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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란분절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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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김낙현 1987년 09월 67호
불교의 4대 명절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우란분절(음력 7월 15일)이 다가오고 있다. 올해는 의미삼장하게도 9월 7일이 우란분절이다. 이는 마치 오늘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법음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불자는 신새벽의 장엄을 위하여 여래의 사도, 원력보살이 되어야 하리라.
6.29선언으로 국민들은 마치 모든 민주화가 이루어진 듯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80년 광주학살의, 민주운동 탄압의 주역이 마치 민주화의 주역인 양 매스콤을 통해 보도되었다. ‘눈가리고 아웅’, ‘적반하장도유분수지’ 하는 대화가 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민족의 완전한 독립과 사회와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다 쓰러져 간 선열들과 지금도 억울하게 차디찬 골방의 쇠창살 아래 창자를 곱씹는 양심수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리건만, 마구니들은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그동안 입막고 귀막고 눈막아 최소한의 생존권조차 요구하기엔 너무나 순박하고 착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그리고 그 원한과 분노가 쌓이고 쌓여 마침내는 폭발되고야 말리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동안 각계각층의 민주화요구와, 억압받고 수탈당하여 온 노동자, 농민, 빈민 동의 생존권 요구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진정으로 민주화가 되었다고 한다면, 모든 양심수의 석방과 수배자의 해제도 당장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 이 한열 열사의 장례식이 한달밖에는 지나지 않았건만, 아직도 중용천을 떠돌고 있을 영혼을 천도해야 하건만, 마구니의 엄포와 협박은 또다시 시작되고 있다. 요즘의 자발적인 노동운동에 대해 불순세력, 폭력 운운하는 그들의 폭력이 다시금 합리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조금의 형식적인 민주화밖에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육근있는 국민들은 알 것이리라.
우란분절은 별세하신 조상이나 부모를 위해 제사를 지내 영혼을 천도하는 날이다. 오늘에 이르러 이 남은 형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민족과 민중의 참된 삶을 위하여 싸우다 마구니의 총칼에 의해 쓰러진 유명 ·무명의 선열들, 아직도 민족의 통일과 해방의 새 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현세를 보며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중음의 세계에서 핏발선 눈으로 이 세상을 보고 있을 민중 원혼들을 천도하는 날로서 적극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모든 여래는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知見)을 열어 청정케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에게 여래의 지견을 보여주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으로 하여금 부처의 지견을 깨닫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하며, 중생들로 하여금 여래의 지견에 들어가게 하려고 세상에 출현한다.-볍화경 방편품-

그동안 수없이 분신, 고문 등으로 죽어간 민주열사의 모습에서 여래의 모습을 봄은 이상한 일일까? 민주열사-원력보살은 지견을 열고, 보이고, 깨닫게 하고, 들게 한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원력보살이 여래의 사도로서 몸을 나투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위해 그리도 많은 수행, 정진, 나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오늘날 이러한 피와 눈물 뒤에 기어코 새날이 오리리는 확신을 갖게 한다.
작년 9·7해인사승려대회는 한국불교의 전환점을 이루었다. 스님들의 사회참여 선언은 그동안 마구니의 핍박에 기를 펴지 못했던 불교의 깊은 잠을 깨웠고, 민족종교로서 불교의 역할을 모색하고 이를 실천으로 바꾸어 나가는 촉매제의 역할을 하였다. 시간이 갈수록 더욱더 불교인의 의식은 민족자주의식으로 각성되어 갔고, 보살의 원력은 금강석과도 같이 강고해져 왔다.
이제, 우란분절이자 승려대회 1주년인 9월 7일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원력보살은 온갖 방편으로 여래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하여야 하며, 지극한 신심으로 몸을 나투어야 한다. 구천을 떠돌 수많은 민주열사를 보살의 원력으로 모아야 하며, 그것은 천도제라는 형식을 벌겠지만 중생 속에 회향하는 적극적인 자리로 화해야 한다.
` 마지막으로 한마디. 마구나는 마구니의 근기에 맞는 방편으로 제도해야 한다면 어불성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