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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잔 차선사의 말씀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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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좌 - 원명 1987년 09월 67호
아잔 차(AJAN CHAH) 스님은 현재 태국 최고의 선승(禪僧)으로서 태국의 동부지방에서 태어나 일찍 출가하여 경율(經律)을 배우고 태국 전통의 수행법으로 선(禪)을 익힌 뒤 금세기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되는 아잔 문(AJAN MUN) 스님의 문하에서 깨달음을 얻은 분이다. 그후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재 40여개의 산문(山門)을 이루고 많은 사찰들이 유럽과 미주내까지 퍼져있다. 그의 가르침은 실제의 선 경험에서 우러나온 단순함이 특징이고 특히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호에는스님이 된 아들을 찾아 온 프랑스 부부를 위해 1977년 10월 10일 어느 수도원에서 설해진 아잔 차스님의 법문을 소개한다.


출가한 아들을 만나러 왙파퐁 절에 오신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별로 선물할 것이 없어 죄송합니다.
내가 프랑스에 가서 보고 느낀 것이지만 프랑스는 이미 물질적인 것은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나 마음을 평화와 평온으로 이끌 수 있는 진리는 매우 부족합니다. 마음을 계속 혼란스럽게 하고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만 있었읍니다. 프랑스는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안이비설신”의 오근을 충족시키는 것은 많이 발달되었으나, 사람들은 진리에 대해 잘 모르고 또 감각을 유발시키는 것에 의해 혼돈되어 있었읍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왙파퐁에 오신 선물로, 프랑스로 가지고 갈 진리의 선물을 드릴까 합니다.

진리, 즉 법이란 무엇인가? 법이란 인간의 모든 문제나 고난을 제거하고 점차 완전히 없애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법이라 부르며, 어떤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을때 그 문제를 잘 처리하고 극복할 수 있도록 일상생활을 통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일상의 모든 문제들은 여기 태국에 살거나 다른 나라에 살거나 다 일반적입니다. 이런 문제에 부딪쳤을 때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괴로워한고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바로 지혜인데, 지혜를 갖기 위해서는 마음을 계발하고 훈련시켜야 합니다.
수행의 요체는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의 몸과 마음에 있읍니다. 서양 사람이나 태국 사람이나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같습니다. 심신이 혼란되었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이 혼란된 상태에 있다는 것이고, 심신이 펑화롭다는 것은 또 그 사람이 평온한 상태에 있다는 뜻이됩니다. 실제로 이 마음이란 자연 상태의 깨끗한 빗물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맑은 물에 초록색 물감을 떨어뜨리면 그물이 초록색으로 변하고 또 노란색 물감을 떨어뜨리면 노란색으로 변하듯이, 마음도 이와 같이 작용합니다.
물감을 물에 떨어뜨리듯이, 어떤 대상을 보고 나서 편하다는 느낌을 마음에 떨어뜨리면 마음은 편해지고 편치 않다는 느낌을 떨어뜨리면 마음은 편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도 물에 물감을 들이듯이 흐려지기도하고 맑아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맑은 물에 노란색을 넣으면 노란색으로 변하고 초록색을 넣으면 초록색으로 변하듯 색은 항상 다른 색으로 변할 수 있으나 실제로 그 근본인 물은 깨끗한 것이 본래 모습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본래 마음도 말고 순수하고 혼돈되지 않은 것인데 여러 가지 망상 때문에 마음이 혼란스럽게 되고 평온을 잃어 버리는 것입니다.
좀더 분명하게 설명을 드리지요.
지금 우리는 조용한 숲속에 앉아 있읍니다. 바람이 불지않으면 나뭇잎은 그대로 가만히 매달려 있지만, 바람이 불면 마구 팔랑거리며 움직이게 됩니다. 마음도 이 나뭇잎과 같아서 우리의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으로 꽉 차 있으면 팔랑거리며 움직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모를수록 마음은 망상에 더욱 끄달리게 됩니다. 행복을 느끼는 것도, 고통을 느끼는 것도 모두 감정에 끄달리는 것입니다. 이 모두 혼돈만 계속될 뿐입니다. 결국 사람들은 신경질적이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무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단지 기분에 끄달릴 뿐 도대체 마음을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마음을 보살필 수가 없다는 것은 마치 돌봐줄 부모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보금자리가 없는 고아가 매우 불안정한 것처럼, 마음을 돌보거나 훈련하지 않고 또 바른 이해로써 마음을 성숙시키지 않는다면 마음을 다루기란 정말 힘들게 됩니다.
