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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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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의 해인삼매 - 원성 2000년 12월 226호
해인사의 대적광전은 맑고 청정한 기운이 언제나 솟아나는 곳이지요.
이른 새벽 세 시에 새벽예불을 올리러 졸리운 눈을 부비며 법당문을 들어서기만 해도 번쩍 졸음이 사라지고 그 웅장한 부처님의 풍모에 마음은 경건해지곤 했지요.
더군다나 법단에 올려진 아름다운 꽃들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향기, 그 싱그러움에 신심은 저절로 우러나오지요.
결제 때 보름마다 이루어지는 대법회를 위하여
법당 소임자들은 수반과 꽃병을 정리하고 보름 동안 법당을 장엄하였던 꽃들을 버리는데 그 속에는 아직 봉오리도 틔우지 않은 꽃송이들도 많이 있더라구요.
고심을 하다가 행동으로 옮긴 것은 다름이 아닌 꽃을 다시 주워다가 꽃병에 꽂아 놓는 일이었습니다.
“스님 여기요, 저도 주워주세요. 스님 저는 이 덤불 속에 가리워져 있어요.”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꽃들의 볼멘 애원의 목소리.
들려오는 곳에는 분명 내가 발견하지 못한 꽃봉오리들이 쓰러져 누워 있었습니다.
선택 받아 맑은 물을 흠뻑 들이마신 꽃송이들은 기쁘게 합창을 하며 빛깔과 향기로움을 다시 발하였지요.
꽃들은 다시 화병에 담겨져 강사 스님들의 방이나 간병실, 종무소, 서점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배달되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 소임자였던 나는 이곳 도서관이 남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꽃을 꽂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임을 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날도 이른 아침 꽃을 주워다가 화병에 모두 정성스럽게 꽃을 담았지만, 시간을 앞당긴 오전 강의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배달을 오후로 미루고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도서관에 다시 돌아왔을 땐 믿기지 않는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내 책상 위에는 모가지가 잘린 여린 꽃 몽우리들이 수북히 쌓여 있었습니다.
“원성, 앞으로는 도서관에서 이런 쓸데없는 짓 하지 말아! 이딴짓 계속 할려면 속퇴해서 화원에나 취직해.” 경반 도서관 소임자 L 스님은 고함을 지르고는나를 떠밀치고 도서관을 나가버렸습니다.
시간이 멎었습니다. 시야는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내 몸은 부들부들 떨리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내 영혼은 이미 내 육신을 떠나간듯…눈물이… 눈물이… 눈앞을 가려 꽃을 주울 수 없습니다.
그렇게…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꽃들이랑 함께 울었습니다.
찢어지는 내 가슴이, 찢겨진 꽃잎만큼이나 아픔이 더하지는 않겠지만…“미안해, 미안해 얘들아 내가 너희들을 모아오지 않았더라면 삶의 희망을 주었다가 다시 잔인하게 빼앗아버리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해… 미안해….”흐느끼는 그 순간에 속죄를 구하는 그 순간에도 꽃들은 내게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찢겨진 꽃잎들이 내게 해준 마지막 말… “울지마.”
밤은 깊어지고… 달빛은 꽃잎들을 이끌고 저어 머언 우주 속으로 별들과 함께 흩어졌습니다.

내 안에 가장 아름다운 슬픔을 안겨주고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