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남아 울지 말고 어서 자거라
너가 울면 누나 눈에 눈물 난단다
우리도 어머님이 살아계시면
남과 같이 때맞추어 밥주시련만
불러도 어머님은 왜 안 오시나요.
온달 같은 우리 엄마
반달 같은 나를 두고
저승길이 얼마나 멀어
한 번 가니 못 오시나
산이 높아 못 오시면은
비행기나 타고 오소
물이 깊어 못 오사면은
연락선을 타고 오소
길이 멀어 못 오시면은
기차 전차 타고 오소.
외갓집 승기는 4학년에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었다. 태호도 주식이도 모두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었다.
회오리바람처럼 지나간 그 무서웠던 일이 자꾸만 또다른 슬픈 일로 이어졌다. 외숙모는 좀처럼 기운을 못 차리고 시름시름 아파 누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점득이와 점례한테 외갓집에 자주 못 가게 했다.
“점득아, 집에서 놀아라.”
“왜 외갓집에 못 가게 하는 거야?”
점득이도 점례도 어머니 마음을 잘 몰랐다. 점득이는 아침 저녁으로 산나물 죽으로만 배를 채우고 나면, 자꾸만 밥이 먹고 싶었다. 조밥이나 식은 보리밥이나 무슨 밥이든, 알곡으로 지은 밥이 한없이 먹고 싶었다.
외갓집에는 그래도 지난해 가을에 거둬들인 곡식이 조금은 있다. 그래서 아침으로는 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찾아가면 한 숟가락의 조밥이라도 주지 않을까, 점득이는 자꾸 외갓집에 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왜 못 가게 하는지 점득이는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했다. 그래서 몰래 외갓집에 찾아가곤 했다.
그날도 어머니는 산에 나물을 묻으러 가고 없었다. 점례와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나서 한낮이 되어 둘은 외갓집으로 갔다. 일부러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마침 외갓집에서는 무언가 먹고 있었다. 점득이는 오히려 반가왔다. 때를 맞춰왔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래서 쫓아가면서
“승기 형!”
하고 큰소리로 불렀다. 그러면 승기는 얼른 대답하고 문을 활짝 열며 점득이 남매를 맞이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없었고 문도 열지 않았다. 점득이는 점례보다 앞서 봉당으로 뛰어오르며 또 한 번,
“승기 형!”
부르면서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외숙모와 승숙이 누나, 그리고 승기하고 셋이앉아 있었다. 그러나 승숙이 누나가 뭔가 얼른 감추고 나서 모른 체하고 앉은 것이 분명했다. 승기는 아직 입 안에서 무언가 우물거렸고 전에 없이 반가와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점득이가 문을 열고 방 안을 들여다보고 점례가 뒤따라 방문 앞에 섰을 때야 외숙모는 일부러 꾸민 듯한 웃음을 웃었다.
“점득이 왔냐?”
“……”
점득이는 갑자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방 안에 들어가기가 언짢았다. 모든 걸 알아차린 점례가 점득이 팔을 잡아 끌었다.
“그만 가자.”
둘은 외갓집을 돌아서 나왔다.
“왜 들어오지 않고 가니?”
외숙모의 말이 점례 귀에도 점득이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점례는 방 안에 들어가 훌쩍거리며 울었다. 어머니가 외갓집에 가지 말라고 한 까닭을 이제야 알게 된것이다. 그 동안 외갓집에 많이 보채며 살아 왔었지. 외갓집도 넉넉하지 못한데 덤으로 자꾸 찾아가니까 얼마나 귀찮았을까?
저녁 때 어머니가 산에서 돌아왔다. 다래끼에 푹푹 눌러담은 산나물을 꺼내어 봉당 거적에다 헤쳐놓았다. 점득이는 머뭇거리다가 낮에 있었던 일을 어머니께 일러바쳤다.
“외갓집에 갔더니, 무얼 먹다가 얼른 감춰버렸어. 아마 쑥떡인지도 몰라.”
“……”
어머니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점례가 좀더 보태어가지고 말했다.
“외숙모는 점득이가 승기를 불렀는데도 대답하지 말라고 했어.”
“시끄럽다!”
