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렇게 좋았습니다. 되돌아보면 더더욱…….그런데 특강 시간에 우리들의 묵언을 깨고 강주 스님이 복창을 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사랑하는 사람은 헤어지니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다 지나면 바람일 뿐이다.’
가끔 듣는 말이지만 묵언을 깨고 복창까지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새삼 가슴 저리게 느껴졌습니다.
…다 지나면 바람일 뿐인데…… 누가 모르나… 젠장, 평안했던 마음이 다시 흔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기도 힘들고 미워하는 사람과도 헤어지기 힘들어 고생합니다. 솔직히 부처님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라고 가르치신 줄 아는데… 관자재보살은 오온이 모두 공한 줄 알고 일체 고액을 넘으셨는데…… 그게 어디 쉽게 되던가요. 술에 취하고, 뛰고 달리고, 시를 쓰고, 경전을 읽고, 참선하고…… 그래도 찾아드는 갈애, 그게 다 분별 망상이라 해도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기 싫은 걸…….
그게 무슨 계율이라도 되나요? 하필이면 그걸 복창하게 하시는지…… 반가부좌한 다리는 왜 또 그렇게 아픈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마라…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마라…….’
다 지나면 바람일 뿐인데 오늘도 저는 바람에 흔들립니다.
그래서인가요. 처음 하는 1080배 힘든 줄 모르고 엎어지고 엎어지고 그렇게 해댔습니다.
하심, 마음을 놓으라고 내려 놓으라고. 집착을 떠나라고. 너와 내가 따로 없는 그 세상으로 떠나가라고. 그래서 너와 내가 이 우주가 모두 평안하라고…….
수계식.
새벽 예불도 처음이고 , 묵언도 처음이고, 1080배도 처음이고 발우공양도 삼시 세때 다 먹은 것도 처음인데 수계식은 거의 충격이었습니다. 놀러나오듯 가볍게 따라나선 수련회가 이토록 가파르게 삼보에 인연될 줄 몰랐습니다.
신새벽, 예불을 드리고 이 날은 스님 대중들이 먼저 대적광전을 비워주셨습니다. 딴 날은 겹사리로 자리를 채우다가 이 날은 우리 중생들이 법당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그 자체로 자못 뿌듯했지요.
어둠이 아직 깊은 새벽, 부처님 앞에 참회하고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는데 또 마음이 어지럽습니다. 율원장 스님 따라서 계를 받아 입으로 외는데 다 맘에 걸리네요.
살생을 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사음을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
“지키겠습니다.”라고 서원을 하지만 속으로 지키면 좋지만 이걸 어떻게 지키지 걱정스러운데 내밀고 서있는 왼쪽 팔뚝에 쑥인가요? 어느 새 그런 게 얹어지더니 불이 당겨집니다. 아아 뜨거… 지키면 되잖아요. 그렇게 조금은 허탈하게 그러면서도 그 인연이 너무 좋아 행복에 겨운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불제자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누가 ‘불교신자세요?’ 물으면 ‘아 뭐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부처님 법으로 세상을 보려구요. 그게 참이더라구요.’ 뭐 그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불교신자 하면 절에 복이나 빌러 다니는 그런 거쯤으로 오해됐으니까요. 이제는 누가 물으면 그냥 ‘네’ 하고 대답할 수 있겠지요.
그러면 뭐하나요. 절문을 나서자 술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려 히히덕거리고. 사랑에 빠지고 횟집에 여전히 뻔질나게 드나들고 내 팔뚝엔 분홍빛으로 연비자국 아직 선명한데 그 습習은 쉽게 거두어지지 않네요.
다만 올해 달력에 원당암에서 준거요. 거기에 제일 먼저 동그라미 하나 쳐놨습니다. 음력 4월 15일, 하안거가 시작되는 날… 저도 스님들 따라 안거에 들어가겠다고 점찍어 두었지요. 그렇게 습習도 바꾸어 가고, 두 해 전인가요 원당암에서 혜암 스님이 화두 하나 주셨거든요. 그 화두 열심히 들고 앉아 보려구요. 공부하다 죽어라 그러셨거든요. 이 세상에 불성 아닌 게 없다던데…….
-만법은 하나로 돌아가니 이 하나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