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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 생에 후불탱화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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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자시절 - 일면 2000년 12월 226호
삶과 죽음이 교차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으나, 사는 것에도 죽는 것에도 아무런 감정이 일지 않았다
수술실에 누워 나는 생각했다
‘저승 가면 언제 죽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시간을 보니 밤 열시 오분
그뒤로는 기억나지 않는다
산소호흡기를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진 시각이 새벽 한두시쯤 되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염불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내가 잘 아는 염불 잘하시는 스님의 음성이었다
수술 후의 통증은 가히 살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에 대체 누가 죽었기에 저 스님이 오셔 염불을 할까’, 그러면서 그 순간 나는 가만히 염불을 따라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아마도 내 일생 가운데 가장 깊고 간절한 염불이었을 것이다
사흘 만에 휠체어를 타고 복도를 지나며, 그날 누가 죽어 영안실에서 염불을 했느냐고 간호사에게 물었다
‘그런 일 없었다’고 했다
더군다나 영안실에서 나는 소리가 중환자실까지 들릴 리는 없다는 것이었다
발 한자국 떼는 것이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한 고통임을 실감한 지 스무하루 만에 퇴원하라는 소릴 들었다
‘간이식수술’이라는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 나는 그렇게 세상 밖으로 살아나왔던 것이다
‘염불念佛’, 삶보다는 죽음에 가까웠을 그 시간에 불렀던 부처님의 이름…, 아마도 그것은 내 생애 열세살 적부터 시작된, 부지깽이로 부뚜막을 두드려가며 익혔던 그 염불소리는 아니었을까
일천구백오십구년도의 사라호 태풍은 사람의 목숨을 팔백 명이나 앗아갔고 내 고향 경주와 포항 시내를 물바다로 만들 만큼 위력적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사상 최대의 태풍이 아니었나 싶다
그 해 음력 팔월 십사일, 학교에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집에 돌아온 나는 우리 집에 들른 한 탁발승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이 화끈한 게 이상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너 나따라 가자’는 소리에 책보를 마루에 던져놓고 그 스님을 따라 집을 나왔다
돌아볼 것도 없이 사문의 팔자였던 것이다
조그마한 절에 잠시 있다가 큰절로 가야겠다는 마음에 간 곳이 해인사였으나, 나이가 어리다 하여 그 곳에선 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냥 물러설 수는 없는 법, 낮엔 심부름을 거들다가 저녁 때만 되면 울었다
그렇게 해인사로 입산을 했다
그러나 열서너살 소년의 부엌살이가 순조로울 리는 만무였다
스님들이 쓰고 버린 종이조각을 모아두었다가 불쏘시개를 삼아 밥을 했으나 태우기 일쑤였고 대중스님들이 계신 문지방에 걸려 정성 들여 끓인 국을 쏟기도 했다
그럴 때 부엌 공양간을 찾아와 우리 행자들을 격려해 주신 분이 있으니, 인욕보살이셨던 지월 스님이다
공양 후면 그 분은 늘 부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시곤 했다
밥을 태운 날이면 영락없이 ‘공양주보살님, 오늘은 밥이 고실고실한 게 참 맛있었어요.’ 라고 했고, 죽밥이 된 날이면 ‘밥이 촉촉해서 참 맛있었어요’ 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밥을 지으라’고 일러 주시며, 밥이 다 되기 전에 솥뚜껑을 열지 말고 귀를 대보라고 하셨다
나이가 어려 입산한 탓에 나는 여섯 해 정도 행자시절을 보냈는데, 그 시절 가운데 가장 내 마음에 남는 분이 지월 스님이셨으니, 추억 되는 것도 많다
스님은 갑자기 소낙비가 내려도 뛰는 법이 없으셨다
도량을 돌다 누군가 뛰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면 불러다가 꾸짖음 없이 다른 법문을 하여 그로 하여금 저절로 마음의 안정을 갖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도량에서 만나면 붙들고 법문을 하셨다
언젠가는 설사가 나오려 해 뛰어가는 행자를 붙들고 한 시간은 족히 법문을 하셔서 실례를 할 뻔하게 한 일화도 있다
스님의 법문은 늘 한결같았으니, ‘삼일 마음 닦는 것은 천년의 보배요, 백년 탐욕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다’ 는 말씀이셨다
언제 어디서 마주쳐도, ‘행자님, 수행 잘 되십니까’ 라고 물어오셨던 노스님의 따뜻한 음성이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지월 스님을 은사로 정하고 싶었으나, 누구라도 상좌 두기를 바라지 않으셨던 스님의 말씀이 있기도 했고, 내가 미처 행자시절을 마감도 하기 전에 그 분은 세연을 거두셨다
아마 예순 다섯, 여섯쯤 되셨을 것이다
찾아온 병고를 받아들이시며, 수술을 마다하시고 돌아와 해인사 경내를 말없이 둘러보셨던 그 분은 다음날 조용히 몸을 바꾸셨다
돌아보면 행자 때 지은 복으로 지금까지 중노릇을 해온 것 같다
아니, 지금은 복을 까먹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러한 생각이 서른둘에도 들어 해인사에서 다시 한 철을 공양주 노릇을 했다
눈썹까지 파르스름하게 밀고 재발심하며, 수행자로서 살아가야 할 신념을 확고히 했던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것은 권력이나 돈, 명예가 아니다
자신의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신념이 있으면 이 세상의 어떠한 고난이 와도 헤쳐나갈 수 있다
나는 수행자로서 지녀야 할 신념이 행자시절에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살겠다, 무엇을 하겠다’ 라는 신념을 행자 때 세우지 않고 행자시절을 적당히 보낸 사람치고 중노릇 시원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자신의 기질에 맞춰 율을 공부해 율사가 될 것인가, 선승이 될 것인가, 교학을 할 것인가, 아니면 복지사업 등 포교를 할 것인가 등의 선택이 행자시절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나는 본다
나의 은사 스님이 되신 명허 스님은 평생 참선만 하신 분이었다
해서 은사 스님은 내게 ‘참선해서 불교를 일으켜보라’고 권하셨으나, 나는 그 때 내 기질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기에 ‘제게는 맞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때 모든 스님이 공부하는 데 필요한 행정을 뒷받침해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고, 그후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 일로 매진해왔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도반들에게 늘 말한다
‘너희는 주불主佛해라
나는 후불탱화 하련다.’ 그렇다고 나는 그들이 나보다 중노릇을 잘한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동등한 입장에서 그들은 그들의 분야에서 잘하고 나는 내 분야에서 열심히 할 뿐이다
‘한쪽 모퉁이를 비추면 천지가 다 밝아진다’는 법화사상에 나오는 이 말을 나는 좋아한다
그러므로 홀로 천지를 모두 밝게 하려는 마음가짐보다는 내가 한 분야를 비추겠다는 각오로 살아왔고, 또 앞으로도 그렇게 갈 것이다
나는 ‘능력이 없다’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그만큼 자신이 하는 일에 집념을 가지고 살아왔다
또한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언제나 만족해왔다
이 자리보다 좋은 것이 어디 있겠나 싶다가도 옮겨보면 또 좋았던 세월들이었다
변변한 책 하나 없어 ‘천수경’ 한 권을 돌려가며 공책에 베껴 써 외웠던 그 행자시절로부터 얼마나 많은 세월이 흘렀던가
오늘도 나는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