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雲)은 처음으로 지금에 이르도록 다만 흩어지고 모일 뿐이며 머물다 갈 따름이다. 계절의 오고감이 그러하고 한 해가 머물다 새해가 오는 것이 또한 같다.배(舟)는 앞으로 나아가기를 다하고 뒷걸음치는 법이 없다. 한 생生이 태어남과 그 발자국을 남기고 제자리로 가는 것이 또한 그러하다. 큰배를 바다에 띄워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겨갈 때 뒤돌아보는 바가 없어야 하듯, 또한 내가 나를 택해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자리를 옮김에 회한이 있을 수 없다. 이는 곧 차안과 피안이 다르나 그 배는 같고, 서해와 동해가 다르나 뜨고 지는 저 태양은 같듯이 전생과 이생이 다를 뿐 주인공은 다를 바 없는 이치와 한가지이다.
운주사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의 운주사雲住寺, 혹은 항해하는 배와 같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린다. 다만 경내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기와에 운주사雲住寺라는 명문으로 고려시대의 이름을 찾았을 뿐이다. 운주사는 고려 초 도선道詵 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도선 스님은 삼천리 강산을 하나의 배로 보아 호남에 산이 적어 배가 기울어질 것을 염려해 이 곳에 천 분의 부처님과 천 개의 탑을 하루 낮 하루 밤에 조성했다고 한다.
혹은 우리나라의 기틀을 공고히 하기 위해 각 지역의 석탑과 불상을 모셔 지세를 혹은 누르기도 하고 혹은 북돋기도 했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잘 움직이는 것이 미덕이며 움직이지 않아야 할 것은 자리를 지키는 것이 또한 미덕이다. 이 땅을 하늘같이 여기는 백성들에게 땅은 움직이는 존재일 수 없지 않겠는가.
운주사를 택해 이 곳에 천불과 천탑을 모셨던 손길이 도선 스님이건 어느 불심 깊은 이었던 간에 혹은 하루 낮 하루 밤에 조성된 것이었든지 수 십 년을 두고 모셔진 것이든지 그 마음과 손길이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결같은 마음이 그 천 분의 부처와 천 개의 탑을 다듬은 솜씨에 차이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주사 좁은 골짜기에 모셔져 있던 천불千佛 천탑千塔이 이제 불과 수 십이다. 천년도 되지 못한 세월에 천불과 천탑을 잃음이 아쉬울 뿐이다. 억겁의 세월에서 천千의 의미가 무엇일까마는 천千이란 완성의 다른 이름이다. 다만 채 서지 못한 누운 부처님(臥佛)에게서 미완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