오늘 내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 방법은 ‘캄마타나(Kam·mathana)’라는 수행법입니다. ‘캄마’는 행동·행위를, ‘타나’는 본질을 의미합니다. 캄마타나는 불교에서 마음을 평화롭고 평온하게 하는 방법으로 쓰입니다. 이 수행법으로 마음을 닦도록 하고, 그 마음으로 몸을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 인간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몸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읍니다. ‘몸’이라 하는 것은 눈으로 보여지는 것을 말하고 ‘마음’은 물질적인 형상이 없읍니다. 마음은 다만 ‘내면의 눈’ 또는 ‘마음의 눈’으로 볼수 있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 이 두 가지는 항상 혼란상태에 있읍니다.
그럼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은 실로 어떤 ‘물체’가 아닙니다. 보통, 마음이란 느끼고 지각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느끼고 받아들이고 경험하는 모든 정신적인 느낌을 마음이라 합니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는 이 순간, 여기에 마음이 있고, 내가 말하는 바를 마음이 알아챕니다. 소리가 귀를 통해 전달되면 그 말의 뜻을 그대들은 이해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하는 것을 바로 마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은 어떤 자아도 실체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어떤형태도 없읍니다. 마음은 다만 정신 작용을 경험하는 것일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바른 견해를 갖기 위해 이 마음을 훈련시킨다면 마음에는 어떤 문제도 없을 것이고 모든 것이 자유스럽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그저 마음일 뿐이고 심적대상은 그저 대상일 뿐, 심적 대상이 마음은 아니며 마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과 심적 대상을 분명하게 이해하기위해 ‘마음이란 그속에서 불쑥 나타나곤 하는 대상들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해 둡시다.
이 두가지, 마음과 그 대상이 서로 접촉될 때 어떤 감정-선악이니, 차고 더움이니 하는 모든 종류의 감정이 일어나는데, 이런 감정을 조절할 만한 지혜가 없을 때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는 것입니다.
참선은 마음을 계발시키는 수행법으로서, 지혜를 나게 하는 근본이 됩니다. 참선은 호흡을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이 호읍법을 우리는 ‘아나파나사티(Aapanasati)’ 또는 ‘숨의 집중’이라 부릅니다. 이 곳에서는 호흡을 화두로 삼고 있는데, 그 까닭은 이 방법이 가장 단순하고 또 옛날부터 참선의 요체가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가부좌 자세로 참선을 해 보십시오. 가부좌란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놓고 오른쪽 손을 왼쪽 손 위에 얹는 자세로서, 등을 곧고 바르게 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제 나는 모든 근심과 사념을 놓아버리겠다”고 말하고, 근심될 소지가 있는 어떤 것도 생각지 말고, 그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리십시오. 그리고 호흡에 관심을 집중하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호흡에 집중하되, 의식적으로 숨을 길거나 짧게 또는 강하거나 약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숨을 고르고 자연스럽게 쉬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점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집중력과 자각력이 자연스럽게 들숨과 날숨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긴장하지 말고, 어떤 것도 생각지 마십시오. 이것 저것 생각할 필요가 없읍니다. 오직 숨을 들어쉬고 내쉬는 데 관심을 집중시키는 것 외엔 할 것이 없읍니다.
숨쉴 때마다 각 숨의 시작과 중간과 끝에 주의를 집중시키십시오. 숨을 들이쉴 때는 숨의 처음이 코끝에서 시작해서 가슴 한가운데를 거쳐 단전으로 가게 하고, 숨을 내쉴 때는 다시 단전으로부터 가슴을 거쳐 코끝으로 진행시키면 됩니다. 좀더 확실히 알기 위해 번호를 붙여보면 들숨은 ①코끝에서 ②가슴으로 ③단전으로, 날숨은 꺼꾸로 ①단전에서 ②가슴으로 ③코끝으로 합니다.
이와 같이 이 세 부분에 초점을 맞춰 되풀이하다 보면 모든 근심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아무 것도 생각지 마십시오. 오직 호흡에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아마 다른 잡념들이 떠오를 것이고 그 잡념이 또 다른 상념을 일으켜 그대를 어수선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상관하지 말고 오직 관심을 다시 호흡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은 그대의 감정에 따라 이것 저것 생각하고 끄달릴지 모르나, 계속해서 꾸준히 수행해야 하며, 각 호흡의 시작과 중간과 끝을 계속 주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