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가 서 있는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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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0년 12월 226호
지금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자리에 서 있는가?
내가 입고 있는 옷에 부끄러움은 없는가?
내 마음은 어느 곳을 향해 흐르고 있는가?
이른 아침 절문을 나서서 방송국으로 향하면서 자신에게 묻는 말이다. 늘 자신에게 묻는 말이지만 오늘 아침은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내면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늘 부족한 대답이다. 서 있는 자리에, 그리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보내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기세간과 유정세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자기에게 꼭 어울리는 자리가 있다.
삭발염의 하고 수행하는 사람이 깃들어야 할 곳과 깃들지 말아야 할 곳,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분명하다. 간소하고 청빈한 생활을 요구하는 출세간에 수행자들의 삶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조금만 어긋나도 정진하는 생활의 톱니바퀴는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든 일이다. 물론 세간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게다. 삶의 순리대로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모습, 능력에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의 일손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래 전의 일이지만 운문사 학인시절 명성 강주 스님께서 늘 제자들에게 낮은 소리로 꼭 그렇게 실천하기를 바라면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제자들이 강당을 졸업하고 제방으로 나가서도 수행자의 생활에서 전도되지 않고 반듯하게 어울리는 자리에 설 줄 아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당신의 바람을 담고 하신 말씀이다. 어느날 회성당 청소를 하는데, 학인들은 보통 청소를 하면서 별 생각없이 의자를 책상 위에 의자 다리가 위로 향하도록 엎어 놓고 청소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 때마침 강주 스님께서 회성당 앞을 지나시다가 엎어져 있는 의자를 보고 들어오셔서 하시는 말씀 “여러분은 이렇게 거꾸로 서 있으라면 좋겠어요? 힘들겠죠? 여러분이 힘들면 이 의자도 힘든거예요” 하시면서 의자 하나하나 바로 올려 놓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가는 일들 중에 많은 것들이 이렇게 전도 되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후로 항상 물건을 둘 때 거꾸로 놓는 일이 없었고 제자리에 반듯하게 놓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강주 스님께서는 “물물각득기소物物各得其所” 라는 말씀을 강조하셨는데, 물건이나 사람이나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어긋남이 없고 가장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말씀을 하셨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강주 스님의 말씀으로 선지식을 삼고 수행자의 본분에서 전도되지 않고 살아가려고 깎은 머리를 자주 만져 본다. 잘 어울리는 곳에 서 있는 소나무에서 스님의 말씀을 되새기는 이런 아침이 어느 날보다 새롭고 마음이 맑아진다. 누구나 자기의 본분을 잊지 않고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연과 사람이 조화롭고 세간과 출세간이 조화롭고 향기롭기를 바라며 사는 것은 우리 모두의 꿈일 것이다. 모두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서 우선 자기를 조화롭게 만들어가는 질서가 필요하다. 좀더 간소해지고 청빈해지는 수행자의 삶과 자기라는 생각에서 우리라는 생각으로 조금만 더 마음을 크게 열고, 자기 그릇에 넘치는 것을 원하면서 상대적으로 자기를 왜소하고 가난하게 만들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당당함과 충만감은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그리고 자리해야 할 곳에 자리하는 아름다움도 함께이지 않을까?비바람을 맞고 서 있지만 자기에게 어울리는 곳에서 의연하게 서 있는 뜰 앞의 소나무처럼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얼마나 나에게 잘 어울리는가를 다시 한 번 반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