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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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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생각하며 - 수경 2000년 12월 226호
참으로 먼 길을 걸어 한 달 만에 지리산 실상사에 돌아왔습니다.
떠날 때는 완연한 가을이었는데, 어느새 단풍이 지고 북풍이 불어와 내 몸도 심한 몸살감기에 휩싸여 잎 다 떨군 나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겨울은 춥거나 외롭지 않습니다. 몸은 비록 아프지만 내 몸 속에는 낙동강 1천 3백리가 함께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몸살기운을 동반한 낙동강이지만 머지않아 고로쇠 수액처럼 달고도 맑은 물이 될 낙동강을 생각하면 이번 겨울의 북풍한설마저 오히려 내 인생의 새로운 스승이 됩니다.
낙동강을 살리기는커녕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는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나선 것도 당연히 불교계이고, 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원천적인 힘도 바로 불교계에 있다는 것을 확신한 것도 사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아주 단순합니다. 불교는 바로 친환경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만물일여의 마음으로 보면 지리산은 지리산에만 있지 않고, 낙동강은 낙동강에만 있지 않고, 새만금은 새만금에만 있지 않습니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우리와 자연이 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행동으로 실천하고 또 실천할 수 있는 모임이 지구상에 있다면 그 우선순위가 바로 불교계라는 것을 도저히 간과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온몸으로 이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낙동강 1천 3백리 도보순례단’의 단장이 되어 만행의 길을 떠났던 것입니다.
전국의 1백 89개 시민·환경·종교단체가 모여 ‘지리산 살리기 국민행동’을 결성하고, 그 첫 번째 사업으로 낙동강 도보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스님, 시인, 화가, 산악인, 환경운동가 등으로 구성된 16명의 순례단은 빗속을 걸으며, 짙은 안개를 헤치며 강을 따라 걷고 또 걸었습니다. 한 번도 강변을 떠나지 않고 모두가 한 몸이 되어 천막과 텐트를 치고 밥을 해먹고, 잠을 잤습니다.
낙동강의 물이 되어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못에서 시작해 29일 동안 봉화, 안동, 문경, 상주, 구미, 왜관, 창녕, 김해를 지나 부산의 을숙도까지 고행의 길, 수행의 길을 걸었습니다. 태백의 물이 적화현상으로 핏빛이면 내 얼굴도 규폐증으로 죽어간 광부의 표정이 되고, 안동댐에 막혀 물이 썩으면 무릎관절이 아파오고 발바닥에도 물집이 잡혀 진물이 나왔으며, 구미,대구, 부산의 폐수들이 강물을 덮으면 목구멍에서 기침 가래가 터져 나왔습니다.
강변에서 농부를 만나면 그들과 얘기를 나누었고, 안동, 대구, 부산 등의 시민과 환경운동가들과 토론회와 결의대회를 가지며 3천명 이상의 낙동강 유역민들을 만났습니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낙동강을 살리고 지리산을 살리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해답은 너무나 명쾌했습니다. 바로 遠멎물을 건너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자연의 순리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지리산엔 댐을 만들어 물이 산을 넘게 하겠다는 계획이 정부에 의해 추진되고 있습니다.
낙동강은 90년대 이후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어 부산과 경남 주민들의 식수가 위협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 대구지역의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위천공단 건립이 발표되면서 악화된 대구와 부산지역간의 감정 대립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낙동강을 살리기보다는 지리산 권역에 4개의 댐을 만들어 식수를 공급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낙동강 수계는 수량은 풍부한데 수질이 떨어져 식수 사용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류를 막아 중류는 다 죽이고, 하류의 오염된 물에 상류의 맑은 물을 섞어 공급하겠다는 발상으로 지리산을 치명적으로 파괴할 댐건설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리산에 댐이 들어서는 것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민족의 성산 지리산의 생태계는 회복불능의 상태로 파괴될 것입니다. 지리산은 국립공원 1호로 우리나라 생물종의 30%가 서식하는 동·식물의 보고입니다. 국립공원 접경지에 댐이 들어설 경우 새로운 도로 개설 및 각종 시설, 건조물 설치로 인해 울창한 숲과 수려한 경관이 사라질 것이며, 지형변화와 서리, 안개일수의 증가, 기온의 저하, 일조량 감소 등의 기후변화로 생태계에 심각한 교란을 가져올 것입니다.
둘째, 지역생활 환경의 파괴로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 사라질 것입니다. 다습, 저온, 일조량 감소와 수질오염, 냉해 등 농사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며, 이런 기후변화로 인해 댐주변 주민들의 호흡기나 관절 관련 질병이 발생할 것입니다. 또한 조상 때부터 살아온 터를 잃고 객지로 이주할 경우 장기간 형성된 공동체적 정서의 파괴와 정체성 상실, 새로운 환경의 부적응으로 인해 삶이 황폐해질 것입니다.
셋째,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천연박물관의 파괴로 문화·종교환경이 파괴될 것입니다.
지리산은 우리 민족의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입니다. 국보 7점, 보물 41점, 지방문화재 52점 등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해 있고 전통사찰이 가장 많은 곳입니다. 댐이 만들어지면 고습으로 인한 목재, 철 등 문화재의 부식이 3배나 빨리 진행되고, 스님들의 수행환경이 파괴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낙동강 도보순례를 하면서 이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낙동강 살리기와 지리산댐 백지화 운동은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지리산과 낙동강 유역의 사람들이 서로의 공동체적 공생관계임을 명확히 인식해 상류와 하류, 도시와 농촌이 서로 협력하여 물을 중심으로 한 커다란 공동체를 이루려는 새로운 사회운동을 모색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낙동강 문제는 낙동강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리산 문제는 지리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낙동강 1천 3백리 길을 걸으며 철저한 자기 성찰 없이는 낙동강도 살릴 수 없고, 지리산도 살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자연과 인간의 대립, 갈등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만물동근의 한 생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온 우리 불교계가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나선다는 것은 외향적 환경운동으로서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초발심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댓돌 위에 너의 신발부터 바로 놓으라’는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안거 수행에 들어간 자연과 인간 모두의 마음에 고로쇠 수액이 차오를 그날을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