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애가 처음 태어났을 때에 모든 기관이 갖추어 있음은 어른과 다름이 없지만 그 힘이 충실치 못하기 때문에 얼마 동안의 세월이 지난 뒤에야 비로소 어른 구실을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깨달음의 문제도 처음 삶의 본성을 깨닫고 난 뒤에도 여전히 미세한 번뇌와 버릇이 남아 있고 신통의 능력도 아직 구사할 수 없다. 그래서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적인 노력과 수행을 해야만 ‘완전한 깨달음’ 내지는 ‘최고의 성인’을 이룰 수 있다.
다분히 개인의 일신상의 문제로 국한되어 말해지는 이러한 주장은 그 소승적 태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점은 일단 접어둡시다.
먼저, 본성을 깨닫고 난 뒤에 지속적인 노력에 의해 외적인 능력과 완벽한 인격을 갖추는 것으로 수행을 삼는다는데, 이러한 견해의 이면에는, ‘깨달음이란 어떤 내용이나 실재를 수용하는 것이 아님(悟無所得)’을 알지 못하고 본성을 깨닫는다는 것을 어떤 형태의 실재(法)로서 이해하여 수용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깨달음을 그 어떤 것(본성이라 표현하는)의 실재성을 타파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 것(본성)을 ‘푸른 것’이나 ‘붉은 것’따위로 이해하는 차원으로 전락시킨 것이 되며, 또 이러한 이해의 바탕이라면 이어지는 점진적 수행이란 것도 붉은 삼층집이나 2층집을 짓는 식이며 푸른 삼층집이나 푸른 2층 누각을 짓는 것과 같은 문제로 귀착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돈오점수설’은 원초적으로 깨달음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결여가 발단이 되어, ‘깨달음’과 ‘역사’(현상)의 영역을 같은 차원에서 이어지는 문제로 처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 과제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고 일신의 능력의 성취 여부도 여전히 외적 현상의 문제로서 역사의 영역이 되는데, 이러한 역사적 차원의 문제를 깨달음의 연장선에 있는 문제로 이해하여 외적인 능력과 공용(功用)의 성취를 깨달음의 확충과 완결로 잘못 이해하였다는 것입니다. ‘돈오점수설’에서 즐겨 인용하는 능엄경의 귀절에서도 이런 점은 거듭 확인됩니다.
이치(理)는 단번에 깨닫는 것, 이 깨달음을 통해 번뇌(실재의식)는 타파된다. 반면 현상(事)의 문제는 단번에 제거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점차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 귀절은 얼핏 보면 깨달음과 현상의 문제를 같은 차원의 연장적인 것으로 말한 듯이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치(理)인 깨달음(보디)의 영역과 현상(事)인 역사(사트바)의 영역에는 논리적 뜻이 있음을 드러내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깨달음’과 ‘역사’의 상관성을 이치(理)와 현상(事)이라는 이해의 틀로서 설명함은 화엄학에 이르러 ‘이법계(理法界)’와 ‘사법계(事法界)’설로 정형화되며, 이 둘의 차원이 변증적으로 결합된 모습을 ‘이사(理事) 무애법계’, 더 나아가 ‘사사(事事) 무애법계’ 라 하여 바람직한 통일된 모습으로 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럴 경우에도, 돈오점수설의 경우와 같이 이(理)와 사(事)가 같은 차원의 연장은 아닌 것입니다 바로 이런 가르침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수행과 실천이 일차원적인 연장선상의 개념인 ‘돈오점수’의 길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문제가 통일적으로 결합된 ‘보디사트바(깨달음(理)+역사(事))’의 길임을 알 수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삶이 실재 아님을 깨닫는 연기적 통찰(보디)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그런 뒤에는 이러한 깨달음을 밑바탕하여 역사적 차원의 문제는, 그것들이 비록 환(幻)임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역사 속에서의 검증과 실천 그리고 역사적 상상력에 입각한 가설인 방편바라밀을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돈오점수설’에 덧불여 또 하나의 주장인 이른바 ‘돈오돈수설’에 대해서도 살펴봅시다. ‘돈오돈수설’이란 ‘돈오점수설’에 대한 반박으로 대두되었는데 그 주장의 요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깨닫고 난 뒤에도 다시 점진적으로 수행해야 완전해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그깨달음은 잘못된 것이다. 깨달음이란 일상생활에서 오고 가는 속해서도 흔들림 없고, 꿈속에서도 여일하고, 그뿐만 아니라 아뢰아식의 미세한 망상까지도 끊어 없어진 상태인 것이다. 이러한 경지에서 비로소 진여(존재의 참모습)가 드러나는데, 이를 일러 견성이라 하며 완전한 구경의 깨달음이라 하는 것이다.
