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인사에서는 1990년대 초부터 옛 해인초등학교 자리에 새로운 시대의 불교를 담을 그릇이 될 수 있는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을 건립할 계획을 세워왔다. 그 과정의 하나로 조성된 것이 2002년 7월 5일 완공되어 개관한 해인사 성보박물관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2001년 6월에는 이른바 ‘해인사 청동대불’ 조성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야외 청동대불 조성은 <해인사 신행·문화도량> 건립의 한 부분이었을 뿐이었는데, 마치 해인사에서 청동대불만을 크게 조성하려는 것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해인사에서는 그간의 과정을 재검토하고 조정하기 위해 지난해(2002년) 여름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 건립 진행위원회’를 구성하여 그 동안 십여 차례의 회의, 그리고 신성한 공간의 실례를 접하기 위해 행한 두 차례의 국외 건축 기행을 통해 의견을 모은 결과, 현재의 해인사는 수행공간으로 성역화하고, 새로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을 조성하여 시대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불교사찰의 전형을 보이는 장소의 하나가 되도록 하기로 하였으며, 그 설계안은 설계경기(1단계, 2단계) 방식을 도입하여 채택하기로 하였다.
이를 좀더 부연해서 설명하면, 해인사는 해인사를 비롯하여 주변의 많은 유적, 가야산 일대의 명소들로 인하여 사찰 본래의 기능뿐 아니라, 관광지의 역할도 해야 했다. 특히, 1972년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심산계곡을 찾아 여가를 즐기려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해인사를 찾는 사람들도 늘어나면서 사찰 경내는 수도 도량의 종교적인 분위기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해인사에는 현대사회에 적합한 공간과 시설을 제대로 수용하기가 어려운 여건이다. 실제로, 우리 나라의 많은 사찰들은 일반신도들이 법당에 들러 참배하고 나면 더 이상 앉을 곳도, 이야기를 나눌 곳도, 쉴 곳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기존의 사찰은 법당과 공양간(식당)이 전부였다고 할 정도로 신심가득한 신도들에게까지도 ‘열린 공간’이 아니다.
이에 대응하여, 해인사에서는 해인사 경내는 수행 승단이 사찰 본래의 수행 기능을 유지하며 한국불교의 정신적 지주로서의 위치를 지속케 하고, 별도의 장소에 일반인과 신도들이 불교를 제대로 체험하며 수련할 신행·문화도량을 조성하기로 하였다.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의 건립은 신도를 포함한 일반인 및 청소년들에게는 법회 및 수련을 위한 장소를,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단순히 흥미 대상으로서의 관광이 아니라 불교를 통하여 정신을 순화할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탐방의 장소를, 한국의 불교를 찾는 국내외 인사들에게는 참선 및 국제규모의 회의공간을, 고려대장경을 연구하는 전문인들에게는 연구공간과 도서관을, 불교 문화유산을 이해하고 관람할 사람들을 위해서는 전시공간을 제공하는데 그 의의와 목적이 있다.
사찰(절집)은 스님들이 수도와 종교의식을 위해 조성한 종교 공동체다. 그래서 사찰에는 종교 공동체를 만드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종교적 상징 요건이 건축으로 나타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왔다. 특히, 이러한 변화는 사찰 건물 배치형식과 불전의 역할에서 잘 읽혀진다.
삼국시대 한국의 불교사원은 탑을 중심으로 그 앞으로 중문이, 그 좌우와 뒤로 금당이 있는 배치형식을, 또는 남북방향으로 형성된 중심축을 따라 중문·탑·금당·강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고, 중문과 강당 사이의 마당을 둘러싸며 회랑이 조성되는 배치형식을 기본으로 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조성된 산지 사찰은 경사진 산지의 지형조건에 맞는 배치를 하며 종전의 회랑으로 둘러싸인 사찰배치 규범에서 벗어난다. 이러한 사찰배치는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한국 특유의 사찰 배치형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금당은 더 이상 불상만 모시는 공간의 역할을 하지 않고, 설법을 듣고 예배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특히, 17세기와 18세기 전반기에 걸쳐 임진왜란으로 불에 탄 건물들을 복구하면서 사찰들의 배치와 공간구성은 오늘날 한국 사찰건축의 특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 시기가 되면 거의 중심 불전 앞 마당이 거의 모든 사찰의 중심공간을 형성하게 되며 그 좌우로 요사와 선방이 자리잡고, 마당 앞으로는 누각이 조영된다. 그리고, 규모가 큰 사찰은 몇 개의 마당이 중첩되어 배치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사찰 배치와 공간변화의 역사는 곧 신도들이 법당에 참여하는 기회가 증가되는 것을 보이는 역사이기도 하다. 사찰이 처음에는 불상을 모시는 금당과 승려들만을 위한 설법의 장소인 강당으로 구성되었다가 불상을 모시는 금당이 법회를 하는 불전으로 바뀌어 신도들도 불전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는 곧 신도들의 사찰 법회 참여 기회의 증가를 말하고, 이는 곧 우리 나라 사찰이 신도들에게 ‘닫힌 사찰’에서 ‘열린 사찰’로 변해왔음을 증명한다.
