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응담 노스님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이달의 이야기 - 주경 2000년 12월 226호
며칠 전 수덕사의 응담應潭 노스님이 열반하셨다. 세상살이 87년에 절생활 70년, 십여 년을 노스님을 가까이에서 알고 살아왔지만 분명하지 않았던 당신의 연세와 법랍이 스님의 입적과 더불어 비로소 분명해졌다. 응담 스님은 당신 스스로도 인정하고 사셨지만 스님을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님이 ‘괴각乖角’임을 잘 안다. ‘소의 구부러진 뿔’을 뜻하는 괴각이라는 말은 성격이 괴팍하고 유별나서 상식의 틀을 깨고 일상적인 도리의 기준을 벗어나 사는 스님을 칭하는 절에서만 사용하는 말이다. 괴각 스님은 대중처소에서 긍정적이거나 본받을 만한 기준이 되지는 않지만 또 다른 뜻으로 자신의 수행과 정진을 철저히 챙기며 세상살이의 도리와 이해에 무심하게 사는 출가수행자의 한 면모를 상징하기도 한다.
“선악과호불善惡過虎佛”이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근대 한국불교의 중흥조 경허鏡虛 스님을 표현한 제자 만공滿空 스님의 말씀이다. ‘좋을 때는 부처보다 더하고 나쁠 때는 호랑이보다 더하다.’는 뜻으로 제자의 눈에 비친 스승의 면모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경허, 만공 두 선사의 삶과 정신이 도도히 전해지는 수덕사의 한줄기 맥을 이어오신 응담 노스님께도 이 “선악과호불”의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린다는 생각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님을 문득 확신하게 된다. 당신의 제자로 은혜를 입거나 법을 받지 않았더라도 응담 스님은 수덕사 많은 스님들에게 때로 부처님의 모습이었고 때로 호랑이의 모습을 나투시곤 했었다. 스님이 쫓아버린 행자가 100명이 넘고 욕을 먹거나 호통을 듣고 발길을 돌린 마음 상한 신도들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수덕사 스님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이다.
실로 만나기 어렵다는 출가의 인연을 구해 절을 찾은 사람들, ‘행자’라는 이름으로 세상에서 하지 않았던 궂은 일과 힘든 절 일을 해가며 아침저녁으로 스님이 되기 위한 공부에 매진하는 ‘초발심’의 사람들은 세상에서나 산사山寺에서나 다같이 귀한 사람들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에 비견되는 초발심의 마음으로 세상의 애착과 욕망을 등지고 구도의 길에 접어든 행자의 위치와 그 마음은 많은 스님들이 다시 맛보고 싶어하는 가장 간절한 것 중의 하나일 만큼 제일 신선하고 생생한 삶의 순간순간인 것이다. 말할 수 없는 큰 포기와 결심을 안고 입산한 귀하고 귀한 행자를 응담 노스님이 쫓아낸 이유는 뭘까? 단적으로 말하자면 응담 노스님은 한 명의 행자도 쫓아낸 바가 없다. 때로 몽둥이와 주먹을 휘두르며 겁을 주기도 하고 험하고 거친 말로 마음을 상하게도 하고 심할 때는 가라고 보따리를 싸서 집어던지기도 하였지만 노스님의 진정한 뜻은 정말로 그 사람을 보내는 데 있지 아니 하였다. 스님의 다비식날 모였던 도반들의 한결같은 아쉬움은 이제 수덕사에서 공부시켜줄 큰 어른이 가셨으니 누가 스님의 역할을 대신할까 하는 것이었으니 때로 어려움과 피곤함을 견뎌야 했으나 노스님의 참뜻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출가’의 마음으로 견딜 수 없는 일이라면 수행에 진보가 없고 정진의 마음이 쇠약해지는 것일 뿐 주변의 잡사에서 오는 어려움이 아님을 당신은 몸소 가르치셨던 것이다.
절을 찾아온 사람이 사찰의 질서를 거스르고 법당에 들어온 사람이 법당의 법도에 어두워 대중의 심기를 어지럽힐 때 스님의 지적과 호령은 주저함이 없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말보다 거칠고 높은 음성으로 간혹 시비에 휘말리기도 하였지만 잘못된 일을 보고는 결코 외면함이 없으셨다. 스님의 사람에 대한 자상함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보다는 잘못됨을 지적하여 바로 고치게 하는데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고집스럽고 거칠게 표출되는 당신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반박하거나 대드는 사람이 있으면 스님은 두말없이 돌아서 당신의 방으로 들어가시곤 했다. 시비를 일으키는 게 목적이 아닌 까닭이다.
행자시절 공양주를 살 때 하루는 밥이 질다 하시고 하루는 밥이 되다고 하시기에 기회를 잡아 은근한 친근감으로 다가가 “스님은 어떤 밥이 좋으십니까?”하고 물었더니 눈도 마주치지 않으시면서 “나는 질지도 되지도 않은 적당한 밥이 좋아.” 하는 퉁명한 대답을 주셨다. 얕은 꾀로 당신의 비유를 맞춰보려는 속셈을 이미 간파하시고 계셨던 것이다.
생전에 수덕사 대웅전의 ‘지킴이’로 사시던 스님은 법당을 오르는 계단에서의 낙상으로 수덕사와의 마지막 인연을 매듭지으실 때까지 절을 찾는 사람에게 하루도 당신의 방법을 통한 가르침을 아끼지 않으셨다.
부드러운 말과 법다운 행동 꽉찬 수행의 힘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참으로 불교적인 스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요즈음의 우리 불교계에는 점점 괴각스님들이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생각되어 아쉬움이 들곤 한다. 대중살이에 삐죽이 삐져나와 걸리적거리기도 하고 다른 스님을 불편하게 할지라도 자신의 기준과 신념을 지니고 살아가는 세련되지 못한 괴각의 모습이야말로 스님들 삶의 한 단면이기 때문이다.
괴각입네 해도 괴이한 말과 행동만 할 뿐 출가인의 안목과 신념이 없는 진정한 괴각이 아니며 대다수의 납자는 시비를 피한 무관심에 빠져서 자신의 무사안온만을 구하여 다른 이를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수행이 부족하네 방편력이 없네 인연이 아니네 등의 변명을 늘어놓으며 중생의 곤란과 어려움을 외면하고 잘못된 길을 가도 ‘남의 일’로 치부해 버리는 ‘무심함’은 ‘무책임’에 다름 아니다.
거의 한 세기를 사시면서도 다듬지 못한 당신의 말투와 큰 목소리 그리고 급하고 거친 행동은 물에 빠질 듯 위기에 처한 중생에 대한 급한 애정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가까이 온천이 있음에도 새벽마다 한 양동이의 찬물로 냉수욕을 하시고, 아침공양시간 전에 수십년은 되었을 구식 라디오 소리가 옆방으로 잡음과 함께 들리도록 틀어 뉴스를 들으시며 은근히 게으름에 빠지고 싶은 젊은 스님의 귓전을 두드리던 노장의 일상, 이제는 당신이 가신 빈방의 쓸쓸함이 도량을 찾는 발길에 허허로움으로 감돈다. 하지만 잠시의 세월이 지나면 새로운 괴각 새로운 호랑이가 또 한세월을 통해 도량을 지켜갈 것을 믿는다.
불교가 긴 세월을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조건을 초월한 중생에 대한 쉼없는 애정과 깊은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불교의 존립에 대한 관심을 떠나서 중생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그리고 결코 외면하지 않는 큰 자비심이 불교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임을 알면 괴각으로 사신 노스님의 진면목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