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조약을 기억하십니까 1876년 1월, 일본은 군함 두척과 수송선 세척에 사백명이 넘는 해병을 거느리고 강화도 갑곶진에 몰려와 협상을 요구했읍니다. 그 지난 해에 군함 운양호를 끌고 와 초지진과 영종진을 파괴하고 뭍에 올라 살인, 방화, 약탈을 했던 일본의 위력을 익히 알고 있던 조선은 할 수 없이 협상을 맺었으니, 이른바 강화도 조약이라 불리는 병자수호조약입니다.
참으로 애통합니다. 이 조약은 우리나라가 외국과 맺은 첫번째 불평등조약인 바 이 조약을 빌미로 다른 여러 나라가 앞을 다투어 몰려와 이 나라에서 갖은 이권을 빼내어갔으며, 마침내 일본은 이 나라를 통째로 빼앗게 되었음을 우리는 일찍부터 역사에서 배웠읍니다. 개항이 되자 일본의 상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온갖 상품을 들고 마구 몰려들어왔고, 그것에 밀려 우리네 대장간이며 놋그릇 공장 따위가 문을 닫게 되고 무명베니 모시베가 점차 사라지게 되었읍니다. 그들은 대신 쌀이나 콩 같은 농산물을 사갔으니, 농작물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가난한 백성은 배를 주릴 수밖에 없었읍니다.
일본은 그에 그치지 않고 점차로 정치, 경제를 포함한 나라 일에 일일이 간섭하기 시작하였으니, 일본 돈이 조선 돈으로 인정되어 마음대로 쓰이고 농업, 임업, 수산업, 광업의 모든 산업에서 돈벌이가 될 만한 것은 모조리 저네들이 가져갔읍니다. 또 그들은 제 나라은행에서 돈을 빌어 이 나라 사람에게 고리대금을 놓아 배를 살찌워갔고, 돈을 갚지 못하면 논밭까지 서슴지 않고 빼앗았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침략 정책의 하나로서, 이 나라 재정을 돕는다는 구실로, 나라의 관세를 담보로 삼아, 저들의 흥업은행에서 1,300만원의 돈을 차관하도록 하여 일년에 6분이라는 높은 이자를 받았읍니다 이에 우리의 온 국민은 빚을 갚을 돈을 모으기 위해, 남자는 금주-금연 운동을 벌이고 여자는 패물과 비녀를 내놓고 머리카락까지 자르는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아아, 그리고 36년. 그때 그 자리에서 숨쉬지 않았었다고하여 모르겠읍니까 그 암흑의 시대에 우리의 선조들이 흘린 피눈물이 이 나라 방방곡곡을 얼룩지게 했음을 세월이 흘렸다 하여 잊을 수 있읍니까. 그리고 그 식민지 시대가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이 우리 민족의, 한반도의 분단임을 어찌 모르겠읍니까.
일찌기 구한 말에 최 익현 선생은 우리의 자주성을 확고히 다질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간곡히 말씀하셨읍니다. “강화가 저들의 걸린에서 나왔다면 믿을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강화가 우리 쪽의 약함을 보임에서부터 출발된 것이라면 이는 저들 쪽이 해에 서게 되어 도리어 우리를 제압하게 되니 믿을 수가 없다.” 1968년에 이 나라의 지도자라고 자처한 사람들이 참으로 성급하게 한치 앞만 내다보고 한-일 국교 정상화라는 것을 이루고자 할 때에,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이 나라의 신문들이 다시금 피눈물 흘리며 반대하고 나섰던 뜻이 바로 최 익현 선생의 뜻과 하나가 아니겠읍니까.
이 나라에 땅까지 사 놓은 일본
이제 한 세기가 거의 다 지나가는 이 마당에 내세울 것 없는 옛일을 새삼 끄집어내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는 이도 있겠읍니다. 그러나 오늘을 올곧게 살기 위해선 지나간 역사를 되새겨봄이 마땅하니 바로 오늘의 상황이 그때와 견주어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다만 우리 코앞에 들이댄 총칼이 없다는 것뿐. 실제로 오늘날에 일본이 이땅에 다져 놓은 그 발판이 얼마나 탄탄한지 새삼 돌이켜보게 됩니다.
열개나 되는 그들의 은행이, 열여섯개나 되는 무역상사가, 백개가 넘는 일반 기업체가 지금 이땅에서 무엇을 하고있다고 생각합니까. 일본 상사들의 활동이란 대체로 일본상품을 수입해 오는 일이며, 그들의 손을 거치는 수입 규모는 해마다 우리나라 총 수입액의 15 퍼센트에까지 이른다고 합니다. 합작투자고 기술투자고 도대체 그 무엇 하나 일본이 우리에게 성의껏 대하는 것이 있읍니까. 첨단 기술이나 중요한 핵심이 되는 기술은 접어두고 이미 ‘한물간’ 기술만을 팔고, 이 나라의 값싼 노동력 덕분에 큰 이익을 볼 것만 골라 합작입네 하고 생색을 내고 있음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지난해에는 경상남도에서 전통 도자기를 구워오던 옛 분원 터를 아예 사들여 버젓이 도자기까지 만들어내고 있다하니 어찌 이대로 가만히 있겠읍니까. 이젠 땅까지 팔아먹는단 말입니까. 그러다가 정신마저 팔아넘긴다고 어찌 말하지 않을 수 있겠읍니까?
