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일필휘지一筆揮之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선화禪話 선화禪畵 - 설곡 2003년 02월 252호
일필휘지一筆揮之 선의 수행 : 오직 마음
수행자가 의지해야 할 것은 경전일 수밖에 없다. 경전은 깨침을 상징하기도 하고 그 자체로서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경전은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그러나 깨달음은 ‘알고 모르는 데’ 있지 않다. 깨달음은 앎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초월의 경지다. 그것은 한 순간 스스로 깨치는 것이지 의식적으로 배워서 알아지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마조馬祖가 양좌주亮座主에게 물었다.
“듣건대, 그대는 많은 경론을 강의한다는데 사실인가?”
“변변치 못합니다.”
“무엇을 가지고 강론하는가?”
“마음으로 강론하지요.”
“그 마음이라는 것이 마치 재주 좋은 광대처럼 춤 장단이나 맞추는 놈과 같은데, 그런 것들이 어찌 경론을 강의할 수 있겠는가?”
그러자 좌주는 못마땅해진 얼굴로 말했다.
“마음이 강의를 못한다면, 허공이 한다는 말입니까?”
“그러니라. 허공이 능히 강의를 하느니라.”
그러자 좌주는 더 이상 마조를 상대하지 않고 떠나려 했다.
이 때, 마조는 떠나려는 좌주를 향해 돌연, ‘좌주여!’라고 소리쳐 불렀다.
엉겁결에 고개를 돌리는 좌주의 얼굴 앞에, 바로 그의 코끝에 마조가 문득 소리질렀다.
“이것은 무엇인고?”
순간, 멈칫하던 좌주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는 마조를 향해 절을 하고 감사 드렸다.
“이 둔한 사람아! 절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양좌주는 어찌할 줄 몰랐다.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는 돌아와 대중에게 말했다.
‘나의 평생공부가 아무도 따를 자가 없으리라 여겼더니, 오늘 마조의 한 물음에 평생공부가 기왓장 부서지듯 하였도다’라고 말하고 강의를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선가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선은 경론의 이해나 지식의 습득을 유일한 수행의 방법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오직 마음을 깨닫는 데 전념할 뿐 지식의 습득은 오히려 방해롭다고 본다.
교는 부처님의 말씀이고(敎是佛語) 선은 부처님의 마음(禪是佛心)이라고 한다. 마음이 바로 부처며(卽心是佛) 마음말고 법이 따로 없다(心外無法).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하는 것일 뿐 언어나 문자는 오히려 진실을 왜곡할 뿐이라고 여긴다.

선의 그림:경전마저 찢다
선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모두 선화일 수 없다. 또한 선사가 그렸다고 해서 다 선화는 아니다. 그림 그 자체로서 선이어야 한다. 그림이 선의 정신, 선의 사상을 담보해야 선화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선사가 그리지 않았어도 그림 그 자체에 선의 정신이 담겨 있다면 분명 선화다.
리양카이의 <육조파경도六祖破經圖>가 좋은 예다. 리양카이가 그린 <육조파경도>는 육조 혜능 선사가 소나무 아래서 경전을 찢어 버리는 그림이다.
머리 위의 소나무 잎은 날카롭게 휘두른 단 몇 번의 필치로 그렸다. 밑그림을 두고 그렸거나 혹은 어떻게 그려야겠다는 앞뒤를 생각하고 그린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이 흐르는 대로 일필휘지一筆揮之했을 뿐이다.
그림 속의 혜능도 데생이나 스케치에 의해 그려진 것이 아니다. 단지 외선만을 사용하는 백묘법白描法으로 그렸지만 인물의 동작이나 표정이 생동감 있게 드러난다. 백묘법으로 단번에 휘두른 필법이지만, 붓이 수박 겉에 물이 미끄러지듯 가볍게 흘러 지나간 것은 아니다. 도리어 마치 철사가 화면에 박힌 듯 강렬한 느낌을 준다.
선수행이 면벽面壁으로 앎을 도외시하고 묵언으로 말을 아끼듯이, 리양카이의 선화는 조작을 도외시하고 먹을 금처럼 아낀다. 선사가 말을 아끼듯 선화는 이처럼 필수筆數를 아낀다. 이러한 감필법減筆法이야말로 그림으로 나타난 선의 경지다. 그의 그림이 선화인 것은 바로 이처럼 선의 문법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화는 선의 수행법과 사상이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선사들이 수행의 경지를 서로 주고 받으며 가늠하는 것을 법거량法擧揚이라고 한다. 즉각 응답하지 못하면 방망이를 맞을지언정 조금이라도 머뭇거림이 있다면 이미 선이 아니다. 알음알이로 헤아리거나 주저함이 있으면 그것도 이미 선이 될 수 없다. 그처럼 선화의 창작도 머뭇거림이 없어야 하며 앞뒤를 헤아려 그려서는 안 된다. 일필휘지로 내어 달리는 것이 선화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다.
선화의 대가 리양카이(梁)도 처음부터 선화를 그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12세기 남송의 재상 가문에서 태어나 신동이라는 칭호를 듣고 자랐다. 그는 궁중의 화원화가畵院畵家가 되어 가장 높은 대조待詔의 지위까지 올랐다. 남송의 황제인 영종寧宗이 수많은 화원화가 중에서도 특출한 그의 재주를 찬탄하여 “그의 정묘한 작품을 보니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칭찬하며 황금 허리띠를 하사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지 않고 화원의 벽에 걸어두고 궁중을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어진 그는 그 때부터 자신을 ‘양풍자梁子(미친 양가)’라고 하며 스스로 미친 듯 세상을 비웃으며 자유인의 삶을 살았다.
그는 우연히 들른 항주의 육통사六通寺에서 선禪을 체험한다. 그는 자신이 익힌 모든 것을 초월하는 자유를 선에서 발견한다. 개념, 앎, 방법, 이해 등을 초월한 그곳에서 자신의 자유, 즉 행복한 마음을 본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이 행복한 마음을 단순함, 직접성, 간결함, 그리고 여유로써 그려낸 것이다. 그는 가장 자유로운 선의 달인을 혜능에게서 발견하고 혜능이 경전을 찢음으로 더욱 높은 자유와 깨달음의 경계를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