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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문화잔치 '21세기 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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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정재숙 2003년 02월 252호
건축계의 문화잔치 경남 합천 해인사가 신라 애장왕 3년(802) 절을 처음 세운 지 1천2백년만에 새 도량을 짓고 21세기 평등과 공존의 생명사상을 새롭게 일깨우는 영적인 장소로 거듭난다.
해인사(주지 세민)는 2002년 12월 초 ‘개산 1200년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 건립 설계경기 공모’를 발표했다. 성보 박물관 주변 터에 들어설 신행문화 도량은 스님들만을 위한 수행공간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제한할 기존 해인사를 대신해 불자들에게 참배와 수련공간으로 공개된다.
해인사측은 특히 새 시대에 맞는 불교사찰의 전형을 제시하기 위해 설계경기 방식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12월 26일 오후 5시까지 참가신청(www.haein-sa.org)을 받은 설계경기는 금년 2월 28일까지인 일반 공모와, 1단계에서 뽑힌 다수작에 대한 지명설계경기 2단계로 나눠 시행하게 되었다. 총 86개 팀이 참석하여 기량을 겨루게 되었다.
해인사는 이미 1993년에 신 해인사를 짓기로 결정하고 지난 10년에 걸쳐 준비 작업을 해왔다.
세민 주지 스님을 비롯한 네 명의 스님이 2002년 11월 초 일본, 11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유럽으로 나눠 두 차례에 걸친 건축기행까지 다녀왔다.
‘신성한 장소로의 여행’이란 제목으로 이뤄진 이 답사에서 스님들은 건축사가인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와 건축가 정기용씨와 함께 새로운 도량이 갖춰야 할 내용과 형식을 놓고 심도있는 연구와 토론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스님들은 신행문화 도량이 지녀야 할 성격을 이렇게 정리했다.
첫째는 그간의 사찰 건축 불사의 반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실에 비춰 불교건축이 거듭나는 초석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출가의 의미를 되새겨 중생과 함께 부처님의 정신을 헤아리는 길로 나아갈 터를 세운다는 뜻을 건물에 담는다.
둘째는 자연의 회복·치유·치료다. 이 땅의 신성함을 되살리고 자연과 친하게 살아가는 곳을 만든다. 자연이 주인이고 건물이 손님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사찰의 사회적 모델을 제시한다. 누구나 와서 기도·염불·참선의 과정을 즐겁게 거치며 내면을 맑게 거르고 돌아갈 수 있는 장소로 꾸민다는 안案이다. 크기나 규모에 매달리는 불사 관행을 지양하고 진정한 수행 공간 창조의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법당은 현실적 요구를 충족시키면서도 전체의 조화와 균형이 깨어지지 않게 건립할 예정이다.

고즈넉한 겨울 산사가 사람들 발소리로 부산해졌다. 지난 해 12월 28일 낮 12시쯤 경남 합천 해인사. 눈발이 흩날리는 절집 마당으로 건축가 2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해인사가 802년 절을 세운 지 1천2백년 만에 새 도량을 지으려 마련한 설계경기 현장 설명회와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전국에서 달려온 건축인들이었다.
최두남 서울대 교수 등 각 대학 건축과 사람들, ‘공간’ 등 대형 건축사무소 실무자들, 이종호·이일훈씨 등 아틀리에형 소규모 건축사무소 대표들을 아우른 참석자들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네 왔구나.” “선생님도 오셨습니까?” 원로부터 소장 청년층까지, 한국에서 내로라 하는 건축가들이 총출동한 듯 해인사는 건축인들의 세밑 잔치 마당으로 훈훈해졌다.
‘개산 1200년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 건립 설계경기 공모’는 12월 26일 마감했는데 참가 신청자가 86팀을 기록해 이미 건축계의 화제가 됐다. 재단법인 아름지기(이사장 신연균) 후원으로 성보박물관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도 한국에서 이뤄진 설계경기 관행에 비추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1백30여 쪽에 이르는 두툼한 건립 보고서 겸 설계경기 지침서는 이번 새 도량을 짓는 과정과 의의를 낱낱이 적어 건축인들의 의욕을 북돋웠다. 사회를 맡은 건축가 정기용씨는 “불교계, 건축계, 비정부기구 삼자가 힘을 모아 불사를 이루는 이런 자리는 처음일 것” 이라며 심포지엄을 시작했다.
먼저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화엄사상과 불교건축’을 주제로 해 “새 시대의 새 절은 중생과 함께 가는 사회적 문화·정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는 ‘시대정신과 불상의 이미지’를 제목으로 한 슬라이드쇼에서 “백제·신라·고려 시대의 불상이 각기 다르듯이 21세기 우리 시대의 불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신 해인사 창건의 코디네이터로 참여한 이상해 성균관대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 현재 이뤄지는 불사들이 선조들의 맥조차 잇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에서 출발하자”며 “1단계에 5~10명을 뽑아 다시 설계경기를 치르는 엄정한 2차 과정이 새 불사를 향한 주최측의 각오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신 해인사 창건의 코디네이트 정기용 씨는 “이 불사는 1천2백년을 맞이한 해인사가 또 다른 1천2백년을 준비하며 불교계에 새 바람을 일으키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한국 땅에 사는 중생들에게 신성한 것, 정신적인 것의 가치로 돌아가도록 이끄는 전환점”이라고 신행문화 도량에 거는 기대감을 나타냈다.
해인사는 2003년 2월 28일까지 1단계 설계경기를 끝내고 2단계 작품을 받아 10월 중에 착공, 2005년 10월에 준공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오후 6시까지 열띤 질의와 토론을 벌인 건축가들은 삼삼오오 어둠이 내린 해인사를 빠져 나가며 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절집은 어떤 것인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