갑자기 어머니가 소리쳤다. 둘은 찔끔 놀라 어머니를 쳐다봤다.
“뭣하는거야, 어서 저녁 준비를 해야지.”
점례는 왜 어머니가 갑자기 화를 내는지 몰랐지만, 말없이 부엌으로 갔다. 솥에다 물을 붓고 불을 지폈다. 어머니가 자배기에 담그어둔 삶은 나물을 건져 커다랗게 뭉쳐 물기를 짜내었다. 그걸 도마에 놓고 대강 대강 썰어 솥에다 넣었다. 어머니는 어딘가에 숨겨 둔 쌀을 꼭 한 줌이 되게 가지고와서 나물 넣은 솔에다 함께 넣었다. 김이 오르자 어머니는 소금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솥뚜껑을 닫고 아궁이에 불을 거두고는 한참동안 그냥 두었다. 점득이는 솥 안에 든 쌀이 어떻게 되었을까 궁금했다.
무척 오랫동안 지루하게 기다린 뒤에 어머니는 솥뚜껑을 열었다. 꺼먼 나물 건더기 여기 저기에 희끗희끗 썰어 퍼드러져 붙어 있었다. 주발그릇에 그걸 한 그릇씩, 아주 많이 한 그릇씩 퍼담았다.
나물죽은 처음 먹으려 들 땐 얼굴이 찌푸려지고 언짢지만 한두 숟가락만 먹으면 그 때부터는 맛이 제대로 잡힌다. 쓴맛도 없어지고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훌쩍거리며 질겅질겅 씹어서 삼키면 되는 것이다.
한 주발의 죽을 다 먹고 나면 배가 뿌듯해지고 콧등에 땀이 난다. 점득이는 그 콧등의 땀을 쓱쓱 닦고는 바깥으로 나간다. 니물죽이지만 배불리만 먹으면 힘이 솟아나는 게 아이들이다.
행길에 벌써 마을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달밤에 어울려 숨바꼭질도 하고 술래잡기도 하면 낮에보다 훨씬 더 재미가 있다.
“숨바꼭질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동석이, 태분이, 그리고 다른 큰아이들도 함께 엄지손가락을 주룽주룽 포개어 잡고 큰소리로 떠들고 있었다.
점득이가 뛰어가 맨 꼭대기 아이의 손가락을 불잡으려 하는데, 누가 점득이를 잡아 끌었다.
“누구야?”
“이리 와.”
승숙이 누나였다. 아까 낮에 무언가 먹다가 감춘 것이 생각나자 점득이는 조금 떨떠름했다.
“왜 그러니?”
“이것 집에 갖고 가서 먹어. 우리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승숙이는 조그만 헝겊 보자기에 싼 것을 살며시 건네 주었다.
“외숙모님이 알면 안 되니?”
“그래. 알면 내가 야단 맞어.”
점득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찡하게 무언가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섧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헝겊 보자기를 두 손으로 움켜 안고 집으로 가서 어머니께 주었다. 헤쳐보니 차좁쌀 인절미였다. 어머니는 말없이 그걸 방바닥에 놓고 나서 잠시 괴로와했다. 그러다가 점례와 점득이에게 먹으라고 했다.
“꼭꼭 씹어서 먹어라.”
“엄마는 안 먹어?”
“……”
점례가 물었지만 어머니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일어서 나갔다. 둘은 서로 마주 바라보다가 역시 인절미 떡이 먹고 싶어 다른 생각은 금방 잊어버렸다. 식어서 약간 굳어진 먹을 둘이서 맛나게 먹었다.
그러고 나서 사흘 뒤, 어머니는 갑자기 이사를 가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는 먹고 살기가 참 힘들구나. 그러니까 장터 마을로 나가서 뭘 해야지 않겠니.”
“장터에 가서 뭘 해?”
점례가 물었다.
“아직 모르겠다. 가봐서 떡장사라도 해 보면 안 될까?”
“떡장사?”
점례와 점득이는 만주에서 돌아오다가 만났던 꽃분이네를 얼른 떠올렸다. 팔다 남은 떡으로 끼니를 잇던 것을 생각하니 어쩐지 반가운 생각이 났다. 어머니가 떡장사를 하게되면 그렇게 끼니로 먹을 먹을 수 있겠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거기 가면 엄마 일 도와 주겠지?”
