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상 하는 얘기지만 올해 역시 다사다난한 세월이었고, 가치관이나 이념까지도 다시 정립해야 하는 일까지 화살을 지나 초음속 로케트쯤으로 실감되는 세월이긴 하지만,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순간을 살아간다는 감회가 무량하다.
돌이켜보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과 가치관에 대하여 목숨조차 아끼지 않는 신념으로 지켜온 위인들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는 이루어졌고, 새로운 천년에도 변함없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위대한 사람들에 의해서 새로운 역사는 이어져 나갈 것이다.
16세기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은 일찍부터 강인한 의기를 지키고 심성을 수양하는 공부에 힘썼다.
나이 18세 때에는 한 그릇의 물을 두 손으로 받쳐들고 밤새도록 서 있으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으며 수련하였다고 하니, 굳은 의지를 갈고 닦던 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선생은 항상 허리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을 차고 다니며 한순간일지라도 방심하지 않으며 수양에 매진하였다고 한다.
그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의 혼란한 시대를 살면서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과거에도 응시하지 않았으며, 처사處士로 평생을 초야에 묻혀 살리라 결심하고 의롭지 못한 세력이 지배하는 중앙에는 나아가지 않겠노라는 단호한 신념을 견지하였다.
남명의 학덕이 중앙정치무대에까지 알려지고 참봉이라는 벼슬을 하사하였으나 응하지 않았으며, 심지어 벼슬길에 있는 사람과는 친분조차도 갖지 않으면서 산림에 은거하며 학문하는 고고한 선비로서 자신의 지조를 굽히지 않았다.
선조 초년 사림정치시대士林政治時代가 열리고 임금이 남명을 간곡히 불렀으나, 그는 상소를 통해 왕도정치의 이상을 제시해 올릴 뿐 끝내 나아가지 않고 후학들을 가르치며 만년까지 강학講學과 저술에만 힘썼다.
또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는 진골 출신으로 재상자리를 권유받았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출가를 단행하였다.
왕은 부르기를 수차례 한 끝에 급기야는 명령을 듣지 않으면 처형하라고까지 명을 내렸다.
그러나 자장 스님은 ‘차라리 계율을 지키며 단 하루를 살다가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년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영일일지계이사불원백년파계이생吾寧一日持戒而死不願百年破戒而生’고 선언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이처럼 청정한 계율정신과 신념으로 수행한 자장 스님은 우리나라 최초로 대승적 율학律學을 정립하였으며 나아가 황룡사 9층탑을 건립함으로써 이웃나라들이 신라에 항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삼국통일의 사상적 기반을 확립하였다.
부처님께서도 법을 위해 신명을 아끼지 않는 위법망구 爲法亡軀의 신념으로 수행하셨다.
부처님께서 인행시因行時에 히말라야 산속에서 홀로 수행하고 계실 때였다.
수행자를 시험하기 위하여 제석천은 나찰의 몸으로 변화하여 게송을 노래하였다.
제행무상 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세상살이 모든 일은 항상치 못하고 덧없으니,이것이 바로 나고 죽는 법이니라
수행자는 이 게송을 듣고는 곧 커다란 환희심이 솟아났다.
그리하여 나머지 게송을 마저 듣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무서운 얼굴을 한 험상궂은 나찰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나찰에게 다가가 물었다.
“지금 그 게송을 노래하신 분이 바로 당신입니까?” 나찰이 대답하였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알 수 없소이다.
다만 나는 지금 너무도 배가 고파 아마도 헛소리를 한 것 같소이다.” “만약 당신께서 나머지 뒷부분을 말씀해 주신다면 저는 평생을 두고 당신의 제자가 되어 당신을 따르고 모시겠습니다.
설사 산이나 바다같이 많은 재물을 보시한다고 하더라도 그 공덕이 다하면 이내 사라지고 말 것이지만, 법의 보시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은 수행한다고 하면서도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 하고, 어찌 남의 사정은 모른 체 할 수 있는가
나는 지금 배가 고파 거의 죽을 지경이오이다.” 수행자가 나찰에게 다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무엇을 먹습니까?” “나는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삽니다.
며칠 전부터 그것을 구하지 못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소이다.” “만약 당신이 게송의 뒷부분을 제게 말씀해 주신다면 제 몸을 당신께 보시하겠습니다.
저의 이 덧없는 몸을 버리고 영원한 몸을 얻고자 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나찰은 게송의 뒷부분을 들려 주었다.
생멸멸이 生滅滅已 적멸위락 寂滅爲樂 만약 나고 죽는 모든 갈등을 없애 버린다면 적멸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으리라
수행자는 게송을 마저 듣고는 더욱더 환희심이 솟아 올랐다.
그리하여 먼 후세에까지 게송을 전하기 위하여 구절을 바위에 깊이 새기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높은 절벽에 올라 뛰어 내렸다.
그 순간 나찰은 본래의 모습인 제석천으로 돌아와 떨어지는 수행자를 받아 안아 내렸고, 이를 본 여러 천신들은 수행자에게 예배하며 지극한 구도의 신념과 서원을 찬탄하였다.
나라의 정치·경제·문화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민본정치를 펼치고자 하는 신념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남명 선생이나 계율을 지키고 수행인으로 살기 위하여 국왕의 간절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으셨던 자장 스님이나 모든 중생들을 이롭게 하고자 한 구절의 게송과 목숨을 바꾸신 설산동자의 굳은 의지와 같은 신념은 아닐지라도,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과 함께 이 땅을 정토로 만들겠다는 신념을 실천하는 첫걸음은 기본적인 계율· 기초적인 도덕과 질서부터 준수하는 마음가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