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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경(遊行經) 초(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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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해설 - 무관 1987년 09월 67호
사람살이가 여행이라면 끝없이 매일 가야 하는 길이 있기마련이다. 강이나 산처럼 제자리를 지키며 침묵할 때 바람은 말벗이 되고 구름은 길동무가 되기도 한다.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안에 말벗처럼 길동무처럼 어울려가는 것을 인연(因緣)이라 했다. 곧 현재의 사회성(社會性)이 그 한가닥이 될 것이다. 이러한 길에서의 이야기를 유행경(遊行經)이라 하겠다. 부처님께서 여러 곳을 유행하실 때 일어난 온갖 사건을 인연으로 하여 아난이나 비구들에게 또는 청신사녀(淸信士女)나 바라문 등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사회생활의 기본이 되는 것을 중심으로 일곱 가지 불퇴법(不退法)을 여러 가지 면에서 설하셨다.
부처님이 라아자그리하의 기사굴산(耆闍崛山)에 계실 때 마가다의 왕 아사세(阿闍世)는 발지국을 쳐서 복속시키고자 하여 대신인 우사(禹舍)로 하여금 부처님께 은근히 그 뜻을 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발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가져 서로 바른 일을 의논한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의 임금과 신하가 서로 화순(和順)하며 윗사람 아랫사람이 서로 공경하고 순종해서 어기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 사람들이 법을 받들어 금기할 바를 알고 예도(禮度)를 어기지 않는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가지고 부모를 효도로 섬기며 어른을 공경하여 순종한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 사람들이 종묘(宗廟)를 공경하여 귀신에게 정성을 드린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 사람들의 가정의 여자들이 바르고 참되고 깨끗하며 더러움이 없어 비록 웃고 농담하는 데 있어서도 그 말이 음란하지 않다고 들었는가? 너는 발지국 사람들이 사문을 높여 성기고 계(戒)를 가지는 사람을 존경하여 보호하고 공양하기에 게으른 일이 없다고 들었는가?”
아난이 대답하였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아난아, 만일 그렇다면 어른과 어린이들은 서로 화순하여 갈수록 더 왕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때에 대신 우사가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나라 백성들이 비록 한 가지 법을 행하더라도 도모할 수 없겠거늘 하물며 일곱 가지를 맞춤에 있어서이겠읍니까. 저는 나라 일이 많기 때문에 우선 하직을 사뢰고 돌아가겠읍니다.” ·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마땅히 때를 알라.”
어떠한 사회에서나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은 부족함이 없는 규율도 아니요 높은 소득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서로가 사람다운 대접을 주고 받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국가와 사회를 지켜나가는 것은 군대나 법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국민의 화동(和同)이라 하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바탕은 상호간에 존경과 순종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모두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사람의 생명이 가치없이 보여지는 전쟁이 싹트는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았다. 폭력은 인간성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이다. 이것을 물리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화동이라고 보신 것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너무나도 수월하게 인간성이 무시되는 이지러진 풍토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은 여러 가지로 7법을 말씀하시고 다시 비구들에게 6불퇴법을 말씀하셨다.
“이것은 법을 더하고 자라게 하여 줄거나 닳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무엇을 여섯 가지라 하는가. 첫째 몸은 항상 자비를 행하여 중생을 해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입은 인자한 말을 하고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세째 뜻은 자비로운 마음을 생각해 파괴하고 손해지우려는 생각을 품지 않는 것이다. 넷째 깨끗한 재물을 얻어 여럿과 함께 나눔으로써 차별이 없는 것이다. 다섯째 성현의 훈계를 받아 빠뜨림이 없고 또 때묻고 더러움이 없이 굳게 믿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여섯째 성현의 도(道)를 알아 그것으로써 괴로움을 아주 없애는 것이다.”
세상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데 있어 첫째 그 사람됨을 보고, 둘째 그 말을 들어 보고, 세째 글씨를 본다고 했다. 이것은 우리 선조들이 사람을 쓰는 데 필요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부처님의 말씀이다. 몸·입·뜻(三業)이, 그리고 항상 진리를 생각하고 그 진리를 구현시키고자 하는 마음 가짐이 청정과 자비의 실천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각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풍채와 언변 그리고 좋은 글씨체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마음에 올바르지 않은 목적의식이 있다면 큰일을 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회의 불화와 악을 조장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한 것이다.
“법을 더하고 줄거나 닳음이 없게 한다”는 법은 불자들이 수행에 의하여 깨닫고자 하는 진리가 한 발 더 가까워질 것을 말한 것이며 또 사회는 안정되고 발전될 것임을 말한 것이다.

