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과 간장이 떨어진 적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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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고 청정한 수행을 위한 법문 - 법전
2000년 12월 226호
휴담반야설보리 休談般若說菩提하라
구전친시로전미 句轉親時路轉迷니라
요견금모사자후 要見金毛獅子吼인댄
원래지창자곡제 元來只唱鵠啼니라.
반야니 보리니 말을 말아라.
말로써 친해질 때 길은 더욱 멀도다.
황금털빛 사자후를 보려고 하는가?
본래부터 자고새의 울음소리 뿐이네.
마조도일 스님은 남악회양 선사의 슬하를 떠나 홍주洪州 개원사開元寺에서 법석을 열었습니다.
회양 스님은 마조 스님이 강서지방에서 교화를 널리 편다는 소문을 듣고는 대중들에게 물었습니다.
“도일이 대중에게 설법을 하느냐?”
“벌써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그 쪽 소식을 전해 주는 사람이 없구나.” 그리하여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스승은 한 스님을 심부름 보냈습니다. 그리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그가 법상에 올라가거든 ‘어떻소’하고 물어보고는 그의 답변을 나에게 전해다오.”이에 그 스님은 마조선사 회상으로 가서 마조 스님이 상당하자 바로 물었습니다.
“요즈음은 어떻습니까?”
“삼십년 동안 소금과 간장이 떨어진 적이 없었노라.”그 스님이 돌아와 회양 스님께 말씀드리니 이에 회양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간장과 소금은 모든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쓰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살림의 밑천으로 귀하게 여기는 물건입니다.
마조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총림을 끌어가니 대중들의 먹을 것은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이런 마조 스님은 뒷날 또 자기의 제자가 되는 백장 스님에게 간장 세 병과 안부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그런데 간장 세 병을 받은 백장 스님은 이것들을 법상 위에다가 나란히 늘어놓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대종을 쳐서 모든 대중을 법당에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법상 위로 올라갔습니다.
선사가 주장자로 세 개의 간장병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한마디 이른다면 이 간장병을 깨뜨리지 않을 것이요, 말하지 못한다면 부수어 버릴 것이다.”이에 대중은 모두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백장 스님은 바로 주장자를 휘둘러 스승이 보낸 간장병들을 깨뜨려 버리고는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남악회양 선사의 회상에서 가장 고행苦行과 선정禪定이 뛰어난 사람인 조照 선사도 소금을 통하여 자기공부를 뒤돌아보게 된 경우라 하겠습니다.
한번은 대중의 소금 한 줌을 공양하면서 물에 타서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줄어든 양이 얼마 되지 않는지라 개의치 않고 그냥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그 뒤 어느 날 참회법懺悔法을 닦고 있는데 홀연히 어떤 광경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번에 별 생각없이 먹었던 그 소금 한 줌이 삼년 동안 몇 십섬으로 불어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에 놀라 황급히 시자를 시켜 자기 옷과 살림살이 몇 점을 팔아 그 돈으로 소금을 사서 대중에게 진 빚을 갚게 되었습니다.
소금을 통해서 인과법因果法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소금을 절에서 만들기도 했습니다. 화염송化鹽頌 하나가 지금도 전해옵니다.
불조덕광佛照德光 선사의 회상에 머물던 담광남曇廣南 선사는 요원寮元 소임을 맡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소금이 다 떨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한 소식을 하여 이런 게송을 지었던 것입니다.
합수화니일처팽 合水和泥一處烹하니 수니진처설화생 水泥盡處雪華生이로다.
변능색기요천가 便能索起遼天價하니 공험분명수감쟁 公驗分明誰敢爭이리오.
물과 진흙을 뒤섞어 한 곳에서 끓이니 물과 진흙이 사라진 곳에 새하얀 소금꽃이 피네.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값 불러대나. 공정한 값 분명하니 누가 감히 다투랴?이에 불조 스님은 이 화염송化鹽頌을 보고서 매우 기뻐하였습니다.
소금 만드는 것도 수행의 한 방편이었던 것입니다.
동산양개洞山良价 화상이 운거도응雲居道膺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무엇을 하느냐?”
“간장을 담급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었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이 뿐만 아닙니다. 장 담그면서 법을 나누는 이야기는 또 있습니다.
위산山 스님이 앙산仰山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여기에 어느 정도의 소금물을 넣어야 할까?”
“저는 모르겠으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알겠네.”
“소금물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모르겠습니다.”
“네가 모른다면 나도 답변하지 않겠다.”
그날 저녁에 위산 스님께서 앙산 스님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오늘 낮의 일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묻는 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지금 그대에게 묻노라.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귀는 어둡고 눈은 침침하여 듣고 보는 것이 분명하질 못합니다.”“그 누가 문답을 하더라도 그대의 이 말보다는 뛰어나지 못하리라.”이에 앙산 스님이 절을 올리자 위산 스님이 다시 말씀하였습니다.
“혜적慧寂아! 오늘은 아침 저녁으로 잃은 것이 많구나.”
이렇게 종문에서는 소금과 간장을 통하여 많은 선지식들이 배출되었던 것입니다.
남악회양 스님이 소식을 알 수 없는 제자 마조에게 ‘요즈음은 어떤가?’하고 물으니 ‘삼십년 동안 소금과 간장이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듣고서 운문고雲門 선사가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소금과 간장이 떨어진 적이 없다고 하니 정수리에 안목이 제대로 박힌 납자는 이 경지에 이르러서 어떻게 헤쳐나가겠는가? 오늘 내가 뜸으로 생긴 종기 위에 다시 쑥불을 놓아 마조를 만나보리라.”그리고는 불자拂子를 들어 한 획을 긋고는 말했습니다.
“보았는가? 이는 동쪽 울타리를 뜯어다가 서쪽 벽을 때우는 짓이로다.
눈으로 보기에는 어울리는 듯하지만, 손으로 잡으려고 하면 미치지 못하는구나.
석가와 미륵이 서로 손을 바꾸어서 가슴을 두드리고, 문수와 보현이 서로 소리를 맞추어서 ‘나를 살리라’고 하는구나.”
총림 결제대중들이여!
조사의 문하에 남의 콧구멍 꿰뚫는 소식은 모두가
‘삼십년 동안 소금과 간장이 떨어진 적이 없었노라.’는 이 한 구절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한 구절은 또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그 자리를 이 한 철 동안 잘 참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견득분명식득친 見得分明識得親이나
거래유자섭도정 擧來猶自涉途程이로다.
직요불범호망자 直饒不犯毫芒者라도
야시염병지지인 也是拈餠指人이니라.
보기에 분명하고 알기에 친숙한데
말로써 들춰내면 여전히 도중에 있다.
아무리 털끝하나 범하지 않는다고 해도
여전히 떡을 들고 손가락을 빠는 사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