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네, 내가 처음에 농민의 문제가 곧 나라의 문제라고하지 않았나. 이 나라는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지않은 채 덮어놓고 있네. 식민지시대 지주들과 결탁해서 권력을 잡은 정부이기 때문이야. 지주치고 친일파고 민족반역자 아닌 자는 일 퍼센트도 안될 걸세.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누린 부귀와 지은 죄로 해방과 통시에 마땅히 모든 기득권을 박탈당했어야 했고, 민족 앞에 사죄했어야 했네, 그리고 모든 소작인들은 일제치하에서 겪은 굶주림과 당한 고통의 대가로 마땅히 지주들의 소유를 분배받았어야 하네. 그런데, 미국의 세력이 작용하고, 이승만은 집권야욕으로 민족을 배반하고, 지주계급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뭉쳐지고, 서로를 위해 상호작용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네. 내가 크게 우려하는 바는 지주계급들로 이루어진 현정권이 농민이나 반대세력권을 일본놈들 식으로 무작정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것이야. 그 방법은 모든 계층, 모든 분야의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한테까지 퍼져나가 공산주의를 자기네들의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공격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이거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주객전도야 참으로 큰일날 일이지. 일본놈들한테 배워도 못된 것만 배웠지. (……) 말이 해방일 뿐이지 정치하는 방식이나, 지주들이 그대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나, 변하지 않는 소작 조건이나, 그대로 일정 시대의 연장인 게야. 그러니 소작쟁의가 계속될 수밖에. 친일파 지주계급들, 참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이야. 일제 때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군정과 야합해서 더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야. 적산을 차지한 게 다 그들 아닌가. 그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반대세력은 계속 공산주의자들로 몰아붙이겠지. 이미 정치적으로 국토와 민족이 분단됐는데, 그것도 모자라 반쪽에서나마 민족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는 게야.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점점 더 문제거리가 생길거야. 이 나라 장래가 큰 걱정이네.”
책 냄새 그득한 방에는 침묵이 한 겹씩 내려앉고 있었다.
-조 정래의 「태백산맥」 1부 3권 160-162쪽
민족, 민족, 하지만 엄밀히 따져서 지배계급은 민족 구성원 속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오직 민중적 삶으로 깨어 있어 그 무엇 하나도 착취·수탈·억압·군림하지 않는 민중 세력을 민족 구성원으로 파악해야 한다. 같은 종족으로 태어나, 같은 언어·문화·관습·전통을 함께 누리고, 가졌다고 해서 같은 민족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그래서 반민족적 작태를 타도하고저 하는 순수 민족 세력이 규합되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에 반(反)하는 무리들을 같은 민족 구성원에 넣어줄 수가 없는 것이다.
한반도, 지구상에 그 유례가 없는 민족 분열의 첨예화의 현장, 양대 이데올로기의 실험장에서, 철책 양편에 나뉘어 갇힌 온 민족의 비원(悲願)인 자주 민족 통일을 외면한 채, 현실 고착을 고집하는 저들 반민족적 기득 계급들은, 옹골찬 개아중심적 이기심으로 분단 고정화의 수문장 역할로서 눈을 부릅뜨고 자리지킴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저들을 어찌 한 민족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저들을 통한 통일의 꿈은 한낱 개꿈에 지나지 않은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통일은 다른 어떤 명분의 통일이어서도 안 된다. 오직 민족에 의한, 민족을 위한, 민족적 통일이어야 한다. 민중 민족적 통일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는 민중의식으로 민중적 삶을 지향하는 연대 공동운명체의 단위를 일러 민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 민족 단위의 뭉침으로서만 진정한 민중 민족적 통일을 이룰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대의 불평등한 소유와 분배의 지배적 원인이 바로 이〈민족〉개념의 올바른 인식과〈분단 체제〉의 해체에 있는 고로, 위와 같이 살펴서 자유 평등의 소유와 분배를 꾀하고, 나아가서 마침내 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이루자는 것이다.