만일 사제님이 기왕의 편지들에서 깨달음의 성격과 또 역사적 차원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점에 대해 공감한다면, 이 ‘돈오돈수설’의 문제점도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우선적으로 위의 주장과 같이, 만일 ‘돈오돈수설’이 깨달음을 말하는 데에서 미세한 번뇌까지도 끊어 제거한다든지 일정한 능력을 구비하는 것 등을 주장한다면, 이 또한 앞의 ‘돈오점수설’과 마찬가지로 ‘깨달음’과 ‘역사’의 영역에 대한 혼돈이 깃들어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으며, ‘돈오’를강조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점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점수돈오’의 변형된 주장이라 하겠습니다.
‘번뇌를 끊어 마침내 해탈에 이른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경전에서의 ‘번뇌를 끊는다’, ‘멀리 여윈다’ 등의 표현은, 결코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며, 가르침의 법칙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번뇌를 끊는다’는 말은 심리 현상이나 번뇌 자체가 없어지거나 액면 그대로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뜻함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바위나 나무와 같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요. 이 말의 본뜻은 심리 현상과 외적 작용은 여일하지만 그것을 수용하는 자세가 ‘실재 의식’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마치 윤회에서 벗어난다(또는 윤회를 끊는다)는 말도 윤회 현상(생멸 현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닌 생멸심(생사심) 곧 실재 의식을 떨치고 생멸 현상을 수용하는 것이란 점과 같은 이치지요.
이런 점에 대하여 옛선사는 ‘물고기가 용이 되매 그 비늘을 바꾸지 않고, 범부가 성인이 되매 그 얼굴을 바꾸지 않는다’ 라는 말로 비유하기도 했지요.
이래서 돈오하고 난 뒤에 다시 육바라밀을 닦아 아공(我空), 법공(法空) 등을 증득하고서 구경이 최후의 깨달음에 이른다는 식의 ‘돈오점수설’과 마찬가지로, 수중점차의 관문 통과를 전재하여야만 대도에 이른다는 ‘돈오돈수설’도 수행함에 있어 신비주의적 경향으로 치달리게 되는데, 이 모든 것이 바로 돈오(혁명적 깨달음)와 역사적 영역의 상관성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탓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주장이 낳은 근엄하고도 성실한 수행 태도까지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유교에서 성리학이 도덕적인 윤리성 확보와 성인을 지향하는 성실한 삶을 꾸려나가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처럼, 이 두 주장도 많은 수행자들로 하여금 증상만(교만심)에 빠지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를 되돌아보는 각고면려의 수행가풍을 이루는 데에 기여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에 대한 논리적 혼동은 결국 깨달음을 성취하는 데도 방해가 되었으며 역사적(사회적) 삶을 사는 데도 왜곡된 형태를 낳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상으로 깨달음과 역사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은 옛스님의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지 싶습니다.
실제(實際)의 이지(理地)에선 한 띠끌도 용납하지 않지만 만행문(萬行門)에선 한 법도 버리지 않는다.
삶(존재)을 깨달음의 눈으로 비춰 보면 그 어떤 실재(reality)도 성립할 수 없지만, 역사적 차원에서는 환과 같은 방편바라밀을 구사하여 다함 없는 법계를 장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보디사트바(깨달음+역사)’ 라는 각성되어 있는 풍부한 삶의 전형으로 표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수행론과 삶의 방식은, 일면적인 ‘돈오점수’, ‘돈오돈수’설이 아니라, 돈오(보디)와 역사(사트바)가 양면적으로 결합된 ‘보살도 구현’이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