점례와 점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짐을 싸자꾸나.”
“금방 떠나려고?”
“그래, 내가 어제 가서 방을 하나 구해 뒀단다.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가야지.”
어머니는 짐을 쌌다. 짐이래야 조그만 이불 하나와 옷보퉁이였다. 다른 건 거의가 외갓집 물건이다.
“자, 이것 들고 외갓집에 갖다 주자.”
어머니는 점례와 점득이에게 자배기와 조그만 단지를 들려주었다. 어머니는 부엌의 조그만 솥을 이고 함께 외갓집으로 갔다.
외숙모는 야위고 파리한 얼굴로 내다 보고 놀래었다.
“갑자기 어디로 이사한다는 거야?”
“가까운 데 장터에 가는 거에요.”
어머니가 외숙모에게 이야기할 동안 점득이는 승기한테 자랑하듯이 말했다.
“우리 장터에 가서 떡장사 할 거야. 그러면 만날 맛있는 떡 실컷 먹는다.”
외숙부는 가지고 온 솥이랑 단지를 도로 가지고 장터까지 지게로 져다주었다. 장터 마을 구석 쪽에 다 허물어져 가는 초가집에 건넌방 하나를 얻어 놓았었다. 주인 집은 예순이 넘은 할머니와 손자 남매가 있었다. 아들과 며느리는 일본에 있다는 것이다. 손자 아이들은 오빠가 열두 살, 동생은 아홉 살이었다. 모두 점례보다 점득이보다 한 살씩 위였다. 큰 애는 종대고 작은 아이는 판순이였다. 종대는 여자 같이 얼굴이 희고, 판순이는 남자처럼 검고 튼튼했다.
판순이는 건넌방으로 와서 입을 비쭉거리다가 헤헤 웃다가 하면서 지분거렸다.
“야, 너 이름이 뭐야?”
손가락으로 점득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저, 점득이야.”
점득이는 얼굴이 빨개지며 겨우 대답했다.
“점득이면 점이 몇 개야?”
판순이는 꼭 어른처럼 목소리를 점잖게 거듭 물었다.
“나, 점 없어.”
“헤헤, 점도 없으면서 왜 점득이야.”
“누나 이름도 점례야.”
점득이는 못마땅하다는 듯 말했다. 판순이는 점례 얼굴을 뻔히 쳐다봤다.
“점은 하나도 없고, 콧대기에 곰보자국이 하나 있네!”
점례가 그 소리에 발끈 화가 났다.
“넌 얼굴이 자주감자만치나 시커멓다.”
“그럼, 난 여장부다!”
판순이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빙글빙글 웃기까지 했다. 이렇게 이사온 첫날부터 판순이는 짓궂게 점득이 남매한테 지분댔다.
외숙부는 가지고 온 솥을 처마 밑 아궁이에 걸어놓고 곧장 돌아갔다. 어머니가 마을 밖까지 따라가면서 승호 걱정을 했다.
“혹시라도 집으로 들어오거든 잘 타일러주세요. 너무 꾸짖지 말고…”
그러자 외숙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돌아온다 하더라도 나는 다시 내보낼 테다. 자신이 마음먹은 일은 끝까지 해야 하는 것이니까.”
“오빠!”
어머니는 외숙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 앤 여지껏 옳지 않는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
“……”
“이것 얼마 안 되지만 살림에 보태 쓰려무나.”
외숙부는 주머니를 끌러 십원짜리 다섯장을 접어 어머니 손에 쥐어주었다.
“아니에요. 형님 편찮으신데, 약이라도 지어드리세요.”
“내가 좀더 보살펴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고생이지만 아이들 잘 키우고 어려운 일이 있거든 찾아오너라.”
외숙부는 어머니를 거기 세워 놓고 성큼 성큼 걸어서 시내가 흐르는 둑길로 갔다.
“오빠, 조심하셔요.”
어머니는 50원의 돈을 꼭 쥐고 소매자락으로 눈물을 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