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핸드폰 공해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죽비의 소리 - 도영 2000년 12월 226호
새벽 도량석으로부터 열린 산중의 아침 바람이 싸 - 아 하다.
아침 공양을 마친 후 푸른 산죽이 있는 숲으로 포행을 나선다. 산새들의 낮은 날개 짓에 앙상한 나뭇 가지 살짝 흔들리고 찬 햇살에 십이월의 따스함을 느낀다. 일요일도 아닌데 아침 일찍 산중을 찾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보인다. 고즈넉한 도량에 학인 스님들의 ‘경전’ 읽는소리가 예전의 내 학인시절을 생각나게 하는 아침인 것 같아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오랜만에 호젓한 시간 속에서 즐거워하는 것도 잠시,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명확히 들려온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나는 쪽을 보니 관광객의 휴대폰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전화가 잘 안 되는지 이쪽저쪽으로 오가며 통화하는 모습에 약간은 언짢았지만 조용히 그 자리를 떠나왔다.
밖에선 여전히 웅성대는 관광객들과 핸드폰 울리는 소리. 고성으로 오가는 통화내용으로 절은 조용함을 잃어 버렸다. 언젠가, 도심지 어느 포교원에 들렀을 때 법당 입구에 “핸드폰을 꺼주세요” 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글귀를 보면서 어쩌다가 도시로 나갈 때면 거리나 밀폐된 공간 어디서나 할 것 없이 듣게 되는 소리공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젠 깊은 산중, 절 집에서조차 소리공해를 피해갈 수 없는 세월이 되어 버렸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려대는 핸드폰 소리가 문명文明의 이기利器이기에 앞서 어느새 공해라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의 이기利己일까.
필요에 의해서 사용을 하지만 상대에게 피해가 간다면 우린 좀더 남을 배려하는 이타심利他心을 길러야 되지 않을까. 보통 한 가정에 두 대 이상의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게 요즈음의 실태라고 한다.
이젠 없어서는 안 될 필요한 물건이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어디에서든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핸드폰 소리에 내 것인지 남의 것인지를 몰라하는 우스꽝스런 모습들에도 익숙해져 있는 게 웃지 못할 세상이다.
한해가 저물어 가고 있는 십이월, 어느 절이든 기도와 염불 참선수행으로 조용한 도량에 들어설 때, 잠깐이나마 사색하는 마음으로 찾으면 어떨까. 봄에서부터 여름, 가을로 이어져다시 한 겨울에 잠겨 있는 자연을 벗하며 산이 주는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용히 포행길에 나선 스님에게, 묵묵히 탑돌이를 하고 있는 노보살님에게도, 옆에 없는 듯이 가만가만히 다녀가는 관광객을 만나면 진정 이 아침에 반가울 것 같다.
모든 세간사世間事를 저만치 놓아 버리고 자연의 무상설법無上法音을 듣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길기대하고 싶은 솔직한 마음이다. 예전에 휴대폰 광고를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때는 잠시 꺼 두셔도 좋습니다.” 참 인상적인 장면이 오래도록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