빚진 자는 빚진 자로서의 분수를 알아야 하거늘
이제 갓 중진국의 문턱에 올라렀다고 하는 우리는 몇백억달러가 넘는 외채를 안고서도 그들의 물건을 무턱대고 사쓰고 있지 않습니까. 생각하면 할수록 지금처럼 우리 국민모두의 슬기와 협조가 필요한 때가 또 언제일까 싶습니다. 경제가 어느 정도 발전했다고 해도 아직은 멀었고, 그나마 그 발전의 덕을 이 나라 사람이 고르게 입고 있지도 못하는터에, 성급한 수입 개방의 물결과 지나친 소비 풍조가 그 발전의 길을 사뭇 크게 위협하려 들고 있읍니다. 잘산다고 하는 이들은 “집은 더 넓게, 차는 더 크게, 실내장식은 벽돌 하나라도 비싼 외제로” 하며 검정 더 호화로움을 더해가고, 없는 이들마저도 “뱁새가 황새 쫓아간다”고 스스로 망칠 것을 모르고 그토록 흉내내기에 바쁘기만 합니다.
근검과 절약이라는 말에 코웃음치지 맙시다. 한때는, 바로 지난 해에는, 외채가 430억 달러에 이른다 하여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자못 통탄의 소리를 드높이지 않았읍니까. 그런데, 그 빚은 그대로인데, 그에 대한 반성과 걱정의 태도는 벌써 간 데 없이 사라졌단 말입니까. 우리는 모두가 빚진 자이니, 빚진 자는 모름지기 빚진 자로서의 채 분수를 알고 행동해야 할 터입니다. 당장 제 한몸의 부귀영화를 위하느라 이 빚을 우리 자식과 손자들에게 떠안길 것입니까.
참으로 부끄럽게도 우리 국민의 “외제 선호증”은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바이니, 해외 여행자들이 나라 밖에서 뿌리는 돈은 외국 관광객이 이 나라에서 쓴 돈의 갑절을 넘어서고 있고, 나라 안의 거리 곳곳에 수입품 코너라 하는 가게가 셀 수 없이 들어섰고 백화점에도 수입품은 버젓이 따로 자리를 잡고 있는 형편임에야. 그 속에 일제 팬티가 이천만원어치, 또 외국인들이 입다 버린 중고 의류가 15억원어치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더더욱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은 주로 일본에서 수입된 김치 통조림, 고추장, 된장, 간장까지도 ‘제맛’ 찾는 사람들에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외제병을 어찌해야 고치겠읍니까. 도대체 이 나라 사람치고 이 병에 걸리지 않은 이가 없는 듯하니, 서울 시내에들어선 그럴싸한 건물치고 수입 외장제를 사용하지 않은 곳이 없으며 고급 아파트와 단독 주택까지도 건축 자재와 실내 장식을 값비싼 수입품으로 꾸미는 것이 장안의 유행이라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물론 잘잘못은 가려져야 합니다. 외국 자본에 의지하여 경제 발전만 우선으로 여겨, 우리의 주체성과 자존심은 뒷전으로 멀어둔 채, 국민에게 선진국의 물질적 풍요와 부에 대한 기대감만 심어 온 정부가 첫째로 가장 큰 책임을 져야할 일입니다. 또 “외체”라면 깜빡 죽는 이 나라 사람의 나쁜 버릇에 더욱 부채질하여 비싼 돈 주어가며 외국의 상표와 물건을 마구잡이로 들여오는 기업에도 그 책임은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책임만 따지면 될 일입니까.
외제 물건을 사서 쓰는 것이 무턱대고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인정하는 용기와, 무엇보다도 민족 자존심과 자신감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이 뼈저리게 듭니다. 비록 물질 문화에서는 뒤졌을지언정, 우리에게는 고유한 오천년 역사가 있읍니다. 이 민족의 오천년역사와 문화 유산이 저들의 산업 물질 문화에 감히 견줄 수도 없도록 부족한 것입니까. 그 역사, 갖은 외침과 수난을 겪고서도 다시 일어서고 또 다시 한데 뭉쳐 이만큼 나아온 우리 민족의 끈기와 집념이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그 끈기와 집념으로 오늘에는 우리의 경제를 일으킵시다. 그래서 일본이나 서구 선진국과 어깨를 당당히 겨룰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가 한민족임을 거듭거듭 되새깁시다.
지금 세계의 강대국들이 미국을 앞장세워 제 나라 물건을 팔기 위해 우리를 윽박지르고 구슬리며 이 나라를 노리고 있읍니다. 이 형국이 가히 전쟁에 비교해도 무색할 지경입니다. 나라를 판다는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만 매국노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 형편에서는 분수 모르고 돈을 물쓰듯 하며 거침없이 외국 물건을 사 쓰는 이가 바로 매국노입니다. 이대로 앉아 나리를 망치는 반역자가될 작정입니까. 깨어나 한 마음으로 뭉칩시다.
이 일에 가장 크게 힘써야 할 이들이 이른바 중산층이라 자처하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아닐까 하여 이렇듯 아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