그런 다음에 세존께서는 라아자그리하를 떠나 마가다를 들러 죽원(竹圍)에 도착하셨다. 세존은 당상에 올라 자리에 앉으시고 모든 비구들에게 계정혜(戒定慧)와 등해탈(等解脫)을 얻는 데에는 그 근본인 계를 행함으로부터 삼루(三漏: 欲의 누, 有의 누, 無明의 누)를 멸해 다하고 해탈의 지혜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어 파아탈리프트라(巴陸弗城)에 이르러 파아탈리나무 밑에 앉으셨다. 때에 많은 신도들은 부처님께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때 부처님은 그들을 위하여 설법하시고 가르치시어 그들을 이롭고 기쁘게 하셨다. 법문을 들은 신도들이 “저희들은 부처님과 법과 스님들께 귀의하자 합니다. 원컨데 가없이 여겨 허락하시어 우바새로 삼아 주소서. 지금부터는 생물을 죽이지 않고, 도둑질하지 않으며, 음탕하지 않고 속이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계를 받들어 가지겠나이다. 내일은 공양하고자 합니다. 원하옵건데 세존께서는 모든 대중과 함께 자비를 베풀어 돌보아 주소서” 하고 청하였다. 지금도 태국이나 버마에 가면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지 않는다. 스님에게 공양을 드릴 때는 언제나 삼귀의와 오계를 외우는 것을 보고서 스님들도 공양을 받는다고 한다. 그때 세존은 때가 되어 공양을 받으시고 손 발을 씻으시고 그 복판에 앉으셨다. 때에 모든 비구들은 왼쪽에 앉고 모든 신도들은 오른쪽에 앉았다.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무룻 사람이 계(戒)를 범함으로써 다섯가지 손해가 있다. 첫째 재물을 구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둘째 비록 얻는 것이 있더라도 날로 없어진다. 세째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 네째 추한 리름과 나쁜 소문이 천하에 퍼진다. 다섯째 목숨을 마쳐 죽은 뒤에는 지옥에 들어간다.”
부처님은 또 모든 신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무릇사람이 계를 가짐으로써 다섯 가지 공덕이 있다. 첫째 모든 구하는 것이 뜻대로 된다. 둘째 자기가 가진 재산은 더욱 불어 손해되는 일이 없다. 세째 가는 곳마다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네째 좋은 이름과 착한 칭찬이 천하에 두루 퍼진다. 다섯째 목숨이 마친 뒤에는 반드시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현인이나 지자(智者)들은 언제나 계를 가지고 깨끗한 행을 닦아 착하게 살아가므로 존경할 줄 알고 섬길 만한 것은 섬길 줄 알며 널리 베풀고 두루 사랑해 자비로운 마음을 가진다. 그런데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는 어떤 문제이거나 그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과격해지는 일이 있다. 폭력과 무자비를 반대하고, 섬길 것과 존경할 것을 존경하며, 깨끗하고 착하게 살려는 것이 근본이다. 그런데 문제 해결을 위한 한계를 넘어서서 삶에 대한 존재 이유를 상실한 상태가 되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은 서로 믿음이 상실된 때문이다. 그런 우리네 사회는 희망과 자신을 가지고 누구나 잘 살게 보장하는 제도적인 체제보다도 능력과 노력이 실생활에서 사실로 증명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이다. 왜 욕심이 나쁜가 하는 의문을 아무도 품지 않을 만큼 불신이 사회의 모든 면에 가득차 있다. 그것을 부처님은 구체적으로 계를 통하여 설명해 주신 것이다. 계는 단순한 체제유지의 방법만이 아니다. 계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희망과 자신의 증명이다. 그로 인하여 나와 남, 사회와 국가가 다같이 성실한 노력을 갖게 되는 때문이다.
그후 부처님은 발지국을 돌아 다시 구리(拘利)촌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계정혜와 해탈의 미묘하여 알기 어려움을 말씀하시고 이것을 밝게 깨달아 나고 죽음에서 벗어나라고 말씀하시었다. 그리고 구리촌을 떠나 나아디카아(那陀)촌을 거쳐 바이살리(毘舍利)의 어느 나무 밑에 앉으셨다. 때에 기생 암바바리(庵婆婆梨)는 부처님을 뵙고 공양을 올린뒤 “이 바이살리국에 있는 동산 중에서 우리 동산이 가장 훌륭합니다. 저는 이 동산을 여래에게 바치겠읍니다. 저를 가없이 여기시어 이것을 받아 주소서.” 하고 간청하였다.
부처님은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동산을 나와 이 승단(僧團)에 보시하라. 왜냐하면 여래가 가지는 동산, 숲, 방, 집, 옷, 바루의 육물(六物)은, 진실로 모든 악마도 하늘도 범천도 대신력천(大神力天)도 이런 공양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룸비니동산에서 탄생한 이레만에 생모 마야왕비는 생애를 마쳤고 이모인 마하아프라자파티가 양모가 되어 태자를 길렀다. 태자가 스물 아홉살에 출가하자 몹시 슬퍼했다. 그러나 태자가 부처님이 되어 돌어왔을 때에는 남달리 신앙이 두터웠고 불법승 삼보에 귀의했다. 마하아프라자파티는 태자가 출가한 뒤 손수 실을 뽑고 짜서 훌륭한 옷 한벌을 마련해 두었다. 부처님이 카필라 교외의 승원에 머물러 있을 때 마하아프라자파티는 이 귀중한 금루황색의(金縷黃色衣)를 부처님께 바쳤다. 그러나 세존은 세번이나 사양하였다가 아난이 마하아프라자파티를 위해 거들므로 받아들였다. 그때 “이 옷은 내게보다는 승단에 기증하는 것이 좋겠읍니다”라며 사양했다. 이와 같이 한 뒤 부처님은 보시(布施)의 뜻을 밝히시어 삼륜청정(三輪淸淨 : 보시하는 자의 마음, 보시한 물건, 받는 나, 이 셋이 모두 깨끗해야 함을 말함)을 말씀하셨다. 이제 양바바리가 보시한 동산도 부처님 한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승단에 귀속되게 한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동산에 절을 짓고 9번이나 안거를 지냈다하니 수행하기에 좋은 장소였을 것이다. 또 이 사원은 부처님 성도후 세번째 세워진, 그리고 여인의 힘만으로 세운 사원이었다.