늙은 농민의 노래
나 태어나 이 강산에
농민이 되어
팽이 메고 삽질하기
어-언 30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아들놈아 내 딸년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농민의 자식이다
고운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농민자식 너희로다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모두 손목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내 청춘 다 간다
「실천문학」4권 303쪽 자료① 현대 노동요
무엇을 소유하고 무엇을 분배할 것인가. 바로 말하자면, 사실은 소유할 것도 분배할 것도 없다. 그렇게 할래야 할수도 없다. 왜냐하면 객체적 대상으로서의 가지거나 나누어야 할 그 어떤〈것〉의 〈있음〉이 실로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객체적 대상에 맞선 주체적 행위자(소유하려는 자)의 실체(그 무엇이 시공간을 점유하여 고정적 실재로서 있음)가 텅 비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텅 비어 〈있음〉은, 그것이 그냥 단순히 아주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있음〉의 본성이 〈텅 비어 있음〉의, 스스로의 열림, 자유, 해방의 양식으로서만이 참되게, 바르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일체의 물질과 정신의 그것이 〈있음〉은 텅비인 〈없음〉의 양식으로〈그것〉이 있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일체의 물질과 정신의 그것이 텅 비어 〈없음〉은 〈있음〉의 양식으로〈그것〉이 없는 것이다. 달리 용빼는 재주가 없다.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이것이 물질과 정신의 운명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인 표현이지만〈텅 비어 있음〉의 충족된 삶을 사는 참삶의 장인(匠人)이 되어야 한다. 참삶은 그래서 소유와 분배의 차원을 초월하는 무소유·무집착의 장인의 솜씨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지향할 바의 이상이고 지금의 소유·분배는 지배 종속 관계의 산물이자 그 모순이다. 그러므로 소유 ·분배는 계급이며, 군림이며, 비굴이고, 굴종이고, 착취 ·수탈이다.
누가 무엇을 가질 것인가. 누가 누구를 쥘 것인가. 인간모순 관계의 첨예화는 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그 지배자가 같은 종족이건 다른 식민종주국의 종족이건 상관없이 다수의 민중 위에 군림함으로써 착취 ·수탈 계급을 〈소유〉함은, 그대로 반(反)민중적이요, 반(反)민족적이다. 따라서 한민족사의 봉건노예제 사회에서나, 일제식민지 사회에서나, 더 나아와서 외세 · 매판의 신식민지 사회에서나, 금력과 권력의 대부(代父)인 저들 〈이윤집단〉의 탐욕적 소유·분배는 그대로 반(反)민중적이요, 반(反)민족적이다.
따라서 저들은 깨어 있는 민중의식의 광장에서 한 사람의 민중으로, 민족으로 동참하는 변신을 꾀하든지, 아니면 민중의석의 세례로 씻기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민중·민족에 반(反)하는 저들 또한 우리 한민족일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는 것이다. 민중의식으로 깨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암담하다. 요즈음, 마침내 곪아 터지고 만 전국적인 노사분규의 현장은 저간의 소식을 충실히 대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정이 이러할진대, 잉여생산물의 창출과 축적에서 부당한 소유·분배의〈이윤〉과〈소유〉를 최고의 가치로 꼽고 있는 사회에서 어느 하세월에 자다가도 일어나 제 발등을 찍는 참회와 돌연변이의 새 삶인 민중적 지평을 열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살아야한다.〉 그리고 요원(燎原)의 불길을 일구어야 한다.
아! 슬픈 현실
노동자가 얼마나 노동을 더해야
아, 살 수 있나
우리 모두 지금까지
피땀 흘려 왔는데
아, 슬픈 현실
지금까지 빼앗겼는데
계속해서 짓밟혔는데
노동자는 기계인가요
느낀 것이 너무 많아요
설움에 지쳤던 눈빛에 보여요
내일의 찬란한 빛이
분노에 불티는 눈빛에 보여요
내일의 찬란한 빛이
「실천문학」4권 312쪽 자료① 노동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