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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 라마 왜 초청되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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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 원인 2000년 12월 226호
초청되어야 할 당위성

무릇 한 국가가 움직임에 있어 본질적으로 개개인의 생각이 움직임과 다를 바 없다. 개인의 생각이 자신에게로 향하면 개인적이 되고 국가로 향하면 국가적이 된다고 볼 때 먼저 그 사고력의 정직성과 철학성, 도덕성에 따라 향하는 일에 결과는 확연히 구별된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입각해서 현 정부의 정책 결정이나 행동방향을 예측할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행정을 가지고는 미래에 대한 투자나 국민의 생활 보장이 될 수 없으므로 자연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선진 행정이란 국민이 예측 가능한 행정성이 발휘될 때라고 할 수 있는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 행정, 정치, 경제 어느 것 하나 정상적이지 못한 것을 매우 슬프게 생각한다. 가히 총체적 위기란 말이 이와 같은 상황을 두고 한 말은 아닐까.
정치인의 지나친 일회성적인 인기위주나 개인의 영달을 위한 국력 탕진이 이 나라 제2의 경제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은 좀 지나친 표현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외교(달라이 라마 초청권)의 혼란스러움은 그저 망연할 뿐이다. 과연 정부의 거듭되는 번복으로 진실성을 상실한 가운데 이 사회를 어느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책임 지지 않는 사회로써 안정과 도약을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더이상 불교계를 기만하지 말고 소신 있는 행동으로 일관해야 한다. 그것은 처음 약속한 대로 11월 중 달라이 라마 방한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정부가 결정하여 국민에게 발표해 놓고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여 말을 바꾸면 국민의 압력은 무엇으로 대처할 것인가. 그렇다면 결국 무능하고 소신 없는 정부로서 그런 정부는 국가를 경영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국가의 자주권 국민의 자주권

국가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거기 주권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만일 주권이 없다면 일시적으로 이익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문화와 삶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타인이나 타국에 종속되는 불행이 오고 만다.
정부에서는 몇년 전에도 달라이 라마 초청문제가 나오면 나라에 덕이 안 된다(중국과의 외교적 불이익을 염려하여 거부했다)라고 했다. 이것은 스스로 주권국가임을 포기하는 수치스럽고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티벳 침공으로 그것을 문제 삼는 세계 여론에 내정간섭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달라이 라마 한국방문을 중국이 간섭하는 것은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이 되지 않는가.
왜 우리는 스스로 자주권을 가지지 않고 불의에 편들고 세계인의 조롱을 받아야 하는가. 세계의 양심은 모두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과 인내에 깊은 찬사를 보내는데 유독 우리는 비굴한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인구 300만으로 10억 인구와 대처하고 있는 티벳은 그 어떤 횡포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문화와 주권을 가지고 세계의 양심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기에 비해 우리는 가지고 있는 주권마저도 갈팡질팡하고 있는 모습을 비록 압력을 가하는 중국마저도 속으로는 나약하고 한심한 놈들이라고 비웃을 것이 아닌가. 만일 그런 지경까지 간다면 그것은 국가의 더없는 모독이요, 망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언제인가 중국과 굴욕적인 수교로 인하여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은 적이 있지 않았는가. 조급하고 눈치 보는 외교를 국민은 원하지 않는다. 좀더 주권 국가로서 당당해야 국민의 신뢰를 받는다.
북한 때문이라면 북한이 우리의 눈치를 보도록 해야지 왜 중국과 북한 관계를 생각하는가. 이 모든 잘못된 자세로 인하여 스스로 세계인의 눈에 중국의 속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결과만 되는 것이다.
만인이 다 왕래하는 민주국가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와 같은 행정은 후진국에서도 보기 드문 현상이다.
모든 일에는 항상 손익이 따르게 마련이라면 국가는 그 균형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고 편파성을 띈 일방적 행동은 나라의 지위를 떨어뜨리고 국익에 큰 손실을 가져온다.
성인이 남의 나라에 방문을 하면 나라에 도움이 되므로 오히려 국가에서 초청하여 국민의 정신을 계도하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신적 이익을 간과한 채 ‘물질적 이익’으로만 문제를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견해에 불교내에서도 묵시적으로 동조하는 우리들의 참회를 촉구하는 바이다.

티벳 독립을 기원하며

우리는 아직도 지난 36년간 받은 식민시대의 고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티벳은 40년을 넘게 일제 때 우리가 받은 고통보다도 더 잔혹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같은 입장을 겪어본 국가로써 동정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어주는 비양심을 드러내고 있다.
중공의 티벳 침공으로 인구의 5분의 1인 120만 명이 처참하게 살상을 당했고, 독립운동하던 승려와 신도들에게는 사지를 네 마리 말에 묶어 생살을 찢어내는 고통을 주었고 많은 사람에게 이를 보게 하여 극도의 공포심을 조성했다. 최근에는 강제불임수술도 인구를 줄이려고 하였으며 지금은 강제 이주정책으로 본토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도록 강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랜 시간 남의 나라를 강점하고 비인간적인 가혹한 짓을 한 나라는 세계 역사상 없었지만 티벳은 참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도 굴복도 보복도 하지 않고 비폭력과 인욕행으로 굳건히 자신들의 주권을 지키고 있다.
그것은 ‘원망으로써 원망은 해결되지 않는다. 오직 참음으로써 소멸된다(보복은 또다른 불행이 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경에 이르기를 “어진 사람을 가해하면 열 배의 고통이 다가온다.”라고 하였다. 이 세상 모든 법은 인과법칙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때 중국은 중국 자신을 위해서 티벳에서 철수해야 한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도와주는 것이 상식이요 도리인데, 도리어 남을 불행하게 만들고 거기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곳에 불행이 먼저 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종교적이며 신성한 나라이며 선량한 민족으로 이상적 불국토인 티벳을 어떤 이유로도 강점할 수 없으며 정의와 도덕을 등지고 힘에 의해 지배되는 곳에 양심과 평화는 멀어지고 불행한 세상이 될 뿐이다.
중국이 티벳에서 물러서지 않고는 어떤 양심도 평화도 말할 수 없고, 오직 극도의 이기적 깡패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불의한 국가를 지지하는 어떤 나라도 정의로운 나라라고 말할 수 없다. 왜 한국정부는 정의 편에 서지 못하고 스스로 위신을 깎는 잘못된 행동을 하는가.
정의와 도덕이 선행되지 않고는 개인이나 국가의 장래가 밝을 수 없고 진정한 발전을 기약할 수 없다. 때문에 국가를 경영하는 사람은 먼저 우주적 인과법칙을 살필줄 알아야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산승은 어리석은 수행자로서 하루 속히 티벳이 독립되어 세계평화가 이뤄지길 기원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