부처님 당시의 사찰만 해도 말 그대로 사찰은 승원, 즉 상가(Sangha)의 생활공간이었다. 내부에 어떠한 성스러운 공간도 갖고 있지 않았다. 부파불교시대를 거치며 부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면서 사찰은 성스러운 공간과 성스러움을 지키는 사람들(승려)의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사찰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성스러움을 지키는 사람들만의 공간은 물론이고, 성스러움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공간이 확보되는 것으로 변화하여 왔다.
이렇게 불교신앙의 형식과 사찰건축 형식이 시대의 흐름과 함께 변화하여 가듯이, 21세기를 맞이하는 한국불교 역시 새로운 시대적,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는 사찰로서 의무를 다하고, 종교 본래의 신성함과 수행공간을 형상화하는 불사건축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고민과 중지를 모을 수 있는 공간으로 새롭게 조성될 필요가 있다. 해인사에서는 이러한 요구를 수용하기 위해 해인사 제2의 창건과 다름없는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을 새로 조성하여, 신도와 일반인 및 청소년들에게 불교의식과 문화를 직접 체험케 하여 불교의 신행·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도록 하고자 한다. 그것은 새로운 종교공간, 사찰공간의 조성을 뜻한다.
건축을 하는 사람들은 건축 행위를 가지고 흔히 시대에 비유해서 말을 한다. 그 중에서도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는 말을 자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어떤 시대를 살며 어떻게 건물을 세우느냐에 따라 세워지는 건물의 모양과 격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는 말에는 또 다른 뜻이 담겨 있다. 그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을 하여야 한다는 뜻이 바로 그것이다. 시대에 소용되지 않는 건축은 무의미한 건축이다. 불교사찰만 보아도 그렇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각 사찰은 그 시대에 소용되는 신앙을 위해 이루어졌다. 그래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사찰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닌다. 이는 어느 시대의 사찰건축이 더 훌륭하게 조성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이 시대에 필요한 사찰공간이 요구된다.
종교가 수행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시대와 함께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종교는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종교는 개인의 구원과 내적 수행에 못지 않게 사회적 사명의 완수를 위해서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21세기를 여는 이 시대에 한국불교가 한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그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불사가 오늘날 이루어져야 하는가를 재조명해야 한다. 이것은 무조건 큰절을 짓거나 대불을 조성하자는 것과도 다르고, 절터만 남은 곳에 무조건 옛 건물을 지금 ‘복원’하자는 것과도 다른 차원의 것이다.
21세기는 민주와 자유, 인간의 존엄성, 자기 실현, 자기 완성 등을 추구하는 시대다. 그것은 물질세계의 충족에 이르는 것과 다르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에게 세속적인 것들이 불사문화에 반복되는 것을 보인다면 현대 한국불교는 시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나라의 많은 사찰들은 신앙의 기본 도량으로서, 그리고 현대적 역할을 수행하는 도량으로서 그 기능을 충족하기에 많은 애로점을 가지고 있다.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의 건립은 이러한 애로점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의 건립은 또 다른 의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자연과 건축과의 관계라는 명제를 새로운 건축의 형식으로 회복하는 데 있다. 한국 사찰건축의 특성을 꼽으라면 누구나 주변 자연지세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는 배치와 건축 형식이라고 한다. 사찰에 들어선 전각들은 경내와 자연을 하나의 유기적 체계로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찰은 오랜 세월이 만들어낸 장소와 환경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닦는 살아 있는 장소로서 사람들에게 신성한 것, 정신적인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게 한다.
그것은 건축을 자연보다 우월한 가치로 보지 않는 사고, 건축과 자연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가치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터의 이해, 주변 환경의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건축을 뜻한다. 그것은 또 자연과 생태적으로 교감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한국사찰의 자연과의 관계는 설계경기 참여자들이 유념해서 설계안에 반영했으면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나라의 많은 사찰에서 행해지고 있는 개축·증축·중창 등 불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자비로 충만한 불심과 자연과의 생태적 교감이 있는 공간이 자랑이던 청정도량이 여러 가지 이유로 훼손당하고 있다. 이러한 당면한 현상은 ‘현대 불사는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과제를 우리들에게 던진다.
