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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사자도 희롱하는 좌복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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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우소 - 관암 2000년 12월 226호
집에서는 수행자들의 좌선의 연륜을 가늠하는 좌복의 때를 무시하지 못한다. 내가 출가하여 선방 좌복에 떼 묻히든 첫해 비슬산 도성암에 방부를 드리고 하안거 결제를 하던 때였다. 열분 남짓한 대중스님들과 정진하기를 반 철쯤 지났을까. “오늘 사시 공양은 대중공양이 들어와 상공양床供養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라는 원주 스님의 한마디에 오랜만에 들어온 대중공양이라 모두가 반가운 기색이 만연해 보였다. 상공양을 하게 되면 아무래도 바루공양 할 때보다는 과식을 하게 되는데 단순하기도 한 선객禪客 스님들은 양을 조절하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공양이 끝나고 소화시키는 휴식 시간도 잠깐 동안 지나가고 오후 정진시간이 되어 큰방에 정진자세로 앉았는데 얼마간 성성적적惺惺寂寂한 선 삼매의 시간이 흐르고 한 두 스님이 졸음에 끄덕일 때쯤 어디선가 들려오는 멜로디가 가느다랗게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다 감상하기도 전에 또다시 들려오는 풍악소리 뽕 ~
이런 일진에 공교롭게도 며칠 전 정진 분위기가 문제가 되어 구참스님 몇 분과 다각을 맡은 나는 큰스님께 불리어 갔다. 큰스님의 진지하고 엄숙한 경책의 말이 내려지고 있는데 구참스님 중 누군가가 뽕~ 하는 길쭉한 리듬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 엄숙하게 경책을 듣는 시간에 그런 생리현상쯤 조절 못하는 구참스님을 원망하며 몸을 약간 움직였는데, 구참스님의 누군가가 실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참스님들은 태산처럼 꿈쩍도 않고 얼굴엔 아무런 변화도 없이 나에게 “이 놈! 철딱사니 없이 이런 시간에 실례를 범하다니” 하는 눈길을 주었다. 그 눈길에 나는 죄 지은 양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마음은 안절부절 못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자 큰스님도 내가 범인인 양 책망을 주는 눈치였다. 영락없이 내가 실례를 범한 것으로 되었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꿈쩍 않고 당황하지 않는 구참스님들의 이런 기세를 나는 또 한번 경험했는데, 몇 해전 내가 어느 총림 방장스님 옆자리에 앉아 구참수좌 몇 분과 나의 도반스님이 최근에 열반하신 원로스님을 애도하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어디선가 “와이래 좋노~ 와이래 좋노~” 하는 경음악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핸드폰 소리였다. 일순간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의 도반스님은 당황하는데 구참스님들은 바위처럼 꿈쩍 않고 당황하는 기색 하나 없이 나의 도반스님에게 회심의 눈길을 주었다. 그러자 큰스님 또한 나의 도반스님에게 얼굴을 찡그리며 핀잔을 주는 눈치였다. 이야기가 파한 후 나는 도반스님에게 분위기 파악도 못하고 그래서 되겠느냐며 핸드폰을 진동으로 안한 것을 나무랐는데 알고 보니 그 또한 옛날에 내가 당한 꼴 그대로였다. 얼마 후 구참스님들이 떠나면서 우리에게 남긴 한마디 “수좌는 바위 같은 묵직함이 중요한 겨!”.
좌복 때의 연륜은 저승사자도 희롱한다는 옛 선사들의 이야기가 새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런 일을 요즘 와서 생각해보니 구참스님들이 아랫스님에게 책임을 전가시키려 의도적으로 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바깥 경계에 태산처럼 묵묵히 앉아 있지 못하고 분별하고 당황하는 마음이 빚어내는 죄과임을 알게 되었다. 분별하고 당황하면 없는 죄도 스스로 만들어 뒤집어쓰는 마음의 이치를 구참스님들은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