운 물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정신세계에서 풍요롭길 간절히 기원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