해인사가 자리잡은 가야산 일대는 자연·생태환경이 아주 우수한 곳이다. 이러한 특성을 살려, 새로 조성될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은 자연과 공생, 공존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자연과 건축 사이의 경계가 없을 뿐 아니라, 수행승과 일반 신도 사이의 경계도 없는 곳이어야 한다. 그것은 주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고, 상황에 따라 주객이 모두 변하고 서로 섞이며 쉽게 합쳐지는 포용성을 갖춘 공간이어야 한다. 그것은 주와 객을 규명하는 건축이 아니라, 이들 사이에 주와 객이 하나가 되어 존재하는 건축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존중하는 생명적인 교감이 일어나 서로를 서로이게 하는 감응적인 건축이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과 사찰과 인간이 더불어 있는 종교 공동체, 생태 공동체이어야 한다. 그것은 인간 중심주의, 물질 중심주의를 넘어 인간과 자연, 인간과 만물이 근원적으로 동일한 존재로서 이른바 생생지리生生之理에 따라 생명의 율동을 구가하는 건축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새로 조성될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의 건축형식의 근간을 이루는 출발점과 정신은 건물이 들어설 자연과 터의 정확한 파악과 해석에 있다.
다음으로, <해인사 신행·문화도량>의 건립이 가진 또 다른 의의가 있다. 오늘날 많은 사찰은 한적하고 텅 비어 있다. 이를 두고 우리 나라의 사찰은 고즈넉하고 경건하다고 표현한다. 사찰이 스님들의 수행공간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사람들로 혼란스럽거나 북적거려서는 안 되지만, 신도들의 내왕이 활발하고 도량 곳곳에 생기가 넘쳐야 한다. 그것은 건축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공간활용도·공간이용도가 높은 사찰이어야 한다. 공간활용도·공간이용도는 곧 신도들의 참여도와 직결된다. 대사회적으로 현대불교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신도들의 사찰공간 이용률을 높이는 일이다.
신도들이나 일반인들의 사찰 공간이용에는 사월 초파일 같은 연례불사, 초하루·보름·재일 등과 같은 월례불사, 일요법회 등 주례불사, 그리고 매일 행해지는 기도·수행·예불 등이 있다. 이러한 불사와 법회 등 기존의 신앙행위를 위한 스님들과 신도들의 공간은 반드시 확보되어야 하지만, 이외에도 사찰에는 신도와 일반인들을 위한 현대적 기능을 충족할 공간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곧 교육(문화 강좌 포함)을 할 수 있는 공간,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공간, 자기 발전을 할 수 있는 공간, 신도들이 숙박할 수 있는 공간, 차 마시고 휴식하며 담소할 수 있는 공간, 일반인들에게 흥미를 돋울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사찰에는 아이들과 함께 찾을 수 있는 공간, 아이들의 공간, 가족이나 친구끼리 나무 밑이나 잔디에 앉아 오순도순 담소도 할 수 있는 공간, 밤이면 별을 세며 옛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공간, 산사의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음식도 먹어볼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한다. 이러할 때 사찰의 대사회적 기여는 지대하게 된다.
실제로, 사찰들은 역사적으로 그 시대가 요구하는 기능을 하였다. 고려시대의 사찰은 하나의 커뮤니티센터였다. 문화와 생활과 관련되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사찰에서 행해졌다. 조선사회로 접어들어 사찰의 이러한 활동은 위축되었다. 중국측 자료이기는 하지만, ‘고소번화도姑蘇繁華圖’를 보면 이러한 내용이 그냥 그대로 잘 표현되어 그려져 있다.
이러한 주장은 사찰의 성스러움을 잃자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의 생활과 문화활동도 담보하는 공간이 사찰에 있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사찰을 두고 ‘열린 사찰’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이다. ‘열린 사찰’로 한국 현대사찰은 새로운 공간을 가진 이미지로 재창조되어 진리를 향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와야 한다. 현대사찰은 스님들만의 범접하기 힘든 수행공간으로 인식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승속을 둘로 가르는 곳이 아니라 합일되는 곳이어야 한다. 폐쇄적이고 권위에 찬 서구 중세 수도원 같은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찰이 전통적인 의미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보존되어야 할 것이 많을수록 사찰은 모든 사람을 위한 공동체에서 멀어져 폐쇄적인 제한구역으로 되기 마련이다. 우리에게는 불평등사회, 계급사회에서 민주사회로 가고 있는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합한 사찰공간의 창출이 필요하다.
새로 조성될 <해인사 신행·문화 도량> 건립의 의의와 목적에 관하여 이상 언급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불교사찰의 새로운 전형을 보이는 사찰.
- 자연과 터에 어울리는 친자연·친환경적인 사찰.
- 누구나 와서 기도·염불·참선을 즐겁게 체험하며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는 사찰.
- 대사회적인 교육 및 교화 기능을 통한 불교의 현대적 역할을 수행하는 사찰.
- 장기적으로 기능의 변화 및 확장에 대응할 수 있는 사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